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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름 Dec 07. 2016

피트 하인 이크 이야기

@Eindhoven, Netherlands



디자인이 핫한 도시가 있고, 그 도시 또는 나라를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파리와 밀라노처럼 예나 지금이나 패션 디자인이 핫한 도시가 있다면, 그에 비해 산업 디자인이 핫한 도시는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 산업 디자인(Industrial design)의 개념은 건축과 공예의 근대화에서 19세기 중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미술공예운동.. 이라고 계속 이어간다면 내 이야기가 되지 않겠지 싶다. 아인트호벤에서 가장 핫한 디자이너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De productie van Piet Hein Eek BV(피트 하인 이크)


다시 정신 차리고, 피트 하인 이크(Piet Hein Eek)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름은 조금 어렵지만 폐자재를 소재로 만든 그의 대표적인 가구를 보면 어디선가 본듯하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꽤 될 것 같다. 아인트호벤의 Strijp-S 지역에 가면,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이 모여있는 동네가 나오는데 그 중심에 피트 하인 이크가 있다.


아인트호벤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15분가량 이동하면 필립스 스타디온(Philips stadion)도 보이고, 넉넉한 간격을 두고 서있는 건물들이 눈에 띈다. 디자인 스튜디오나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꽤 있다고 한다.


@Philips stadion(필립스 스타디온)


아인트호벤 하면 축구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대다수겠지 싶다. 혹시 흥미로운 무언가 있을까 싶어서 들어가 봤지만, 역시나 없었다. 조금 더 걸어보았더니 뭔가 분위기가 독특한 광장 같은 것이 나타났다.


맑은 날 오후 이곳에서, 아인트호벤 10대들이 스케이드보드를 탄다고 한다.
전체적인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눈길을 끌려는 노력.
이 시트지 작업은 정말 대단했다.


성격은 많이 다르지만, 헤이리 마을과 약간 비슷한 구석이 있는 동네였다. 헤이리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작가들이라면, 이 동네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디자이너에 더 가깝다. 작가스러움과 상업스러움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하면서 나오는 길에 가봐야지 하는 상점들 찜하면서 내내 걸었더니, 드디어 그의 작업실이 나타났다.


@De productie van Piet Hein Eek(피트 하인 이크)




이 정도 규모일 줄은 몰랐다. 해봤자 큰 건물 하나겠지 싶었는데, 마치 하나의 학교 같은 느낌이었다. 시원하게 뚫려있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가구들과 작업 중인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이 곳이 궁금해서 찾은 사람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정확히 어디가 정문 인지도 모르겠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내가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일단 쭈욱 걸어보았더니 가구와 소품을 파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반가운 스툴들이 눈에 띄었다.
버려진 폐목재에 새 옷을 입힌 것들도 있었지만,
원자재 그대로의 질감을 살린 이 스툴이 더 마음에 들었다.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눈 앞에 당장 보이는 이 것들을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저 안에는 무엇이 더 있을까 궁금한 마음이 더 커서 조금 빨리 발을 옮겼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각종 디자인 소품들이 가득했다.


탐나는 물건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2층에는 다양한 디자이너의 가구들이 가득했다.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는 동선과 분위기.
반가운 톰 딕슨.


대부분 장식적 요소가 많지 않은 가구였는데, 상당히 많은 수의 디자이너의 작품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신진 디자이너들의 가구도 입점해있는 것 같았고, 누군가가 매거진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가족 단위로 가구를 보러 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 테이블 하나, 스툴 하나, 조명 하나씩 사가면 어떤 곳이든 멋진 공간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어서, 그 가족이 사는 집이 궁금해졌다.


입구 쪽 가구와 소품들을 2층에서 내려다보니 또 다른 느낌. .


