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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름 Jan 02. 2017

동경(東京), 삼시세끼

@Tokyo, Japan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밝았다니, 언제 들어도 진부한 표현이지만 진부해서 자연스러운 것들이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도, 매번 이 것보다 좋은 표현이 있을까 싶어서 생각을 해봐도 행복해라, 좋은 일 많이 생겨라, 다 잘 되어라- 결국 복 많이 받으란 표현만큼 포괄적이면서 무난한 덕담도 없다. 결국 이렇게 2016년에 떠났던 여행 이야기 앞에 '작년'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도쿄를 동경(東京)이라 말하고 싶은 때가 있다. 신주쿠나 시부야에서 쇼핑을 하고 오모테산도, 다이칸야마의 핫하다는 카페를 찾을 때는 아니다. 아사쿠사를 향해 천천히 걷거나 비 오는 요요기 공원을 가로지를 때, 굳이 나는 동경(東京)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京이)이라東京)東京


가깝고 만만해서 도쿄를 좋아하긴 하지만 일 년에 두 번을 간 것은 처음이었다. 9월의 늦여름의 그곳은 낮은 여전히 여름이지만 비가 오면 조금 쌀쌀함이 느껴질 정도의 날씨였다. 시부야에 도착하고 빈 코인락커를 찾는 데에 애를 먹었다. 시부야역의 코인락커는 빈 것이 하나도 없었으나, 다행히 히카리에 위층의 깨끗하고 큰 코인락커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한 숨 돌릴 겸 고픈 배를 채울 겸 규가츠를 먹기로 했다.


@Motomura gyugatsu, Shibuya

점심시간을 살짝 비껴나간 시간이었지만 거의 30분을 기다리고 나서야 가게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 점씩 지져먹는 그 맛은 군더더기 없이 담백했다. 부들부들한 돈가스 같기도 하고, 덜 익혀먹어야 맛있는 소고기 위에 튀김옷을 얇게 덮은 것 같기도 한 모토무라 규가츠. 거기에 하이볼 한 잔이 꽤나 완벽할 것 같았은데 갈수록 술을 못 마시는 나에게 한 잔은 과했다. 언젠가 나와 함께 술을 마셨던 사람들은 예전에는 마셨지 않냐-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맞다. 남들 속도는 맞추지 못해도 적당히 튀지 않게 맞추려 노력했고 가끔은 즐기기도 했다. 이제야 나와 술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백 퍼센트 인정하게 되었고, 굳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위에 편안함을 얹을 수 있게 된 것뿐이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식사를 하고 디저트를 먹고 커피를 마시면 거의 항상 만족감을 느낀다. 꼭 정말 맛있어서 만족할 때도 있지만, 오 괜찮네- 여긴 이런 맛이구나- 정도의 느낌만 받아도 만족한달까. 그래서 일주일 남짓 여행을 다녀도 사진을 보여주고 설명해주고 싶은 식당과 카페는 그렇게 많지가 않다. 네덜란드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카페가 세 곳이 있었는데, 연달아 다녀온 도쿄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식당이 세 곳이 있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꼽는 도쿄맛집 이라고 하고 싶은 식당들이다. 도쿄맛집, 모토무라 규가츠도 도쿄맛집으로 꼽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꼽는 도쿄맛집은 다음의 세 곳이다. 짠 것 같이 세 곳. 모토무라 규가츠는 그 세 곳에 들지는 않으나, 첫 식사였으니 사진 한 장 정도 끼워 넣고 싶었다.



@Asakusa, Tokyo
비가 오니 조금 추워졌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져서 서둘러 요요기 공원으로.

오전의 아사쿠사가 보고 싶었다. 예전에 무더운 날 갔던 기억이 있는데 이 날은 비도 많이 오고 있었다. 유적지나 문화관광지에 집착하는 여행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지만 몇 번에 한 번쯤은 찾고 싶을 때가 있다. 정말 잠시 들렸다가 요요기 공원을 향해 걸어갔다. 몇 블록을 걸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길도 여러 번 건넜다. 요요기 공원은 한적했고 다리가 다 젖고 머리카락도 젖어올 때쯤 그곳에 도착했다.



@Innsyoutei, Tokyo

韻松亭(Innsyoutei). 사진 한 장을 보고 반해서 간 곳이다. 고즈넉하고 왠지 친근하지 않은 분위기. 예약을 하는 게 좋다는 얘기를 들어서 조금 불안한 마음이었는데,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보기좋게 나이 든 식당 내부.
고슬고슬한 밥 한 공기와 도시락이 나왔다.

