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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름 Dec 06. 2016

아인트호벤 민트티

@Eindhoven, Netherlands



아인트호벤에서 갔던 카페들 중 마음에 들었던 세 곳이다. 하나는 건축물이 특이하고 1, 2층에 의류와 소품 등을 판매하는 Sissy-boy. 또 하나는 친구 S를 포함하여 디자인 아카데미 학생들이 즐겨 찾는다는 Usine. 마지막 하나는 아인트호벤에서 암스테르담으로 떠나기 직전에 들렸던 Coffeelab.


멋부린 자전거는 별로 없다.
@Sissy-boy, Eindhoven



아인트호벤은 대체로 맑은 날씨였고 9시, 10시에도 해가 떠있는 날이 있을 정도로 낮이 길었다. 딱 하루 흐리고 비가 왔다. 필립스 뮤지엄(Philips Museum)을 등지고 산디과 돔을 떠올리게 하는 유리로 만들어진 건축물이 있었는데, 이름이 씨시보이(Sissy-boy)였다. 마마보이(Mama-boy)의 누나 버전이랄까. 한 번 들어가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등지고 있는 필립스 뮤지엄을 관람한 날 들어가 보았다. 아인트호벤을 떠나기 전날 식사를 했던 어떤 레스토랑 벽에 아인트호벤 랜드마크 사진들이 붙어있었는데, 이 씨시보이 사진도 거기 있었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을 형상이긴 했는데, 여전히 나에겐 산디과 돔의 투명 버전 느낌이다.


1층은 의류와 생활소품을 파는 매장이었는데 왜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나 잘 모르겠다. S가 추천해준 아이스티를 두 박스 사서 2층으로 올라갔고, 아기들 옷을 만지작 거리다가 친한 언니의 쌍둥이들에게 입혀주고 싶은 원피스를 두 개 구입했다. 문득 북유럽 가면 아기 옷과 소품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겠단 생각이 든다. 갑자기 설렌다.


2층 한켠에 카페공간이 있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주문한 민트티와 아이스라떼.


"여기 민트티는 뭔가 달라. 별거 없는데 맛있어."

말로만 듣던 민트티를 드디어 마주했고 한 모금 마셔보았는데, 정말 맛있었다. 대놓고 싸-하고 시원하다기보다는, 한 템포 늦게 느껴지는 청량감에 가까운 박하향.


"얘네는 라떼에 이걸 넣어먹어."

내 기억이 맞는지 살짝 자신이 없긴 한데, 내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분명 잼이었다. 꿀 같은 잼이랄까. 이건 S에게 다시 한번 물어봐야겠다. 차가운 라떼에 잘 풀어지지 않아서 애를 먹었지만, 저 잼을 왜 안 사 왔나 후회가 될 정도로 맛있었다.


카페 격파 수준으로 주말마다 새로운 카페 찾아다니는 나는 어딜 가도 대충 마시는 법이 없다. 식사도 그렇지만 특히 커피나 차를 마실 때에는 신중하게 카페를 골라, 더 신중하게 메뉴를 골라, 음 역시!라는 생각이 들어야 성에 찬다. 그런 점에서 아인트호벤에서 기억에 남는 카페는 세 곳. 앞서 이야기 한 Sissy-boy와 Usine, 그리고 중앙역 바로 앞에 있는 Coffeelab이다(내가 즐겨가던 홍대 앞 커피랩과는 사뭇 다르다).




@Usine, Eindhoven

 


S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방학 기간이라 한적하고 학기 중에는 자기처럼 작업하는 디자인 아카데미 학생들이 굉장히 많다고 했다. 한 살 어린 대학 동기인 S는 아직도 앳된 얼굴에 맨투맨티에 캡 모자를 쓰고 귀여운 운동화를 신고 다녀서 학생이란 게 참 잘 어울렸다. 나는 디자인 에이전시를 2년 다니고 다니던 학교 대학원생이 되었다. 학부 졸전 준비할 때에는 빨리 끝나고 돈 벌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직장인이 된 후에는 노트북을 가지고 커피가 괜찮으면서 오래 앉아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 카페에서 작업하는 것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2년 만에 다시 학생 신분이 되어서 카페를 전전하며 작업을 하게 되어서 즐거웠다. 물론 논문을 쓸 때에는 또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말이다. 통근버스를 타고 이른 아침 여의도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되니까 나는 또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앉아 과제든 내 작업이든 뭐든 하고 싶다. 이 놈의 변덕. 이런 마음 들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나는 출세하기 글러먹은 것 같다.


