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kan-yama, Tokyo
다이칸야마는 야마(산이라는 뜻)가 뒤에 붙은 만큼 중간중간 언덕길이 있다. 오모테산도나 긴자처럼 크고 높은 건물들이 줄지어 선 대로가 길게 뻗어있지도 않고, 각종 브랜드가 모여있는 대형 쇼핑몰이 있지도 않고, 식당이 마구 몰렸지도 않다. 그래서일까, 다이칸야마는 T-Site 말고는 볼 게 없어- 라던가, 쇼핑할 곳이 메종드리퍼 뿐이라서 다들 거길 가는 거야-라는 사람들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아니, 그건 아니다. 그게 아니란 것을 쉽게 느끼고 싶다면, 다이칸야마 역(代官山駅)이 아닌 나카메구로역(中目黒駅)에서 내려 골목골목 누비며 다들 아는 그곳으로 가면 된다.
9월 늦여름의 도쿄는 비가 많이 왔다. 예전에 처음 도쿄에 왔을 때엔 낮 최고기온 38도에 육박하는 폭염이었는데, 이렇게도 다른 여름을 느낄 수 있다니. 비가 그친 직후엔 온 세상의 소리가 다르게 느껴진다. 공명-이라 해야 하나, 온갖 것에서 색다른 소리가 울려 나오는 느낌. 장바구니를 달고 달리는 자전거 바퀴소리도 좋고 이제 막 가게문을 여는 선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도 좋다.
이래서 골목골목 누비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싶은 작은 빈티지샵을 발견했다. 여자 옷보다 남자 옷이 많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빈티지는 남자 옷이 예쁜 게 더 많다. 진짜 ARMY 티셔츠라는데 가격이 착하지는 않아서 만지작거리고 있었더니, 작은 사이즈들만 워싱이 잘 나왔다고 한 마디 거드는 직원. 결국 구입했다.
몇몇 눈에 띄는 가게를 기웃거리며 걷다 보니 드디어 T-Site에 도착했다. 이 곳에 츠타야 서점과 테노하가 있다. 츠타야 서점의 브랜딩에 대한 글은 여기저기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고유의 차분한 분위기가 국내 대형 서점의 깔끔하지만 냉랭한 분위기와 많이 다르고, 음반과 문구류를 넘어서 가전까지 어우러지게 하는 흡수력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집 근처에 이런 서점이 있다면 내가 책을 조금 더 많이 읽지 않을까- 하는 핑계 같은 생각도 든다.
요즘 핫하다고 하나 너무 세련되지는 않은 그 느낌은 누구에게나 호감인가 보다. 여기저기서 츠타야 서점 이야기가 들려온다. 한 바퀴 돌아본 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우선 무게도 있고 깨질 위험이 있는 도자기 류에는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아서 예전에도 린넨 테이블웨어만 잔뜩 사 왔는데, 최근 알렉스 더 커피를 포함한 카페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히스 세라믹 재질의 머그가 눈에 띄었다. 사려고 마음먹으면 컬러 고민을 또 한 다발해야 하니 애써 외면했다. 언젠가 식기류에 욕심이 커질 때가 오겠지만 아직은 억누를만하다.
밖은 비가 와서 촉촉하고 쌀쌀한 만큼, 실내는 더 포근하게 느껴지는 오후의 다이칸야마. 마치 잠시 비가 내렸던 오늘 같다. 다이칸야마는 내일이 출근이라는 현실을 잊고 싶으니 더 생각나고 더 걷고 싶은 동네다. 좋았던 곳이 다시 갔을 때 그대로 있는 것도 고맙지만, 그 안의 컨텐츠는 짠-하고 업그레이드되어있기를 바라면 너무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