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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름 Jan 29. 2017

테이트 모던 둘러보기

@London, UK



전날 밤 비가 많이 내렸다. 짧은 시간 우수수 떨어지는 것이 아닌 오랜 시간 꾸준히 내려서 많이 내렸다. EK와 SJ, 나는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호텔과 멀지않은 테이트 모던으로 향했다.


런던에서 함께한 이 친구들과는 대학교 동기로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은 사이가 되었다. EK는 나와 동갑이고 SJ는 한 살이 어리다.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다녀온 예비학교와 OT, 그리고 첫 학기동안 친구를 사귀고 대학에 적응하면서 느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물론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도 거의 매일 느끼는 부분이다. 그러다보니 단 한명도 비슷한 구석이 없을 정도로 전부 다르다고 느꼈던 대학교 동기들, 아니 동문들이 크게 비슷한 부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실제로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마치 우리는 비슷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인데 이 세상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참 많다는 이야기를 하곤한다. 절대 함께 묶일 것 같지 않았던 그 '비슷한 사람들' 범주에 아무도 모르게 우리가 묶여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는 대학교 2학년 이었던 2006년 여름 10일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함께 머물렀다. 친구들과의 첫 해외여행이어서 설레고 떨렸지만 여권갱신과 비자는 아빠가 처리해주셨고, 숙박은 SJ네서 머물렀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끼리 알아서하는 개념의 여행은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자카르타가 본가인 SJ에게는 여행이 아니었구나. 그 때 쁠라우우망에서 쓰나미를 만나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었고, 8년 후 2013년에는 눈쌓인 겨울 가평으로 캠핑을 떠났다. 캠핑장과 근처 군부대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짬타이거들에게 고래밥을 약탈당하는 엄청난 습격을 받아 새벽에 잠을 설치고 텐트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참사가 있었지만, 이 또한 두고두고 곱씹을 추억이 되었다. 당시에는 진심 신변에 위협을 느껴 비명지르고 난리쳤던 일들이 무난하고 평범하지 않아 더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어서 감사하는 마음마저 든다. 네덜란드와 런던에서 함께한 시간들은 두고두고 잘한 일로 남을 것이고, 2026년에도 여행을 가자고 했으니 재미있는 일 하나 예약 걸어둔 기분이다.
 

테이트 모던을 함께 본 후, SJ는 다른 미술관들을 더 돌아보기로 했고 나와 EK는 노팅힐에 가기로 했다. 졸업전시를 앞둔 SJ는 핫한 전시에 대한 열망이 더 컸고, 평범한 직장인인 나와 EK는 산책하고 쇼핑하는 데에 더 매력을 느꼈나보다. 정해진 시간에 바쁜 일정이었기에 전체적으로 둘러보고 나오자는 이야기를 하고 들어섰다.



@ Tate modern, London

이른 시간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덧 오픈 시간, 날씨 한 번 대단하게 흐리다-하며 보고 나오면 조금이라도 개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며 들어섰다.


오픈 직전의 순간, 비 온 뒤 젖은 땅
드디어 테이트 모던에 입성했다.

시원하게 솟아있는 천정, 흐리지만 이것도 낮이라고 자연광이 새어 들어왔다. 짧은 시간에 둘러보고 나가려다보니 나는 지도부터 찾아들었고, SJ는 결심한듯 말했다. 난 여기 곧 또 올거같아, 오늘은 그냥 가볍게 둘러보고 나갈래-라고. 셋다 마찬가지다 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넓고 긴 공간에서
기념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여유만 있다면 삼십분 정도 널부러져있고 싶은 공간. 테이트 모던 근처 사는 사람들은 여러번 오는 것이 분명하다. 젊은 엄마 혼자 유모차를 끌고, 친구들끼리 겨우 걸음마하는 각자의 아이 손을 잡고, 노부부가 서로 손을 잡고 별 목적없이 들리기 좋아보이는 미술관이구나 하며 맨 아래층부터 돌기 시작했다.


