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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름 Jan 18. 2017

촉촉한 지유가오카 산책

@Jiyugaoka, Tokyo



가장 좋아하는 동네를 걷기 위해서는 좋은 날씨와 편한 신발이 필수다. 20대 초중반에는 가장 좋아하는 동네에 살고 있어서 잘 몰랐지만, 그곳을 떠나니 알게 된 것이다. 홍대 앞에 갈 때면 힘을 쫙 빼고 편안한 마음으로 편한 신발을 신게 된다. 물론 좋은 날씨는 언제나 바라는 바다.


최대한 편한 신발을 신고 나섰다.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는 지유가오카.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 구입한 쿠에른 슈즈는 정말 덧버선 같이 편하다. 맨발에 신고 복숭아뼈가 드러나는 팬츠를 입으면 굉장히 캐주얼하고 보이시해 보이는데, 병원에서 간호사 언니들이 신는 신발 같기도 하다. 종아리까지 오는 스커트에 애정 하는 타비오 양말에 신었더니 어찌나 참하였는지 참.



역시나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뽀빠이 카메라.

지유가오카 역을 빠져나오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곳이라 그런지, 굳이 다시 찾아야겠단 생각은 들지 않았던 뽀빠이 카메라.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좋았던 분위기는 그대로면서 새로운 예쁜 샵을 만날 수 있길 바라며 걷기 시작했다.




@ACME Furniture, Jiyugaoka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뷰. 흰색 타일도, 물 빠진 민트색 의자도, 녹슨듯한 간판도 참 마음에 들었던 ACME Furniture. 비가 그친 뒤라 나뭇잎 채도가 한껏 올라갔다. 가구는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한눈에 이끌릴 수 있지만, 내가 인상 깊게 본 대부분의 가구들은 한눈에 다 파악하기 힘들었다. 특히 온갖 조명과 패브릭 제품, 액자와 시계 같은 소품들까지 함께 놓여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눈 돌아가는 공간.
저 창고 안엔 또 어떤 것을이 있을까.

내 취향의 것들은 아니었으나 독특한 소파와 스툴들이 눈에 띄었다. 딱 봐도 반려동물을 위한 낮은 높이의 스툴도 있었는데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침대에서 잠드는 고양이와 소파에 기대 텔레비전을 보는 강아지 사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양이 수만큼 침대를 제작하는 애묘인도 봤다. 짐승은 짐승답게 키우는 거야-라는 말에 들어간 짐승에 더 이상 고양이와 개는 포함되지 않는 듯하다.


홈 가드닝이 트렌드이긴 한가보다.

청담동 퀸 마마 마켓 1층에 처음 들어섰을 때, 예쁘고 갖고 싶지만 나에게 전혀 쓸모가 없는 물건들이 너무나 많았다. 베란다를 확장하는 사람들도 많고 오피스텔 같은 곳에 혼자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동시에 홈 가드닝 제품들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 인-도어 가드닝이 유행이기도 하고 옥상을 정원화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렇게 공들이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하는 생각이 여전히 든다. 어쨌거나, 예쁘다 참. 훗날 나도 이런 것들에 욕심부릴 날이 올지도 모르니 열심히 봐 두었다.


@Six, Jiyugaoka

생각보다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자잘한 소품들이 볼만했던 반지하 가게도 있었다. 이미 이토야(Itoya)로 눈이 너무 높아져있었기 때문일까, 지갑은 열리지 않았다.




비 온 다음이라 그런가, 유독 파릇파릇한 크랜베리.

여행을 떠나기 전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시무룩해있었는데, 막상 비 내리는 아사쿠사와 요요기 공원을 거닐 때 기분이 좋았다. 전날 이토록 내린 비 덕분에 더 맑은 지유가오카를 산책할 수 있었고, 크랜베리가 더 싱그러울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 블로에멘마크트에서 튤립 뿌리를 포기했던 기억으로, 도쿄의 앙증맞은 화분들도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이겠거니 하고 애초에 포기하고 둘러보았다.


@Today's special, Jiyugaoka

Today's special은 정말 온갖 것들이 다 있다. 식기와 테이블웨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식품과 문구류와 소품들이 엄청나게 많이 진열되어 있다. 이러한 컨셉의 상점들이 서울에도 꽤 많은데, 정확히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연령대가 조금 다르달까. 서울의 트렌디한 온갖 브랜드들을 모아놓은 라이프스타일 샵은 대체로 20대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인데, 이 곳은 30~50대까지 거의 전세대를 망라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진중한 표정으로 쇼핑하고 있는 나이 지긋하신 중년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내가 살 것들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주문 외우기.
옷 보다는 소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식기보다는 커트러리, 커트러리보다는 패브릭 제품들이 탐났다. 2층엔 캔들이나 바디제품들, 의류, 잡화 등이 다양하게 있었는데 딱히 새롭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손수건은 일본이 훨씬 다양하다. 시간을 여유 있게 가지고 둘러보다가 배가 고파져서 꼭 가보고 싶었던 디저트 가게에 가기로 했다.


