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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름 Dec 20. 2016

암스테르담 아이필름뮤지엄  EYE filmmuseum

@Amsterdam, Netherlands


@Amsterdam Centraal, Netherlands

암스테르담 마지막 날은 공항 근처 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중앙역 근처 저렴한 호텔도 있었지만 공항 근처에 눈에 띄는 독특한 호텔이 있어서 1박에 20만 원이 넘는 금액을 내고 결제했다. 잠만 잘 것 치고는 사치를 부린 이유는 글 마지막에 얘기하기로.


아인트호벤에 남은 S와 작별 인사를 한 후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역시나 하늘이 맑았고 하얀 구름이 꽤나 빠르게 움직였다. 역 안에서 스타벅스를 발견했고 내 입맛에 익숙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신 후, 페리를 타기 위해 역 뒤편으로 이동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뒤편은 이러했다.
이토록 끝내주게 좋은 날씨에 페리를 탈 수 있다니.

내가 탈 페리는 아이 필름 뮤지엄(EYE filmmuseum)으로 향하는 무료 페리였다. 강을 건너 보이는 이 독특하게 생긴 영화 박물관은 페리도 무료, 입장료도 무료(물론 한정되게)이기 때문에 암스테르담을 찾은 사람들이 많이 들린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페리를 기다리고 있다.

역시나 자전거가 많이 보인다. 영화 박물관 근처에 자전거 타기 좋은 공원이 있나 보다 생각하며 그들 틈에 섞여 줄을 섰다. 네덜란드에서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가 공공질서였는데, 이 사람들은 줄이 아닌 듯 줄을 서있고 정해지지 않은 듯 정해진 순서를 따른다. 수많은 사람들과 자전거가 뒤섞여 있는데 짜증 섞인 탄식 한 번 흘러나오지 않는다.


5분도 안되어 반대편에 도착, 모두 그 곳을 향해 걷는다.
@EYE filmmuseum, Amsterdam

한 5분 정도, 금방 도착했다. 예상대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은 길 건너편으로 이동했고, 나처럼 걷는 사람들은 아이 필름 뮤지엄을 향해 걸었다. 내부가 궁금해지는 건물 모습. 건물 형태 자체가 독특해서인지 기념품 샵이나 안내책자에도 이 형태가 자주 보인다. 강바람이 꽤나 시원했다. 여유로운 표정의 사람들 중, 나도 그중 하나라는 것이 새삼 기쁘다.


영화박물관 답게 영화의 역사를 담고 있다.
자세히 볼 수 밖에 없는 오래된 필름들.

유료 전시실도 있었으나 나에게 주어진 시간도 정해져 있고 해서 무료 전시실만 둘러보기로 했다. 한 달에도 여러 편 영화를 보는데 문득 경이로울 때가 있다. 장면과 소리를 담고 편집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연기-라는 것을 할 생각을 했다는 것이 새삼 대단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주말마다 비디오를 빌려다 보는 것이 당연했고, 대학시절 내내 영화관 VIP였을 정도로 영화 보는 것에 용돈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좋아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고 따로 할 일이 없을 때 '영화 볼까' 하는 요즘은 그때보다는 조금 시들하다. 하지만 아직도 누군가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편하고 즐거울 때도 드물다.


많은 사람들이 수다를 떨고 있다.
다양한 시대의 영화 속 장면들이 보인다.
넋 놓고 구경하기 좋은 공간.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지직 거리는 장면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S의 말을 빌리자면 네덜란드어는 유럽의 중국어라고 했다. 다른 언어에 비해 성조나 억양이 다이나믹해서 라는데, 정말 그랬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조금 시끄럽지만 재미있게 들리는 말.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되어 이 화면, 저 화면 고개를 돌리며 둘러보았다. 멜빵바지를 입은 꼬마들이 모래밭에 앉아 말썽 피우려고 작당하는 영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붐비는 카페테리아, 역시나 멋쟁이 노인들이 많이 보인다.

기프트숍에서 몰스킨 노트를 한 권 샀다. 그리고 들어선 카페테리아. 생각보다 넓고 천정이 높아 시원한 느낌이었다. 전면 유리창을 통해 암스테르담 중앙역 근처가 보였다. 공간이 넓어 웅성거리는 소리가 웅웅- 가짜처럼 느껴졌다. 역시나 이 곳도 멋쟁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한결같이 편안한 표정. 내가 여행 내내 부러워하던 그것.


