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tterdam, Netherlands
로테르담(Rotterdam)에 도착했다.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공존하고 이를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건축도시'라고 불린다는 로테르담.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떤 축제 기간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중앙역 근처가 꽤나 붐볐다.
길가에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함께 걷고 노래를 하고 있었다. 로테르담의 일정은 당일치기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 속에 섞일 수가 없었고,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하늘에 빠르게 걸었다. 네덜란드를 가기로 되었을 때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로테르담에 마켓 홀(Markthal)이라는 시장과 쇼핑몰 중간쯤 되는 곳을 발견했는데, 꼭 가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로테르담에 또 볼 것이 무엇이 있나, 하고 찾아보자 평범하지 않은 건축물 사진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런 곳이라면, 꼭 가볼만하겠지.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의 아파트 또는 맨션이 줄을 이었다. 날이 맑았다면 테라스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이런 곳에 살면 매일이 특별할까 하는 궁금증이 밀려왔다. 길가에 무심하게 세워져 있는 자전거들은 역시나 낡았다. S말로는 자전거를 도둑맞는 일이 너무나 흔해서 굳이 좋은 자전거를 사지 않는다는데, 누군가가 훔친 자전거를 싼 맛에 사다 보면 자기 자전거를 사게 되는 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고등학교 때 버려진 삼선 슬리퍼를 가져다 신었는데 내가 1학년 때 신던 것이라는 걸 발견했을 때처럼 어이없겠지 싶었다. 마켓 홀로 향하는 길에 들어가 보고 싶은 카페도 있었고 좀 더 둘러보고 싶은 골목길도 있었지만, 한정된 시간은 헤이(HAY)에서 소비하기로 하였다.
헤이를 어디서 처음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기억에 남는 것은 서래마을 루밍에서 이쁘다 하고 자세히 살펴본 것들 중에 헤이의 제품들이 꽤 되었다는 것과 상하이 가구거리에 시원시원한 디스플레이로 내 발목을 잡았던 것이 그 헤이 매장이었다는 것. 하얏트호텔 올라가는 길에도 매장이 생겼고, 이런저런 편집샵에도 많이 입점되어 있지만 단 한 번도 구입을 해 본 적은 없었다.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확실히 싸다고 하니까 꼭 무언가 사가야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들어갔더니, 매장이 엄청나게 컸다.
쉽게 사 갈 수 없는 가구에 제일 먼저 눈이 간다. 이사 가면 이쁘게 꾸며야지, 나중에 결혼하면 그때 비싼 거 사야지 하며 더 좋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맞춰 살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가구와 패브릭 제품들을 보면 입맛만 다신다.
이 코너에 서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타월은 선뜻 구입하기에 비쌌고, 또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들은 여행자인 나에게 부담이 되니 탈락이고, 결국 나는 또 가볍고 만만한 가격의 사무용품을 만지작 거린다. 노트와 펜도 컬러와 패턴이 다양하니까 고민이 길어졌다.
볼 때마다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트레이를 두 개 구입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컬러 조합은 한 놈이 솔드아웃이라 불가능했기 때문에 고심 끝에 B 안을 만들어 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한국에서 본 가격보다 훨씬 싸서 안 살 수가 없었달까. 큰 놈 하나 가격에 큰 놈 하나, 작은놈 하나를 살 수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사진을 보다 보니 사 올걸 하고 아쉬워지는 것들도 한 둘이 아니다. 이런 아쉬움이 없으면 여행이 아니겠지. 판매를 하는 테이블이지만 누군가가 앉아서 책을 읽고 있어도 자연스러울 것 같은 디스플레이. 선반에 나무 소재의 소품들이 덩그러니 올라가 있고, 요즘 눈에 많이 띄는 행잉 플랜츠도 있고 가느다랗게 흐트러진 풀떼기들이 참 예뻤다. 트레이 두 개, 노트 한 세트, 펜 세 개, 자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쇼핑 마무리.
비가 후두둑 떨어져서 우산을 썼다 말았다를 반복하며 걷자 저기 멀리 마켓 홀(Markthal)이 눈에 띄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에 어마어마한 모양의 건물이었다. 대체 이런 건 어떻게 만드는 거야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며 들어선 그곳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튜브를 반쯤 바닥에 박아놓은 듯한 형상에 내부에는 온갖 식당과 식료품점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며 주말에 먹을 것들을 사기도 하고 가족 단위로 이른 저녁 식사를 하고 있기도 했다. 우선 한 바퀴 둘러본 후에 식사를 하고 살 것이 있나 더 보기로 했다. 암스테르담이나 아인트호벤에 가는 사람들에겐 꼭 하루 시간 내서 로테르담에 가보라 하고 싶다.
