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UK
최근 며칠간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보이는 도시는 오사카와 런던. 도쿄만 여러 번 다녀온 나는 어떤 이유에 선지 오사카나 교토를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건축가인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디자인한 간사이공항으로 날아가 오사카와 교토를 돌아보기로 한 4월이 더욱 기대되는 요즘이다. 런던은 인친 두 분이 가있어서(따로따로) 타워브리지, 런던아이 그리고 테이트 모던 사진을 올려주고 있어서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런던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식당을 추천했고, 오늘 아침 참 좋았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나도 언젠가, 날씨 좋은 날에 다시 가고 싶다.
이 날도 날이 흐렸다. 롤링스톤즈 전시라고 해서 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미리 예약을 하고 찾아야 하는 전시였기에 금세 포기해버린 사치 갤러리(Sachi Gallery). 결국 테이트 모던이 유일하게 간 미술관이 되어버렸다.
포스터와 조형물이 흐린 하늘과 대조되어 매우 튀었다. 롤링스톤즈의 아이덴티티는 참 오랜 시간 사랑받는 것 같다. 믹 재거의 입술과 혀는 반백년 동안 여전히 유쾌하고 여전히 섹시하다.
러시에서 고체 치약을 몇 개 사고 나니 쇼핑 욕심이 싹 사라졌다. 바버 재킷을 욕심내 보려 했으나 역시나 사이즈 문제로 포기했고, 더 이상 욕심나는 아이템이 없었다. 네덜란드에 머물면서 저가항공을 타고 넘어온 거라 웬만하면 짐을 늘리지 말자는 생각도 있었다.
2층 버스와 자전거가 다니는 도로도 한적하지만 인도도 참 한적했다. 식사 시간대가 아닌 평일이라 그런가. 잔세 스칸스에서 자전거 타다 다친 다리의 부기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발걸음이 무거웠다. 다리 탓, 날씨 탓 더해서 터덜터덜 걸었다.
네온사인이 들어가지 않은 눈에 편한 간판들이 많았다. 우리 가게만 잘 보이면 돼-하며 최대한 번쩍번쩍하게 원색의 네온사인을 박아대고 그것도 모자라 이런저런 이벤트 한다며 현수막이랑 포스터를 덕지덕지 붙이는 것, 정말 싫다. 도시경관을 다듬는다며 똑같은 간판으로 바꾸는 것도 싫다. 한눈에 들어오는 것도, 서로 잘 어우러지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걷고 또 걸어 스타벅스에 먼저 도착해있던 SJ를 만났다. EK와 나는 쇼핑한 이야기를 했고, 가려던 갤러리를 다 돌지는 못했다고 했다. 이른 저녁을 먹자며 미리 알아두었던 토끼 식당으로 향했다.
음식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 런던에서, 유일하게 기대하고 들어선 레스토랑이다. 어쩌다 찾게 되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건강한 재료 그대로의 맛을 살린다는 누군가의 한 마디를 읽었고 구글맵에서 볼 수 있는 사진들을 보니 플래이팅도 어마어마하게 멋져서 가게 되었다. 미슐랭 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적도 있다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이른 저녁이었는데 대부분의 테이블이 예약되어있다며 안쪽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일자로 나열된 테이블에 지인들과 꽉 채워 앉고 세 시간 정도 신나게 떠들며 긴 식사를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이 사악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아서, 양이 매우 적겠구나 싶었다. 이른 저녁이라 배가 많이 고프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셋다 어류를 영어로 잘 알지 못해서 열심히 검색하며 메뉴 공부를 했다. 육류나 채소는 감이 오는데 생선요리는 어찌나 어렵던지. 친절한 직원이 다가와 생선요리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고 덕분에 평소 먹기 힘들었던 독특한 생선요리들을 맛볼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물고기를 무서워하는 나는 회나 초밥이 아니면 생선요리를 잘 먹지 못한다. 통째로 구운 생선구이는 살아있을 때의 전신(?)이 너무 상상되고, 탕 요리는 생선 머리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눈이 박혀있는 머리가 들어가 있어서 기겁하고 숟가락을 놓기 때문에. 알탕도 너무 징그럽다. 이러면서 곱창은 또 좋아하는 걸 보면, 생선보단 고기파가 분명하다. 언젠가 육식녀라는 말을 들은 것이 생각난다.
세 가지를 골라 주문했던 우리는, 첫 요리가 나왔을 때 입을 모아 말했다. 두 개는 더 시켜야 할 것 같다고. 곱게 썰린 숭어에 야채와 소스가 더해져서 감칠맛이 났다.
평소 링귀네처럼 얇은 면보다 소스를 더 많이 머금는 펜네를 더 좋아하는 편인데, 크랩이 식감 좋게 으깨진 링귀네 파스타가 정말 끝내줬다.
돼지볼살이란 가장 쉬운 이름의 메뉴에는 꽃잎이 올라가 나왔다. 플레이팅 정말 끝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덜 자란듯한 아스파라거스가 올라간 정어리 구이에 오징어류의 다리도 함께 나왔다. 문득 집에서 아스파라거스를 키워서 먹겠다고 난리 치던 때가 생각난다. 키만 계속 자라다가 가련하게 꺾였던 나의 아스파라거스.
마지막은 비주얼 화룡정점이었던 대구 요리. 다섯 메뉴 모두 셋다 정말 만족하며 먹었다. 그리고 배부르게 먹다 보면 금액이 장난 아닐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우리가 식사를 마칠 때쯤 테이블이 조금씩 차기 시작했다. 남들 저녁 먹기 전에 가볍게 저녁 먹는 것도 참 괜찮은 것 같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에 한 접시, 한 접시 다 즐길 수 있달까. 대충 꺾어 엮은 듯한 나무 선반과 그 위에 올라가 있는 낡은 소품들을 보니,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다시 갈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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