계단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기로 하고,
상영시간표에 적당한 영화가 없었다.

아이 필름 뮤지엄으로 가는 페리를 타기 직전에 커피를 마시기도 했고, 자리도 없었다. 그래서 계단 위쪽 공간이 잠시 앉았다 가기로 했다. 적당한 영화를 적당한 시간에 상영했다면 분명 한 편 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밀려왔다. 커다란 헤드셋이 있길래 일단 집어 썼다.


영화 '죠스'의 카메라 기법에 대한 음성을 듣고 일어섰다.

Music -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Camera - Jaws

Editing - Run Lora run

Scenario - Chinatown

Casting - Love is all


죠스(Jaws)가 1975년 영화라니! 하며 단번에 카메라 기법에 대한 스토리를 듣기로 했다. 죠스는 ost도 유명한데 음악이 아닌 카메라 기법을 소개한다고 하니 더 궁금했다. 다행히 악센트도 어렵지 않았고 내용도 쉽게 풀어서 말해줘서 처음부터 끝까지 잘 들었다. 물에 빠진 사람의 1인칭 시선에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를 물 위로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관객 자신이 물에 빠진듯한 느낌을 주려 했다, 수면 위에선 불안하게 흔들고 수면 아래에선 얼어붙은 듯한 느낌을 주려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러했다. 단순히 영화 음악을 들려주는 것보다 이런 콘텐츠를 짧게나마 듣고 배울 수 있다니, 여기 사람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싶다.


여유로운 사람들,
다음에 오면 커피라도 한 잔 해야겠다.
암스테르담 일정이 끝나가는 순간.

다음엔 꼭 커피 한 잔이라도 하리라. 아쉬움이 무겁게 남았지만 일주일 넘는 일정 동안 다리도 붓고 피로도 누적되었으니, 공항 근처 호텔로 향했다. 드디어 네덜란드에서의 마지막 밤.



중앙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오자,
포즈를 취하는 남자 한 명을 발견했다.
전위적인 포즈와 사진작가, 패션 화보인걸까.
꼭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날씨다.

경사진 면에 위태롭게 서서 있는 데로 멋진 척을 하는 남성을 발견했는데, 아무래도 스포츠 브랜드 화보를 찍는 모양이었다. 딱 봐도 예술가같이, 소위 말하는 예수님 머리를 휘날리는 사진작가가 더 눈에 띄었다. 강변에 앉아있는 사람들 뒷모습이 드물게 보이는 오후 두 시.


알록달록 벤치가 예쁜 카페.
노란 스포츠카가 풍경에 완벽히 어울렸다.

참 재미있는 것은, 페리에서 내려 아이 필름 뮤지엄을 향해 걸어갈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돌아가는 길에 온통 새로이 보였다. 컬러풀한 벤치가 매력적인 한산한 카페도 보였고, 레스토랑 앞에 내어진 쨍한 오렌지색 천막도 보였다. 그리고 노란 스포츠카, 백발의 노부부(어쩌면 애인, 아니면 친구)가 눈에 띈다. 네덜란드는 백년해로를 조장하는 나라임이 분명하다.


나의 여행 계획 짜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항공권 예약, 반드시 가야 할 곳 체크, 숙소 예약. 여행을 가냐 마냐의 기로이기 때문에 항공권 예약에 가장 긴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가장 내적 갈등(?)이 심한 것은 숙소 예약 건이다. 일단 잠이 들면 죽은 듯이 15시간도 거뜬히 안 깨고 자는 나지만, 작은 소음이라도 있으면 잠을 시작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흔한 게스트하우스에도 묵어본 적이 없다. 돈은 없지만 잠은 편한데서 자야 하니 돈이 많이 들 수밖에.


네덜란드 여행의 마지막 밤은 스키폴 공항과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시티즌 엠(Citizen M) 호텔이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공간,
로비는 여느 부티크 호텔 못지 않다.

다음날 오전 비행을 위해 암스테르담 중앙 역 근처 호텔을 알아보던 찰나, 눈에 띄는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이런 부티크 호텔이라면 조금 비싸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찾아보니 공항 근처의 시티즌 엠(CitizenM) 호텔이었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인접한 지점에 대한 후기는 적었으나 다른 도시에 있는 후기들을 보니, 미래형 호텔이라던가 작지만 매우 만족한다던가 좋은 내용뿐이었다. 미래형 호텔이란 부분은 객실 인테리어와 체크인/아웃 시스템 등을 통틀어 얘기한 것 같은데, 인테리어가 또 엄청나게 미니멀하지는 않았다. 1박에 20만 원 대라서 굳이 이 가격에 여기를 묵는 게 좋을까, 라는 고민을 잠시 했지만. 궁금하니까 일단 예약을 했다.


