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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름 Jan 23. 2017

먹먹한 나의 첫 런던

@London, UK


흐리다 못해 하얀 런던의 하늘

런던에 대한 로망은 하나도 없었다. 우아하고 무뚝뚝한 사람들이 빗방울이 떨어져도 우산 없이 걸어 다니는 풍경이 그려지고, 물가는 비싼데 음식이 참 맛없다는 얘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일까. 가끔 있는 맑은 날 찍힌 사진을 보면 또 매력적인데, 노팅힐에 나온 그 언덕은 또 매력적인데, 영국 악센트가 강한 영어를 말하는 배우들은 또 매력적인데 말이다.


런던의 첫인상

위 사진이 딱 런던의 첫인상이었다. 분명 낮이지만 구름이 가득 껴 뿌연 하늘에 무뚝뚝해 보이는 신사 한 명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 왜 이 날씨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지, 왜 수트에 어울리지 않는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지 미스터리해 보이는 신사. 가기 전부터 날씨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하필 비 오는 날 왔어-라고 하기엔 비가 잦은 편이라 그냥 그려려니 하기로.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라 여행 동선도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멋스럽게 낡은 벽돌 건물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이 곳에서는 길을 잃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본듯한 건물들, 방금 본 듯한 건물들이 너무 많았다. 휘황찬란한 간판도 없고 큰 면적의 광고 따위도 없었다. 그래서 금방 익숙해질 것 같기도, 계속 길을 익히지 못할 것 같기도 한 느낌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Underground

지하철을 튜브라 하고, 역 이름보다 Underground라는 단어가 표식인 런던의 지하철역. 책이나 영화에서만 봐서 그런가 매우 낯익지만 낯설었다.


한 도시를 상징하는 로고가 있다는 것. 한 도시를 대변하는 컬러가 있다는 것. 그리고 한 도시를 연상시키는 폰트가 있다는 것. 나에겐 예나 지금이나 막연히 부러운 것들이다. 특색이 있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여느 도시 못지않게 아름다운 도시인 서울에겐 절대 없는 것들이다. 되지도 않게 I.SEOUL.U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태극문양과 그 말하지 않아도 아는 적색과 청색을 고수하는 서울에 사는 시민인 나는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 도시들에게 시샘을 느낀다. 그렇다고 또 우상을 보듯 보지는 않는다.


멜버른의 도시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보았을 때에 적잖은 충격을 받고 신선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게 다였다. 더 흔한 도시 사례로  I LOVE NEW YORK을 보면서 역시 누가 먼저 선점하고 유명세를 떨치느냐구나 라는 생각을 했지만 또 그게 다였다. 런던도 마찬가지, 참 잘 해놓았네 보기 좋은 것을 봐서 내가 기분이 좋구나- 정도의 생각이 스쳤고 관광객답게 사진을 한 장 남겼다. 보기 좋고 자석으로나마 하나 간직하고 싶긴 하지만 그게 다야-라는 생각은 마지막 날 밤 지하철 역에서 무너졌다.


나의 질투심은 폭발했다.

런던의 아이들은 날 때부터 이런 것들을 보고 자랐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질투가 났다. 시각디자인 전공자는 아니지만 평소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뜯어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몇 년 전 학생들에게 본인의 10년 후 명함을 과제로 내주었을 때 오래된 브랜드들의 아이덴티티 변천사를 보여주느라 한 번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음에 또 출강할 날이 오게 된다면 나를 질투하게 한 꼭 이 녀석도 끼워 넣어야겠다.


그런데, 런던 100% 디자인전도 예전 같지 않다 하고. 이 도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도쿄 100% 디자인전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지 오래(?)이고 메종오브제 싱가포르도 올해 불현듯 취소되는 등 디자인계 아니 국제 디자인 전시회에 뭔가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다.



@ Regent st., Soho

소호에서 쇼핑하는 내내 비가 내렸다. 바버 재킷이 사고 싶었으나 마시모두띠에서 스커트를 하나 샀고, 벼르고 간 Hamleys에서 근위병 플레이모빌을 샀다. 생각보다 쇼핑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여유가 있다면 공연을 봐도 좋았겠다는 생각
레 미제라블이 더 좋겠다는 생각

여행을 다닐 때 전시회는 참 잘 찾아다니는데 공연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언젠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콘서트나 꼭 오리지널팀의 공연을 봐야 한다는 좋은 뮤지컬을 봐야겠다.


