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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름 Feb 06. 2017

노팅 힐(Notting Hill, 1999)

@London, UK



귀여운 여인(Pretty woman, 1990)의 그녀는 사랑스러웠고, 클로저(Closer, 2004)의 그녀는 쓸쓸해 보였다. 아메리칸 스윗하트(America's sweethearts, 2011)의 그녀는 여전한 사랑스러움에 성숙함까지 더해졌다. 그 사이 무수한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인정받은 연기력과 넓어진 스펙트럼이 한 몫했다. 이 모든 영화에 앞서 노팅힐(Notting Hill, 1999)이 있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에 휴 그랜트(Hugh Grant)라니. 흥할 수밖에 없는 로맨틱 무비. 지난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그때에 그 노팅힐을 걸었다.


무채색같지만 아이보리와 물빠진 하늘색이 섞여있다.
컬러조합이 마음에 드는 블럭의 연속.
한적한 길목을 지나고 또 지나,

여행사진은 보면 볼수록 재미있다. 풍경을 찍으려고 인테리어를 찍으려고 음식을 찍으려고 한 건데, 의도치 않게 누군가가 찍혀있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그 누군가가 자기 쪽을 찍는 나를 보고 있어 마치 카메라를 응시하는 것같이 나올 때도 있다. sns에서도 이런 해프닝을 다룬 포스트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소위 빵 터지기도 하고 소름이 돋기도 한다. 여행 사진 중에 이런 사진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런던에서의 사진은 너무도 정적이어서 그런 재미는 특별히 없지만 맑은 날의 이곳은 어떨까-하는 생각을 계속 곱씹게 한다. 언제쯤 가면 맑은 날씨 일지, 맑은 날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 Electric cinema, Notting hill

노팅힐을 걷는 내내 날이 참 흐렸다. 비는 안 왔지만 비가 안 와서 다행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흐렸달까. 뭔가 안 어울리는 이름의 극장. 네온사인 아래 창문이 깜찍하다.


예뻐서 한 장 남긴 50번지의 문.

그 흐린 와중에 쨍하게 예쁜 빨간 문이 눈에 띄었다. 물에 젖은 듯한 색만 가득한 동네에 이런 새빨간 색이 있다니.



@ The notting hill bookshop, Notting hill

드디어 그 서점이다. 생각보다 별거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작은 규모 때문이 아닐까. 규모야 작을 거란 걸 알고 있었는데, 영화 속 그 모습 그대로라 조금 놀랐다. 한껏 나이 든 모습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


영화 속에서 보았던 그 서점, 생각만큼 작다.

너무나 조용하고 착한 분위기라 찰칵거리며 사진 찍기가 꺼려져서 조용히 엽서 하나 사서 나왔다. 그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이 서점에서의 추억 하나쯤 있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궁금하다. 작은 옷가게도 있었고 온갖 소품을 모아 파는 가게도 있었다. 서점 말고도 내가 가고 싶던 곳이 두 곳 더 있었는데, 하나는 올세인츠 매장이었고 또 하나는 폴스미스 매장이었다. 폴스미스는 Paul Smith Western House라는 이름으로 구글맵에 나와있는데 주택인지 샵인지 헷갈리는 외관이었다. 내부 사진이나 후기 같은 것들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곳이라 더 기대가 되었다.


@ Paul smith westbourne house, Notting hill

딱히 제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디스플레이되어있는 공간 사진을 찍기가 조금 미안해서, 가방 하나를 긁으면서 자연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매장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할아버지 테일러(매니저 정도 되시는 듯)가 모두 다 나가라며 손을 휘저었고 4명이나 되는 직원이 일사불란하게 입구 쪽으로 자리를 피해 줬다. 나는 민망해하며 아이폰6s를 꺼내 들었고.. 딱 두 장 찍었다. 다 찍었다고 쭈뼛쭈뼛 말했더니 다들 읭 하는 표정, 내가 dslr 아니 미러리스라도 꺼낼 줄 알았나 보다. 할아버지 테일러는 내 어깨에 걸쳐있는 Tom Dixon 에코벡을 보더니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었다. 인테리어가 끝내주고 음식도 괜찮을 거라며 호들갑스럽게 묘사하는데 직원들은 그게 웃기는지 킥킥대고. 다음에 그곳에 갔을 때에도 계시면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달라고 해야겠다. 아, 이날 산 가방은 아주 잘 들고 다닌다.


눈길을 사로잡는 오브제로 가득한 이 곳,
계단 한 칸 오르내리기도 힘들게
전부 눈길을 끈다.
한 쪽 벽면을 이렇게 꾸며도 참 좋을 일.

계단에서는 당당하게 몇 장 더 찍었다. 탐나는 액자들. 넋 놓고 보다가 굴러 떨어지겠다.


@ All saints, Notting hill

무수히 많은 사진에서 보았던 알록달록한 그 골목으로 향하던 중, 올세인츠 매장을 만났다.


수많은 재봉틀에 압도당하는 입구.
때마침 세일이라 샅샅히 뒤졌는데
건진건 티셔츠 2장, 어딜가나 사이즈가 문제다.

때마침 세일이라 엄청 득템 할 줄 알았는데, 역시 세일할 땐 사이즈가 문제다. 가죽재킷을 산지 얼마 안 된 상태라서 니트류나 저지 원피스 정도를 사고 싶었는데 티셔츠 2장을 겨우 건졌다. 쓴 돈에 비해 머문 시간은 꽤 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에서는 올세인츠 쇼핑을 포기해야겠다는 것. 세일을 안 해도 가격차이가 너무 난다. 시그니처 디자인인 묶음 디테일이 있는 아이보리색 티셔츠가 4만 원대라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대충 감이 잡힐 일.


하나씩 놓고보면 센 것들이, 모여있으니 귀엽기까지 하다.

입구 재봉틀도 멋졌지만 지하의 오브제가 더 마음에 들었다. 벽돌로 채워진 벽면도 하수구를 떼다 박은 것 같은 선반 프레임도 마음에 들었다.



비가 와서 더 한적한 상가들과
이 알록달록한 페인트칠한 집들은
비에 젖어 채도와 명도가 한껏 풀이 죽었다.
맑은 날의 이 곳이 궁금하다.
약속이나 한 듯이 하얀 창틀.

꽤 많이 걸었다. 평일 낮이라 해도 그래도 노팅힐인데 사람이 너무 적은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날씨 탓인지 원래 그런 건지 지금도 도통 모르겠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영화 속 이 골목은 북적북적 대고 자전거도 다니고 경적소리도 나고 그랬는데.


아쉬움이 너무나 컸던 노팅힐에서의 산책.

사실 그 당시에는 엄청 좋다던가, 떠나니 아쉽다던가 하는 감정이 크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아쉬움이 가장 큰 동네가 아니었나 싶다. 다시 노팅힐을 찾게 되면, 할아버지 테일러께서 소개해주신 톰 딕슨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폴스미스 매장에 가야겠다. 그때 소개해주셔서 덕분에 맛있게 잘 먹고 구경도 잘 하고 왔다고 하면서 사진 한 장 같이 찍자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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