이 글 처음에 디자인이 핫한 도시-라는 말을 쓴 것과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네덜란드가 요즘 좀 핫하다. 내가 학부생이었던 시절엔 런던 디자인 100% 전이 유명했고, 더불어 도쿄 디자인 100% 전도 가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지금 런던 디자인 100% 전은 예전만 못하고 도쿄의 경우는 이미 사라져 버려 전혀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다. 그에 비해 더치 디자인 위크는 유럽 전역에서 관심을 가지고, 세계 곳곳의 디자이너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대표적인 디자인 박람회 축에 끼어 있다. 공간이 꽤 넓어서 슥 둘러보기에도 시간이 꽤나 걸렸고, 언젠가 더치 디자인 위크(Dutch Design Week) 때 다시 방문하겠노라 결심했다.





가구와 소품을 파는 공간을 벗어나서 코너를 돌자 너무나 귀여운 카페를 만났다. 같이 가준 S 말로는 저 아이덴티티가 끝내주게 적용되었고 가격도 착하다고 했다. 마침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느라 다른 날보다 아침이 부실했었는데 여기저기 돌아보느라 점심시간이 훌쩍 넘어서, 늦은 점심을 가볍게 해결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을 돌아서,
이 아이들을 만나면 안 들어갈 수가 없다.
너무 많은 것들이 눈길을 끄는 공간.


저 병따개 같이 생긴 심볼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고, 피트 하인 이크의 스툴도 눈에 띄었다. 매우 작은 테이블도 있었고, 엄청나게 긴 테이블도 있었다. 무심하게 널브러진 듯한 소품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모든 게 다 자연스러워 보였다. 나와 S는 친구들로 보이는 중년 여성 셋이 앉은 테이블과 70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노부부가 앉은 테이블 사이에 앉았다.


메뉴판까지 이러면 좀 심한 것 아닌가.


마치 전시장에 가서 팸플릿을 가져가듯이, 자연스럽게 가져갈 뻔 한 메뉴판이었다. 속지는 무난했으나 겉표지가 너무나 깜찍한 것 아닌가. 또 저 병따개 얼굴이 가득 차 있어서 정말 정들 뻔했다. 음료 메뉴판에는 물컵이, 식사 메뉴판에는 다육이인지 선인장인지가 있었는데 색감이 너무 고왔다. 양도 많고 가격도 착하다고 하니까 샐러드가 곁들여진 오믈렛을 주문했다.


익숙한 오믈렛의 모습은 아니었는데, 굉장히 맛있다.
커피와 핫초콜릿도 맛이 괜찮은 편.


결론은, 맛있었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오므라이스도 맛있었고, 빵과 샐러드는 담백했다. 네덜란드에 머무르는 동안 마신 커피는 별로인 적이 없었으며, 민트티는 정말 끝내준다. 아인트호벤에서 인상 깊었던 카페 세 곳의 이야기는 따로 떼어내서 해야 할 정도이다. 만족스럽게 점심 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너무 행복했다. 아, 이 곳에 딱 두 달만 살아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멋진 노부부였는데, 막판에 조금 다퉜다.


네덜란드에 머물면서 느낀 점은, 노인들이 참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으니 좋은 것들을 포기하고, 좋은 것들을 젊은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그러니 젊은 시절이 좋았다는 한탄이 늘어가는 노년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들을 전부 마쳤으니 이젠 정말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워야겠다며, 가장 분위기 좋고 맛이 좋은 곳에 모여 부부간에 친구 간에 즐거운 수다를 떠는 그런 노인들이 참 많이 눈에 띄었다. 옆자리 노부부는 한창 분위기 좋다가 막판에 조금 다퉈서 오히려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더니, 내 눈에 비친 뷰.


천정이 높고 조명이 예뻤다는 것을 식사 후에 안 것을 보면, 많이 걸으면서 지쳐있었나 보다. 이렇게 눈이 즐겁고 입이 즐겁다면 더 지쳐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많지 않은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그 도시를 대표하는 디자인 스팟을 찾는 건 나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 도쿄 21_21 Design Sight(21 21 디자인 사이트)에서 내가 좋아하는 프랑크 게리(Frank Gehry) 전시를 본 것도 좋았고,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처음 접한 현대미술작가들의 작품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이 곳 Strijp-S에서 만난 피트 하인 이크(Piet Hein Eek)의 작품들과 공간이 오랫동안 가장 인상 깊은 곳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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