정말 거짓말 아니고, 다 맛있어 보여서 고민이 많이 됐다. 먹고 싶은 게 없어서 망설이는 게 아니라 다 먹고 싶어서 망설여지는 기분은 꽤나 오랜만. 전날 먹은 것들과 다음날 먹기로 한 것들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상태여서 그와 겹치지 않는 종류로 먹기로 했다. 네덜란드가 빵이 유명한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먹었던 패스츄리, 크로와상, 샌드위치는 전부 다 맛있었다. 두툼한 패티와 소시지, 조금의 여채가 곁들여진 빅 플레이트를 주문해서 셋이 나눠먹었는데 양이 많아서 조금 남겼다. 여행을 가면 최대한 다양한 음식과 디저트를 먹고 싶으니까 무의식 중에 조금 조절하게 되는 것도 같다. 배가 불러도 다른 것들이 못 들어갈 정도로 미친 듯이 부르지는 않는 그 선을 지킬 것. 언제고 또 먹고 싶은 디저트를 발견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지하 1, 2층은 다음에 가기로 했다. 그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도쿄처럼 여러 번 가게 된 도시는 다음에 가지 뭐,라고 하면 정말 다음에 가게 되던데 말이다. 네덜란드는 너무 멀다.
마켓 홀에서 나와 코너를 돌자, 연필 모양의 빌딩과 그 옆에 귀엽게 줄 서 있는 큐브 하우스가 보였다. 축제 기간이라 그런지 바닥이 매우 지저분했다. 무대를 지었다가 허문 것 같은데 그 흔적이 너무 노골적이고, 왜 아무도 치우지 않는 거지.
한 마디로 귀엽다. 저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것이 신기하고 궁금한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약간의 입장료를 지불하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들어가 봐도 좋았겠지만 한 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아인트호벤에 가기로 했다.
내가 다닌 산업디자인과는 제품 디자인, 공간 디자인, 운송 디자인으로 세부 전공을 나누었다. 내가 입학할 때만 해도 무조건 공간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결국 제품 디자인으로 졸전을 치르고 졸업했다. 중간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생각의 변화를 겪었다. 우선 운송 디자인은 내가 자동차를 마니아급으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할 것이 아니라고 2학년 때 단념했다. 대부분의 동기들이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기 때문에 조금 외롭게 다닌 3학년 때 제품 디자인과 공간 디자인을 병행하면서 조금 현실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공간 디자인보다 제품 디자인이 나을 것 같다고 참 용감하게 결단을 내려서는, 결국 제품 디자인으로 학부생 시절을 마무리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다. 마니아급으로 자동차를 좋아하지 않아도 자동차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고, 공간 디자인을 하면서도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는데 말이다. 얕은 생각으로 내린 결론이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고 그다지 후회하지도 않는다. 사실 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들이니까 말이다. 지금도 멋진 건축물을 보고 마음이 동하는 인테리어를 보면 언젠가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로테르담은 건축도시라는 애칭에 걸맞게 길을 걸으며 건물들만 눈에 담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도시이다.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던가, 도시의 랜드마크라던가 하는 한 줄 타이틀이 없어도 눈에 담아둘 가치가 충분한 건축물이 너무나 많아서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자연스레 건축가나 디자이너를 꿈꾸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이야기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으나, 내가 본 네덜란드는 노인들이 행복한 나라이다. 나이가 들어 생긴 시간적 여유를 심심하고 헛되게 보내지 않는 분위기가 나라 전반에 깔려있고, 그래서 젊게 행복하게 사는 노인들이 많아 보였다. 나이가 들었으니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던가, 나이가 들었으니 핫 플레이스에는 가기 좀 그렇다던가 하는 식으로 젊은이들에게 좋은 것을 양보하고 빼앗기는 삶이 아니다. 어디 어디가 좋다더라 하고 가면 노인들이 제일 먼저 찾아와 있다는 친구의 말이 정말이구나 싶은 순간이 많았다.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5년, 어른으로 성장하며 방황하는 15년, 어른이라고 하기엔 미숙한 10년을 보내니 나는 지금의 나이가 되었다. 여러 의미로 많은 일을 겪으며 자식에게 희생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20년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곧 노인이 되겠구나 하는 중년의 나이가 되겠지. 내가 한 때 겪었던 어른이라고 하기엔 미숙한 10년과 여러 의미의 많은 일을 겪는 자식들에게 쓰이는 신경을 거두지 못한 채 또 몇 년을 지내다 보면 노인의 나이가 되겠지. 요즘 60세는 노년 축에도 못 낀다고 하던데, 70대나 8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 눈에는 젊은 게 좋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젊은 거겠지만. 진심으로 바라건대, 나의 60대는 진짜 젊은 게 좋은 60대였으면 좋겠다. 꼭 여행을 가지 않아도 잘 나간다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는 주말을 보내고 싶다. 점점 더 그런 분위기가 돼가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우선, 부모님한테나 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