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아름 Jan 05. 2017

오, 나의 오모테산도

@Omote-sando, Tokyo


지난겨울, 오모테산도에서 적당히 산도가 오른 블루보틀 커피를 마셨을 때 생각했다. 이 곳은 여름과 더 어울리는 곳이라고.


@Blue bottle coffee, Omote-sando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정말 늦여름 다시 오모테산도에서 블루보틀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역시나 따뜻하게 마신 겨울의 맛보다 시원하게 마신 여름의 맛이 더 좋았다. 워낙 인스타그램에 많이 떠서 조금 식상해졌지만 오모테산도에 간다면 잠시 들리기 좋은 곳이다.


@Omote-sando hills, Tokyo

안 들리면 서운한 곳이 되어버린 오모테산도 힐즈는 매장의 변화가 매우 적기 때문에 관광객에게는 썩 좋지 않은 느낌이다. 규모도 그렇게 크지는 않기 때문에 특정 브랜드를 찾는 사람들에게 좀 더 좋은 듯하다. 내가 이 곳을 들리는 이유는 양말 매장 타비오(Tabio)를 들리기 위함이 8할이다.


줄이 너무 길어 사먹기를 포기했다.

오프닝 세러모니를 찾아가는 길목에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Lobster Luke's라는 간판과 파라솔이 눈에 띄기도 전부터 늘어져있는 긴 줄. 워낙 맛있게들 먹어서 궁금은 했으나 도저히 줄 서있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포기했다. 문득 부산 사람들은 씨앗호떡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 또 떠올랐다. 혹시 저 사람들이 전부 나 같은 관광객은 아닐까. 그래도 맛있을지도 모르니까 나중에 갔을 때에도 있으면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



@Opening ceremony, Omote-sando
모든 것이 자극적인 공간.
컬러와 패턴, 너무 마음에 들었던 층간공간.

오모테산도는 한적한 듯 보이지만 구석구석 뜯어보면 엄청 자극적인 동네다. 신주쿠나 시부야처럼 휘황찬란한 간판도 적고 사람도 상대적으로 덜 붐비지만, 각 매장에 들어서면 눈이 돌아간다. 오프닝 세러모니(Opening ceremony)는 워낙 화려한 브랜드들을 많이 들여놓았기 때문에, 꼭 오모테산도여서 화려한 것은 아니겠다만. 과감한 컬러 조합과 패턴으로 이루어진 시트지, 인테리어 부자재, 네온사인과 형광등 조명 등이 그러하다. 내가 좋아하는 컬러를 한 곳에 모아놓은 층간 공간은 지금 봐도 너무 예쁘다. 블랙 앤 화이트에 민트와 코랄 컬러라니.


@Journal standard, Omote-sando
핑크와 다크그린 퍼가 예뻤다.

오프닝 세러모니를 찾아가다가 바로 옆 건물에 잘못 들어갔었다. 우연히 발견했다고 하기엔 꽤나 큰 편집샵이었다. 공간이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있는데 여름인데도 앙고라 니트와 퍼 제품이 모여있는 코너에 가장 오래 머물렀다. 무심한 듯 친절한 직원들이 인상적. 바짝바짝 따라붙지 않아서 고마웠다.


@Snow peak, Omote-sando

캠핑이나 계절 스포츠를 즐기지는 않지만 관련된 제품들은 참 매력적이다. 착해 보이는 티셔츠와 셔츠도 예쁘고, 무겁게 왁싱 올린 팬츠도 멋지다. 한 번 떨어뜨려도 금세 찌그러질 것 같은 머그도, 가볍지만 튼튼해 보이는 스툴도 탐난다. 매거진 B를 뒤적거리는 기분으로 샅샅이 둘러본 스노우픽(Snow peak) 매장에서 귀여운 그래픽이 들어간 티셔츠를 하나 사려다 말았는데, 나중에 자꾸 생각이 났다. 다이칸야마에서 워싱이 예쁜 티셔츠를 사서 다행이다.


@Number sugar, Omote-sando
참 깔끔한 패키지.

언제부턴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엄청나게 정직해 보이는 캐러멜 사진이 많이 올라왔다. 번호가 매겨져 있는 것을 보아선 맛도 여러 종류인 것 같고, 마침 이름도 넘버 슈가(Number sugar). 오모테산도에 들린다면 꼭 사 먹어보라는 사람들도 많고 선물용으로도 괜찮다고 들었다. 캐러멜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들러서 낱개로 몇 개 샀다. 홍대 앞에도 못지않게 맛있는 곳이 있어서 두어 번 선물용으로 산 적도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가게 이름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간지 오래되서인지 넘버 슈가만큼 귀에 쏙 박히는 이름이 아니어서인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홍대는 이제 워낙 빠르게 생기고 사라지는 동네가 되어서, 그 캐러멜 가게가 아직 잘 있을지 걱정도 조금 된다. 


미술학원 근처 이찌방 데리야끼의 콧물 소스와 콘 옥수수, 공강 시간에 즐겨 찾던 동경의 돈가스 라멘, 가장 만만하고 맛있었던 다모아 참치김밥과 김치볶음밥, 놀이터에 앉아 먹던 정문 앞 빅 슈, 콘트라 사람들과 즐겨 찾던 지하철역 근처 케빈 오크. 다시는 못 갈 그리운 곳들, 왜 다들 사라진 것일까-라고 묻던 나도 결국 그곳을 떠나고야 말았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아 사진조차 남기지 않았던 그곳들이 문드 그립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거리가 많이 붐볐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가뜩이나 흐린 하늘이 더 뿌옇게 변했고 사람들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 시간이 되면 마음이 급해지기는 나도 마찬가지, 내가 하루 중 가장 아쉬워하는 시간은 해 질 녘이다. 요즘처럼 해가 짧은 겨울에는 해 질 녘 하늘을 보기 힘들다. 퇴근하고 나오면 이미 깜깜한 밤, 새해라고 으쌰 으쌰 하고 싶었는데 첫 주부터 약한 소리 하고 싶은 마음. 이다음엔 다이칸야마 이야기를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경(東京), 삼시세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