우연히 만난 담장 아래 무궁화.

아참, 빌라 담장 아래의 무궁화나무가 반가웠다. 교과서에서 본 것처럼 딱 정석으로 생겼다.




@Mont st.Clair, Jiyugaoka

주택가를 한참 걸어서 드디어 몽상 클레르(Mont st.Clair)에 도착했다. 테이블은 꽉 차 있었고 유모차를 끌고 온 3대 모녀가 웨이팅 중이었다. 정확히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나가버렸고, 덕분에 금방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자리가 나기 전에 디저트를 먼저 고르라고 했는데, 무엇이 가장 대표 메뉴인지 알아보지를 않아서 비주얼만 가지고 선택해야 했다.


밤맛이 진한 디저트와 커피.
사진이 실물을 못 따라가서 이리저리 찍고 있었다.

밤맛은 많이 달지 않고 적당했으며, 커피도 괜찮았다. 특히 디저트 식감이 정말 좋은데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고, 사진조차 실물을 못 따라가서 찍는 내내 답답함을 느꼈달까. 가게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착한데 맛도 착한 느낌이었다.


촌스러운 듯 하지만 바뀌지 말기를.
원형 상자가 마음에 들었다.

마들렌은 어딜 가나 똑같이 보이긴 하지만 원형 패키지에 들어가 있으면 참 귀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도 맛도 패키지도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느낌의 몽상 클레르는 언젠가 또 들러도 좋을 것 같다. 다시 지유가오카 역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서자, 또 비가 오렸는지 살짝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2010년에 길을 헤매다 우연히 본 찻집을 또 보았다.

반가운 모습의 찻집. 2010년 여름, 사회생활 시작한 후로 첫여름휴가로 도쿄에 갔을 때 보았던 그 찻집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 지유가오카 역으로 가는 길을 잃어서 지나가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어설픈 일본어로 '지유가오카 에끼가 도꼬 데스까.'라고 물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지유가오카 역에서 더 먼 곳으로 향하다가 이 찻집 즈음에서 길을 물었다. 길을 잃어도 보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아도 보고. 두 번이나 마주쳤으니 다음번엔 이 곳에서 차를 한 잔 마셔야겠다.


자전거 타는 여인들, 대단하다.
한적한 지유가오카, 그래서 제일 좋다.

아이들을 앞뒤로 태우고, 더 어린아이를 등에 엎기도 하고, 자전거 바구니도 모자라 어깨에도 장 본 것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지나가는 여인들을 보니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와 혼연일체라도 된마냥 너무나 여유로운 여인들. 한적하고 조용한 지유가오카는 그 흔한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조차도 없다.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소리나 물 흐르는 소리가 거의 다이다. 뭔가 여행과 어울리기보다는 조용히 일상을 즐기고 싶은 동네에 가깝다.


가죽 지갑이 예뻤던 가게.
역시나 애견용품 시장은 일본이 더 잘 되어있다.
초라해진 La-vita Jiyugaoka, 씁쓸하다.

눈에 띄는 곳에 들어가 이것저것 구경하며 걷다 보니 낯익은 곳이 나왔다. 분명 예전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는데 왜 이렇게 초라해진 것인지, 저들 중에 나처럼 실망한 사람들도 있었을까. 예전엔 이국적이고 깨끗한 쇼핑거리였다면 지금은 한적하다 못해 모든 게 사라진 느낌이다.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는 것인지, 정말로 끝난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구석구석 눈에 담아왔다.

한겨울이 오기 전에 회사 근처에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던 푸드트럭-이라고 하기엔 너무 귀엽지 아니한가. 미니버스에서는 음식이나 커피보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게 더 어울릴 듯하다.


이미 도쿄가 처음이 아니라 그런지 매번 찍는 사진의 양이 줄어들고 있다. 예전에 찍었던 사진들은 똑딱이 디카로 찍었는데도 화질이 별로 좋지가 않던데, 지금 이렇게 iPhone 6S로 찍는 사진들은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우 선명하다. 물론 dslr을 가지고 여행을 갔을 때에는 사진은 참 퀄리티 있게 남아있지만, 들고 다니는 내내 어깨가 아프고 짐스러운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이렇게 스마트폰 하나로 사진도 찍고 지도도 보고 정보도 찾아볼 수 있는 지금이 물론 좋지만, 가끔 무언가를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고 궁금하기도 하다. 그 두려움은 전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 앞두고 있는 여행에서도 나는 iPhone에 의존할 예정이다. 이제 런던 사진을을 좀 꺼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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