@Eindhoven, Netherlands
네덜란드에 별 관심이 없었을 때. 네덜란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튤립, 풍차, 나막신, 파트라슈, 박지성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박지성은 아인트호벤을 떠난지 오래이고, 더이상 그의 흔적은 그 어느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피트 하인 이크(Piet Hein Eek)를 중심으로 디자이너들과 예술가들이 모여있는 동네로 가는 길목에서 그 유명하다는 경기장을 보긴 했었다. 혹시나 기념품으로 살 것이 있나 둘러보았지만, 빈 손으로 나왔다.
7월 말의 아인트호벤은 참 맑고 해가 길었다.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았고, 차도 많지 않아 공기도 맑은 느낌이었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상점도 없었고, 경적소리 울리는 것도 듣지 못한 것 같다. 확실히 암스테르담보다 여유롭고 조용한 분위기의 아인트호벤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누군가에게 어느 나라의 인상 깊은 점을 이야기해보라 하면 길이나 도로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일본의 거리는 매우 깨끗하다, 중국인들은 무단횡단을 잘 한다, 브리즈번 시내는 트램 라인이 가득하고 차는 별로 없다, 베트남은 차도의 절반 이상을 자전거가 차지한다와 같은.
아인트호벤의 도로는 매우 한적하고 규칙이 없는 듯 하면서 규칙적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선 자전거가 많이 다니는데 차도와 경계가 없거나 인도와 경계가 없거나 해서 자전거 전용도로라는 개념을 찾을 수가 없다. 잔세 스칸스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녀봤지만, 차도에 붙어서 달리다가 어느 순간 인도 옆에서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사람들, 사고가 안 난다. 보행자 신호도 굳이 버튼을 눌러야만 초록불이 들어오는 등, 불필요한 기다림을 최소화한 느낌이었다.
아인트호벤의 남다른 특징은, 도시 전체를 누군가 디자인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대충 만든 부분이 없다는 것이었다. 상점의 간판과 여기저기 걸려있는 인쇄물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살다보면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디자인을 전혀 몰라도 보는 눈 하나 만큼은 확실히 가질 수 있겠다 싶었다. 너도 나도 눈에 띄겠다고 휘황찬란하게 만들어진 이기적인 간판은 찾아볼 수 없고, 모든 환경과 조화롭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잊지않는, 적절한 강약조절이 되어 있었다.
너무 빡센 스케줄은 싫다는 것이 집주인인 S와 나, 그리고 E의 공통된 의견이었기에 매일 일종의 테마를 가지고 움직였다. 하루는 잔세 스칸스와 로테르담을 당일치기로 다녀와서 야식을 해먹는 날이었고, 하루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세 군데나 다녀오는 날이었고, 어느 하루는 낮에 시내 쇼핑을 다니다가 저녁에 맛있는 립 레스토랑을 가는 날이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마트에 들려 아침거리와 음료수를 샀는데, 역시나 이 곳에서도 마트 쇼핑은 즐거웠다.
아침식사는 S가 도맡아 준비해줬다. 챙길게 적은 집주인의 여유로움과 오랜만에 만난 손님들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섞인 것이었겠지. 악마의 잼 누텔라만 제외하고 하나같이 건강한 맛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백화점과 온갖 브랜드 상점들이 모여있는 광장도 여유로웠다. 전날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렸기 때문에 아직 빗물이 고인 곳이 바닥 곳곳이 보였다. S의 말에 의하면 아인트호벤에 있는 한국인들은 공대생 아니면 미대생이라고 한다. 디자인 아카데미 졸업을 앞둔 S는 친구지만 참 멋지다. 자긴 가난한 학생이라고 하지만, 밤낮없이 하고 싶은 작업을 하고있는 이 친구가 나는 그저 부럽다.
암스테르담에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무리들이 꽤 있었는데, 아인트호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길에 걸어다니는 관광객이 매우 적은 것이 좋았다.
친구들과 함께 걷기도 했고, 혼자 걷기도 했다. 아이스크림이 나와서 말인데, 아인트호벤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번에 걸쳐서 해야할 것 같다. 이번엔 이렇게 도시 곳곳을 걸어다닌 이야기를 하다 끝맺을 것 같고, 박물관 이야기와 마음에 들었던 카페들 이야기를 각각 따로 해야 할 것 같고, 또 피트 하인 이크 이야기는 반드시 따로 해야만 한다.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해버렸지만, 한 때 홍대 앞 뒷 골목들을 샅샅히 누비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 때의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어 아쉽다. 가로수길도 예전의 아늑한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고, 심지어 서래마을도 전보다 많이 붐비는 분위기. 한창 연희동이 뜬다길래 갔더니, 금새 북적될 것 같은 불길한 뉘앙스를 받았다. 붐비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한적하고 여유로운 특유의 분위기가 좋아 사람들이 찾을 수록 언젠가 그 장점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하다.
왜 하필 셋이 여행을 하고자 했나. 2006년 여름, E와 함께 S의 본가인 자카르타에 갔었다. 셋이 클래스도 달랐는데 어쩌다보니 그리 되었다. 갓 스무살, 나이가 어려서인지 정말 철없이 10일이나 신세를 지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철없는 다신 못할 짓이다. 부모님께서 너무 반겨주셨고 기사도 붙여주셔서 정말 편하게 놀다 왔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항상 부모님 안부도 묻게 되고, 언젠가 기회되면 다시 찾아뵙고 싶은 마음이다. 그로부터 딱 10년이 된 것이 올 해 2016년 여름이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IT/전자업계에 E는 자동차업계에 그리고 S는 인포메이션 디자인(내가 생각하던 인포그래픽 개념과는 다른) 작업을 하고 있다. 첫 직장에서 꾸준히 자동차 디자이너 생활을 하고 있는 E와는 달리, 나는 2년 단위로 조금씩 다른 생활을 해왔다. 언젠가 기회를 만들어 무모하고 과감한 나의 사회생활 이야기도 조금 풀어봐야겠다.
친구들과 10년 만의 함께 보내는 여름이라니, 의미 부여도 조금 하고 오랜만에 보고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었다. 10년 마다 여행다니자고 구두약속도 했다. 다음은 어디려나. 우리는 그 때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개천인지 하천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집에서 시내 중앙 방면으로 걸을 때마다 이 장면을 보았다. 맑은 날도 비 오는 날도 예뻤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려면 우선 의욕적으로 매일을 살아야 하고, 피곤해서 대충 넘기는 하루라면 그것이 불가능 해진다. 반면에 여행을 일상처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하다. 우선 관광스팟을 다 돌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발 닿는대로 무작정 걷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한 곳에 최대한 오래 머무르는 것이다. 나에게 아인트호벤이 암스테르담보다, 로테르담보다, 런던보다 특별한 이유는 마치 일상을 살듯이 그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사진과 키워드를 나열해 둔 초안이 몇 개 있어서 당분간 글 올리는 속도가 꽤 붙을 것 같다. 이 다음엔 이 길을 걸어 찾아갔던 마음에 드는 카페 세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