여유로운 간격이 인상적인 공간이라

당시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설치미술 작품들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참 아쉽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사진은 혼자 살펴보는 것이 좋고 그 외의 미술작품(그림, 조형물, 설치미술품 등)은 큐레이터에게 설명을 듣는 것을 선호한다. 아쉬우니까 한 번은 더 런던에 가야겠다.


멀찍이 떨어져 둘러본 후,
가까이 다가가 관찰하는 즐거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보는 재미 또한 상당하다.

최근 평일 하루 날을 잡아서 예술의 전당에 다녀왔다. 르 코르뷔지에 전과 타마라 렘피카 전을 보았는데, 별 기대도 없고 배경지식도 상대적으로 없던 타마라 렘피카전을 더 인상깊게 보았다.


르 코르뷔지에 전은 건축물보다 회화작품에 더 초점을 맞췄다는데 두 섹션 모두 작품 수에 비해서 공간이 너무 비좁았다. 특히 건축물은 모형과 사진, 영상으로 채우려다보니 전시구성에서 있어 아쉬운 점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2013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있었던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전시를 본 나에게 본 르 코르뷔에 전은 너무나 부족하게 느껴졌다. 내 눈은 2013년 본의 아니게 높아져버렸다. 그래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은 직접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여행의 목적이 또 하나 늘었구나.


타마라 렘피카의 그림은 눈으로만 익숙한 것이 몇 작품 있었으나 그녀의 이름은 타미라 인지 타마라 인지 헷갈릴 정도로 생소했다. 그래서 큐레이션 시간을 기다렸다가 천천히 설명들으며 돌아봤고, 좋았던 작품은 거슬러 올라가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고 해서 전시구성이 어쩌구 하며 평가할 생각도 들지 않게 온전히 매료될 수 있었다. 갑자기 끝장나게 좋은 전시를 당장 보고싶어졌다. 설연휴가 지나면 상반기 예정된 국내 전시들을 다 뒤져봐야겠다.


유독 사설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너무 의식의 흐름대로 떠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작년 여름 테이트 모던으로. 아리송한 상태로 자리를 뜨고 다음 작품 앞에 서기를 반복해서일까, 사진 속 몇 작품은 내가 이걸 본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다.



꾸러기 스타일의 SJ, 요즘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친구.

자꾸 또 얘기가 딴 쪽으로 기우는데, EK와 SJ는 나에게 신기한 존재였다. 물론 대학교 초반까지만 말이다. 평준화도 되지않은 지방소도시에서 공부꽤나 한다는 인문고를 나온 나에게, 예고를 나온 EK는 어릴적부터 자신의 소질과 미래를 명확히 봐온 아이같아서 대단해 보였다. 언뜻 보면 쎄보이지만 사람 잘챙기고 예의바른 성격을 가져서 첫째인 내가 봐도 언니같은 구석이 있는 아이. 우리 엄마는 고스톱을 잘 쳐준다고 좋아하시고, 우리 아빠는 EK의 별명이 너무 거칠다고 안부 물을때마다 걔는 아직도 그렇게 불리냐고 괜한 걱정을 하신다.


SJ는 더 신기한 존재였다. 우선 예비학교때 노랑머리를 질끈 묶고는 유독 특이해보이는 남자애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알고보니 인도네시아에서 어릴때부터 살았다고 했고, 언니와 둘이 서울에서 지낸다고 했다. 나중에 자카르타에서 10일을 보내보니 얘가 왜 지각을 하고도 느긋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웃긴 에피소드들도 이상하게 SJ한테만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은 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대단히 성실한 친구이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진짜 장하다-싶은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었고 앞으로 내 친구들 중에 제일 출세할 녀석이다. 올 봄에 북유럽에 혼자 여행을 떠날 예정인데 어떻게 하면 얘를 꼬셔서 내가 있는 도시로 오게할까 머리를 굴리는 요즘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늘 비슷한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내가 사진을 그림보다 더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시대의 색, 그 날의 날씨, 그 순간의 표정이 날 것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연한 찰나를 포착해서 재미를 주기도 하고, 직시하기 두려운 현실을 고스란히 남겨 두고두고 불편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물론 데이비드 라샤펠처럼 패셔너블하고 화려하고 위트있게 작가의 의도를 풀어낸 사진을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말이다. 아시아권은 조금 덜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난민 문제를 타임립스해서 테이트 모던에서도 만났다. 우리도 오랜 시간 탈북민 문제를 안고 있고 타국에서 온 이주민들의 인권문제 또한 크기 때문에 남일같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 삶터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물 위의 기름 취급을 받으며 살았던 그들에게도 춤추고 노래하고 즐거운 순간은 있었다. 그들의 자손은 지금 어떠한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마치 작품을 보듯, 작품 보는 그들을 관찰했다.