작업을 하거나 책 읽기에 좋은 자리.
평일 오후 매우 한적하다.
자연채광이 좋아 이 곳의 조명은 숟가락만 얹은 듯 보였다. (인테리어는 8할이 조명이라던데)


어쨌든, Usine은 겉모습보다 속마음이 더 멋졌다. 분위기 상 식사도 되고 술도 팔 것 같은데, 궁금해진다. 그나저나 왜 민트티 사진이 없는 걸까. 두 번이나 갔는데 찍었다가 잘못 지운 것일까. 씨시보이의 민트티보다 더 어른 맛이 나는 민트티였다. 어느 카페든 민트티에 작은 쿠키를 곁들여 주는데, 막 맛있기보다는 없으면 허전할 맛이랄까.


화장실에 가다가 놀랐다.


화장실에 가다가 진심 놀랐다. 왼쪽은 여자화장실, 오른쪽은 남자화장실인데 머리 위에 걸려있는 전구가 너무 예뻐서 화장실 앞인 것을 까먹을 정도였다. 흰색 타일과 녹색 벽도 참 잘 어울렸다. 화장실 내부도 놀랄 정도로 깔끔하게 잘 되어있었다. 그래, 이래서 내가 그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 도시는 어느 것 하나도 대충 그려진 것이 없었고, 이 모두가 생각하고 '디자인'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Coffeelab, Eindhoven
반은 동네주민, 반은 여행자.
식물들을 대충 걸어놓은 척 해놨다.


여러 번 지나쳐가다가 아인트호벤을 떠나는 날 처음 들어가 보았다. 커피 한 잔과 빵 한 조각 먹어야지 하고 별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샌드위치가 늦게 나온 것 빼고는 다 좋았다. 간판도 안 보고 들어가서 '커피랩'인 줄 몰랐는데 메뉴판을 보는 순간 갑자기 반가움이 밀려왔다. 홍대 앞에서 엄청나게 자주 가던 카페가 바로 산울림소극장 가기 전 내려가는 골목에 위치한 '커피랩'이었다. 대학원 시절에는 정문 바로 옆에 있는 투썸플레이스를 더 자주 가긴 했었는데(접근성 때문에) 학부생 시절에는 집이랑 가깝고 번잡스러운 정문과는 떨어진 그곳을 자주 찾았다. 아- 갑자기 더 그리워지네.


메뉴판을 보니 밀려오는 반가움.
우드 테이블과 우드 트레이, 유약이 거칠게 발린 커피잔, 덩그러니 놓여있던 선인장까지 서로 잘 어울렸다.


그러고 보니 알찬 구성의 샌드위치 사진이 또 없다. 확실히 예전에 Dslr 들고 다니며 열정적으로 사진 찍던 때보다 허술해졌다. 내가 평소 가장 자주 마시는 커피는 얼음 두 조각을 넣어서 받자마자 마시기 좋게 뜨거운 아메리카노이고, 호주에 있을 때에는 롱 블랙과 플랫화이트를 번갈아가며 마셨다. 일반 라떼는 우유맛이 커피 맛보다 강한 느낌이라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를 할 때 샷 추가한 라떼를 주문하기도 한다. 네덜란드에서는 그냥 커피를 달라고 하면 에스프레소와 롱 블랙 중간 정도 되는 농도의 뜨거운 커피를 주는데, 대부분 뜨거운 물 한 잔도 함께 준다. 아마 자기 입맛에 맞게 알아서 마시라는 거겠지. 열차 시간에 맞춰 일어나서 아인트호벤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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