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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름 Dec 07. 2016

필립스, 다프 그리고 반 아베

@Eindhoven, Netherlands



박물관을 세 군데나 가기로 한 날, 비가 꽤 많이 내렸다. 아인트호벤에 뿌리를 둔 브랜드 필립스의 역사를 기록한 필립스 뮤지엄(Philips museum), 비 오는 날이 잘 어울리는 건축물이 인상적인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반 아베 뮤지엄(Van abbemuseum), 그리고 아인트호벤에 기반하여 대형트럭으로 유명한 자동차 브랜드 다프 뮤지엄(Daf museum) 이렇게 세 곳.


비가 꽤 많이 내린 날,
@Philips museum, Eindhoven

필립스 뮤지엄의 외관은 과감하고 캐주얼한 이미지였다. 200년도 넘은 오래된 기업이며 전구 생산을 시작으로 온갖 전자제품을 만들어왔고, 모든 집이 필립스 제품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정도로 제품군도 다양하고 대중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물론 전공이 산업디자인이다 보니 이제는 클래식이 되어버린 제품도 많이 봐왔고, 음향이나 의료기기 등 자체적인 연구개발이 필수적인 분야에서도 꽤나 잘 나간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필립스의 시작이 이 곳 아인트호벤이란 것은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렇게 친근한 분위기의 박물관이라니,

역시나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맞이해 주셨다. 입장권 구입과 동시에 가방과 옷은 락커에 보관해야 한다며 친절하게 그곳까지 안내해주고, 박물관을 돌아보는 순서에 대해서도 친절히 알려주고. 한적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여느 박물관과는 달랐다.


그 당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생각보다 리얼하다.
필립스 제품들과 더불어 가구, 소품도 볼만하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

역시나 이 곳도 체험에 신경을 많이 쓴 듯 보였다. 옛 전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충을 들려주기도 하고, 마치 그림자만 보고도 키와 몸무게 등을 맞추는 듯한 섹션도 있었다. 제품군이 다양하니까 아이들 교육용 컨텐츠도 꽤 많았고, 중간중간 나이 드신 분들은 느긋하게 영상을 보거나 음향기기 섹션에서 음악을 듣기도 하셨다. 전시구성이 전반적으로 알차고 진부하지 않았다.


레트로풍의 옛 광고이미지.

전시회를 보면 꼭 엽서를 하나씩 사는 편이라서 뒤적거려봤는데, 왜인지 지갑은 열리지 않았다. 차라리 뭔가 부실해 보이는 얇은 종이에 인쇄를 해주었으면 더 예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Van abbemuseum, Eindhoven

S가 강력 추천한 반 아베 뮤지엄으로 향하는 길에는 유독 비가 더 많이 왔다. 비가 오고 하늘이 흐리니 맑은 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고, 그렇게 길던 해가 낮부터 사라진 게 어색했다.


물에 떠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물을 머금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정말 매력적인 구조였다.
비가 와서 다행이다.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들도 많겠지만, 현대미술작품과 디자인 콜라보레이션 작품 위주로 관람하였다. 흔한 일은 아닌데 전시 중인 콘텐츠보다 미술관을 살펴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맑은 날이나 추운 날 가보면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것 같다. 또 올 수 있을까.


어떤 제품들을 팔고있을까, 어떤 책들이 있을까.
나는 선물용 에코백을 하나 구입했다.
마음에 들었던 드로잉.
내가 좋아하는 코랄핑크.
한 장 훔쳐오고 싶은 포스터였다.


문득 대림미술관이 떠올랐다. 어떤 컨텐츠를 전시하냐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필립스 뮤지엄과 반 아베 뮤지엄을 보고 나니 2010년인가 2011년에 있었던 디터 람스 전시가 떠올랐다. 그리고 핀 율 전시도 떠올랐다. 대림미술관에서 하는 대부분의 전시를 다 보았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라이언 맥긴리와 디터 람스, 그리고 핀 율 이었다. 그리고 가장 아쉬웠던 전시는 스와로브스키였는데, 누적 관람객이 많아서 전시기간 연장한다고 할 때 조금 놀랐다. 나만 그냥 그랬나 하는 생각. 아직 닉 나이트 사진전 못 봤는데, 빨리 보러 가야겠다.



@Daf Museum, Eindhoven



S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고 전시구성이 상상초월이라고 추천한 다프 자동차 박물관에 갔다. E는 자동차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나랑은 또 다른 시각으로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새삼 재미있다. 같은 학교 같은 학과를 졸업해서 이렇게 다른 일을 하고 있다니. 다프(Daf)는 대형 버스와 트럭 브랜드 이미지가 강하지만 예전에는 정말 다양한 자동차를 출시했던 브랜드이다. 위트 있는 디테일과 과감한 컬러를 하나하나 뜯어보느라 세 개의 뮤지엄들 중 가장 오랜 시간 머물렀던 것 같다.


시대적 특성을 구현한 전시공간이 인상적이다.
시트가 라탄인데 ,심지어 문도 없다.
사진으로는 다이캐스트같지만 어마어마하게 크다.
마구 몰아놓은 듯 보이지만, 컨셉별로 잘 모여있다.

2005년 코엑스에서 내 생애 첫 모터쇼 관람을 한 날이 떠올랐다. 아마도 4월이었던 것 같은데, 볼 게 너무 많아서 정신을 못 차렸다. 그때 자동차에 더 매료되었다면 또 다른 삶을 살고 있겠지. 멋진 차는 예쁜 꽃을 보는 것과 같이 좋다. 게다가 편하고 빠르면 더 좋고.



비가 오니 테라스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많이 걷고, 많이 보았더니 배가 고파졌다. 네덜란드의 음식 중에는 매운 음식이 별로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슬슬 매콤한 것이 당기기 시작했다. 스파이시한 치킨을 파는 곳으로 가자며 S가 이끄는 곳으로 향했다. 문득 이전 문장을 쓰면서 우리가 평소에 외래어를 얼마나 많이 쓰는지 새삼 놀라고 있다.


치킨과 함께 나온 소스가 굉장히 맛있다.

지금 배가 부른 상태인데도 입맛이 돌 정도로, 매콤한 치킨과 야채와 소스의 조합이 괜찮았다. 어딜 가도 식사를 대충하지 않는 나인데 아인트호벤에 있는 동안은 S에게 의지를 많이 했기 때문에 미리 알아둔 식당이 없었다. 미친 듯이 맛있는 곳도 없었지만, 대부분 괜찮았다. 영국에 비하면 정말 맛있다. 갑자기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먹고 질려버린 피시 앤 칩스가 떠올라서 코웃음이 났다. 맛있다고 먹었는데 다신 피시 앤 칩스를 찾지 않게 되었고 최근 부산 더베이 101에 가서야 한 번 먹었다면 말 다 한 것 아닌가. 아, 첼시에서 사랑에 빠진 식당 딱 하나는 언젠가 꼭 소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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