디저트 가게를 찾기 위해 걸어다니는 골목 구석구석

어떤 도시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 내지는 들러야 하는 식당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런던에 한 때 머물렀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말했다. "진짜 맛없어. 굳이 꼽자면 피시 앤 칩스 정도?"라고 말이다. 조금 뒤에 할 얘기지만, 진짜였다. 그래서 카페라도 잘 다녀보려고 노력했다.


마음에 드는 간판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먹는 재미는 그 어떤 도시보다도 약했고 날씨도 흐렸지만, 도심 속 볼거리는 꽤나 괜찮았다. 언젠가 더운 계절에도 와보고 싶다.


@ Seafresh, London

이 것이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먹었던 음식이다. 피시 앤 칩스를 먹을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김연아 선수가 먹었다는 집이 나왔는데, 마침 공항에서 도심까지 이동하는 버스 종착지와 가까워서 가게 되었다. 친절한 직원들의 서빙을 받으며 맛있게 배부르게 먹었는데, 무슨 이유에 선지 그 뒤로 반년은 피시 앤 칩스 생각이 안 났다. 먹을 만큼 먹었나 보다. 이 곳을 나서면서 SJ와 EK도 당분간 피시 앤 칩스는 안 먹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 Tipicetta, London

여행을 가면 어딜 가나 보물 같은 곳을 하나 정도는 발견한다. 소호나 노팅힐처럼 유명한 동네도 아니고, 식당이나 카페가 몰려있지도 않고, 많이 붐비는 지하철역 근처도 아니지만 별 다섯 개도 아깝지 않은 Tipicetta는 호텔 옆 건물에 있는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사장 겸 셰프와 직원 모두 이탈리안으로 보였다. 진열되어 있는 파스타 면을 고르고 소스의 맛을 나타내는 컬러의 집게로 집어서 계산대에 올려놓으면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정말 맛있어서 잊을 수 없는 맛

우리는 세 가지 메뉴를 주문했다.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가 듬뿍 들어간 샐러드, 시금치가 들어간 조금 낯선 비주얼의 라자냐, 토마토소스의 펜네 파스타. 파스타에 뭐라도 조금 넣어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길래 실망할 뻔했는데, 웬걸 담백하고 맛있었다. 하지만 셋 다 입을 모아 일등으로 꼽은 건 초록색 라자냐였다. 아 또 먹고 싶다.


날씨도 춥고 꽤 걸어야 할 것 같아서 든든히 배를 채우고 빅벤과 런던아이를 보러 갔다.


@ Big ben, London

맑은 날 낮에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본 빅벤은 그로데스크 한 분위기를 뿜었다.


웅장하다 못해 좀 무섭다.
불 켜지는 런던아이를 보기 위해 추운 오후 산책

넋 놓고 빅벤을 올려다보다 근처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아쉬웠던 것은 근처에 잠시 머물기 좋은 카페가 별로 없었다는 것. 지는 해가 보이는 공원에서 음료수 한 잔씩 하고 돌아오자 우리처럼 그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와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 London eye, London

bgm이 하나쯤 흘러나왔으면 싶었는데 누군가가 연주를 하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낯선 곳에서의 낯선 목소리인데 진짜 bgm처럼 흐린 해 질 녘 런던아이와 잘 어울렸던 분위기.


드디어 봤다, 불켜진 런던아이

바토무슈를 타고 가다가 불 켜진 에펠탑을 봤을 때처럼 우와-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차분하게 오랜 시간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다들 이 장면을 기다렸던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이랑 같이 보는 이 기분.


런던의 마지막 밤, 춥고 멋졌다.

런던은 나에게 있어 엄청나게 뭔가가 좋아서 꼭 다시 갈거야 라는 생각이 바로 드는 곳은 아니지만, 계절이 하나 둘 지나갈수록 지금은 어떨까 궁금해지는 도시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런던 풍경 영상을 보니 크리스마스의 런던이 가고싶고, 해가 쨍하고 뜬 날의 노팅힐 사진을 보니 여름의 런던이 가고싶다. 결국 이 곳도 또 가고싶은 곳이구나. 아무래도 여행을 가려고 하면 한번도 가지 못한 가고싶은 곳을 먼저 가게될 것 같은데, 그럼 런던은 또 언제쯤 가게 될까. 런던은 2박 3일로 짧게 머물었기 때문에 두세 바닥의 글이면 다 풀어낼 것 같다. 다음은 테이트모던이나 노팅힐 이야기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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