난 위 사진이 참 좋다. 귀여운 어린애도 아닌데 이런 장면은 언제나 귀엽게 느껴진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며 보고 있을까, 내가 뒤통수 사진을 찍어도 전혀 모를거야 하며.



기분 좋아지는 표정과 몸짓들,
마음에 드는 사진이 한 두 장이 아니라 기뻤다.

아빠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셨다. 지금은 기껏해봐야 여행가서 풍경사진 한 두장, 푸짐한 음식사진 한 두장 찍는 것이 전부이시지만 말이다. 그것도 동창생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용도로 밴드에 올리는 것이 끝이다. 대학교에 입학하여 사진 소모임에 들게되었을 때 나는, 어릴적 아빠가 가지고 있던 카메라와 렌즈가 꽤나 비싸다는 것을 눈치챘다. 어차피 안 쓰는데 나 주면 안되냐고 묻자 다음날 아빠는 캐논 400D와 초보자인 나에게 맞는 광각렌즈, 무거워서 딱 하루 들고나간 망원렌즈를 사다 주셨다. 내 카메라는 꿈 깨라는 의미였겠지. 어쨌거나 사진은 처음부터 나에게 낯설지 않았고 지금도 비록 아이폰이지만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한 때 정기출사도 다니고 그룹전시도 했지만, 출사도 안다니고 무거운 렌즈를 짊어지고 다니지 않는 지금은 이정도로 만족한다.


사진은 내게 이루지 못한 꿈, 내지는 평생 동경의 대상.
긴 소매의 블라우스와 늘어진 에코백과 풀이 죽은 머리칼의 나.

8월 말의 런던은 꽤 쌀쌀했다. 가져간 가죽자켓이 덥지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찬 공기에 내놓은 목과 손이 쌀쌀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려 우산 쓰기 애매할 때 안쓰고 했더니 머리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 사진 속의 파리 메종오브제에서 받은 톰딕슨 에코백은 지금도 참 잘 쓴다. 전시장에서 그냥 나눠주는거 받아왔는데 한국에서 8만원 대에 판매하는 거 보고 기절할 뻔.


루프탑에 올라갔다.
눅눅하게 아름다운 풍경.

맨 위층에서 올라서서 런던의 스카이라인을 보았다. 오전인데 해는 보이지 않고 하얗게 구름낀 하늘만 가득 차있었다. 바람이 한 번 몰아치자 얼른 내려가자는 말이 절로 나왔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 각자 갈 길을 찾아가기로.


무슨 촬영인지 궁금하지만 안 궁금한 척.
붐비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런던을 간다면 첫 날 테이트 모던에 갈 생각이다. 저기 널부러져서 여행 루트를 짜고 나가면 딱 좋을 것 같다. EK와 나는 흐리지만 노팅힐에 가기로 했고, 첼시에 가서 SJ와 다시 합류하여 저녁을 먹기로 했다.


@Millennium bridge, London

우비 입은 사람들을 조금 부러워하며 밀레니엄 브릿지를 건넜다. 다음엔 우비도 꼭 챙겨야지.


비 맞으며 세인트 폴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
비가 오니 더 진해지는 런던의 벽돌건물들.

테이트 모던을 떠날 때의 아쉬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드디어 노팅힐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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