들어서자마자 펼쳐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미래형 이란 말이 무색하게 따뜻하고 정적인 분위기, 생각 많이 해서 구입했을 테이블과 스툴과 소파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셀프 체크인은 아이맥으로 할 수 있는데 도움을 주는 직원도 한 명 배치되어 있다.


룸에 들어서자 보이는 웰컴 사인.

방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의 첫인상은 일단 합격. 웰컴 사인이 벽걸이 텔레비전과 아이패드에 띄워져 있고, 기본 설정인 듯 잔잔한 조명과 음악이 깔려 있다. 여행, 휴식, 비즈니스 등 투숙객이 모드를 선택하면 그에 맞는 조명이 세팅되고 음악도 조절할 수 있다.


침대 세로길이 폭이라 꽤 좁은데, 답답하진 않다.
전날 짐 싸느라 엄청나게 애를 먹었다.
별도의 여닫이 문이 없이, 동글동글 구역이 나눠진 바닥.

예상대로 룸 사이즈는 작았지만 쾌적한 공간. 워커힐 W호텔의 1인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래형 인테리어라는 말은 세면대와 샤워부스, 토일렛의 별도 공간 구획을 짓는 방식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꾸역꾸역 담아둔 캐리어를 열고 네덜란드 마지막 쇼핑이 된 사봉(Sabon)에서 산 것들을 또 꾸역꾸역 담고 잠갔다.


원하는 무드의 조명과 음악이 알아서 조절된다.
설마 이게 다 무료겠어- 의심하게 했던 아이패드의 영화들.
남은 유로를 탈탈 털어 구입한 마지막 밤의 간식들.

아이패드에 엄청나게 많은 영화가 있었는데 최신 영화도 여럿 있었다. 게다가 성인 영화도 엄청나게 많았는데, 금액이 하나도 안 쓰여 있는 거다. 물론, 성인 영화가 아닌 최신 영화를 보고픈 마음에 이게 전부 무료일까 궁금해졌다. 괜히 어림짐작 했다가 요금폭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포데스크에 문의를 했다. 이 영화들 전부 무료 맞냐는

내 질문을 들은 직원은, 이런 질문을 골백번도 더 들었다는 말투로 물론, 네가 보고 싶은 거 다 봐-라고 답했다. 오예-


내가 본 영화는 대니쉬 걸(The danish girl, 2016), 인턴(The intern, 2015), 하트 오브 더 씨(In the heart of the sea, 2015) 이렇게 세 편이었다. 대니쉬 걸은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은 영화였기 때문에 또 보게 되었고, 인턴은 짐 풀어헤치고 쌀 때 틀어놓기 좋았다. 하트 오브 더 씨는 실존했던 고래에 대한 얘기라고 들어서 봤다가 뜻하지 않은 공포스러움을 맛봤다.


커피는 좀 비싸다.
로비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공간.

휴식다운 휴식을 충분히 누리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니 말 그대로 꿀잠을 잤다. 다음날 일어나 공항 근처에서 잔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여유를 잠시 또 누리고, 스키폴 공항으로 향했다.


항상 그렇듯이 여행은 아쉬움을 남긴다. 좋았던 장면들은 아련히 기억에 남고, 본 사진을 또 보고 또 보면서 여긴 또 가야지-결심도 해보고. 다음에 가면 아쉬웠던 점을 채워야겠단 생각을 하지만, 간 곳에 또 가는 여행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나만 해도 제주도, 부산, 도쿄 외에는 여러 번 여행으로 간 적이 없으니 말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부터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어디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를 한 번 더 되짚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엄청 맛있게 먹은 식당 이름이 기억이 안 나거나, 거의 하루가 통째로 기억이 안 나서 스스로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남겨두면 훗날 참 잘했다-싶은 순간이 생기겠지. 그리고 또 내가 밟았던 곳에 가길 희망하는 누군가에게 좀 더 구체적인 설렘도 줄 수 있겠지.


EYE filmmuseum

https://www.eyefilm.nl/en

Citizen M Hotel

https://www.citizen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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