따뜻한 타올로 비에 젖은 팔과 다리를 눈치껏 닦아내고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긴 맛이 보통만 돼도 충분히 좋을 것 같다는 생각. 꼭 최고급 재료를 써서 미친 듯이 좋은 식감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는 아니니까. 고슬고슬한 밥 한 공기도 귀엽고 낡은 나무 수저도 귀엽다. 된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미소국은 어딜 가나 비슷하지만 도시락은 달랐다.


보는 재미가 있고, 맛을 탐색하는 재미가 있다.

같은 반찬도 누구네 집 것이냐에 따라 맛이 달랐다. 우리 엄마가 만든 진미채와 큰엄마가 만든 진미채는 정말 달랐다. 우리 엄마가 만든 불고기와 친구네 집에서 먹은 불고기도 정말 달랐다. 낯익은 모양의 반찬도 다른 맛이었고 생긴 것과는 다른 맛을 가진 반찬도 있었다. 반찬-이라고 하기 미안할 정도로 독특한 식감인 것도 있었다. 낫또를 처음 먹었을 때 느꼈던 낯선 기분도 느낄 수 있었던 인쇼테이의 도시락. 도쿄도미술관이나 우에노 동물원, 아니면 나처럼 아사쿠사를 찾을 것이라면 요요기 공원 근처의 이 곳에 들려 도시락을 먹고 가도 좋을 듯. 반겨주고 식사 후 배웅해주는 나이 지긋하신 직원들도 인상적이다.
  

저녁 때가 다 되어서 시부야로 돌아왔다.

하루는, 일정을 마치고 시부야로 돌아오니 초저녁 시간이었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이 많이 흐렸다. 정말 고대하고 간 고깃집이 있었는데, 운 좋게도 에어비앤비 숙소 근처였다. 구글맵과의 거리 오차가 있어(매우 드문 일인데) 찾아갈 때 조금 애를 먹었지만 그래서 더 맛있게 먹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Yakiniku Kanteki, Shibuya

神戸焼肉 かんてき(Yakiniku Kanteki)는 최고급 고베산 와규만 취급한다. 와규는 고베-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고 워낙에 야끼니쿠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곳은 무조건 가야 할 곳으로 꼽아두고 있었다. 서울에서 먹을 수 있는 야끼니쿠 집으로는 IFC몰과 청담에 있는 와세다야를 좋아하는 편. 꽤 부드러운 식감과 천천히 구워 먹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곳을 맛 본 후로 내 입맛이 조금 까다로워진 것 같다.


7,000엔짜리 세트를 시켰다.

둘이 먹기에 적당한 7,000엔짜리 세트는 총 다섯 부위가 나온다. 설명은 다 들었으나 어디가 어딘지 까맣게 잊었다. 중요한 것은 맛있었다는 것이니까 뭐. 특정 부위 마니아가 아니라면, 이런 고깃집에서는 우선 이 세트를 먹은 후에 다시 맛보고 싶은 부위를 추가하는 것이 영리한 주문법이 아닐까.


초저녁의 한적함, 곧 직장인들로 가득 찼다.
고베의 최고급 와규가 나왔다.

무순이 곁들여진 한 부위가 작은 접시에 담아져 나왔고, 이어 세 부위가 나오면서 불판이 달궈지기 시작했다. 양껏 먹는다면 1인분으로도 모자를 수 있으나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둘이 먹어도 괜찮을 양. 특히 여행에서는 하나의 음식으로 너무 배 채우는 건 아쉽다. 게다가 일본 편의점 음식들은 엄청나게 종류도 많고 맛있기 때문에 언제든 간식거리가 들어갈 공간은 확보해 두어야 한다.


보기만 해도 충분히 맛이 있다.
하나하나 설명을 들으며 먹는 재미.
몇 점 되지 않으니, 왠지모르게 경건하게 먹게 된다.

한 점씩 입에 넣을 때마다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조금 오버를 보태면, 여태까지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고 사 먹었던 야키니꾸는 다 보통이었다는 느낌이랄까. 살살 녹은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생겼나 보다. 맛있는 식당에 대한 글을 쓰고 있어서 맛있다고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맛있었다. 과하게 익히면 오히려 맛이 없어지니까 신중하게 굽고 신중하게 적게 뒤집어야 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메뉴는 육회.
먹는 내내 행복한 식감.

육회는 어딜 가나 맛이 다 다르다. 맛의 편차가 크기보다 맛의 종류가 다른 느낌. 광장시장의 육회자매집 육회는 계란 노른자와 배의 비율이 꽤 높아서 고소하고 시원하게 비벼먹는 느낌이라면, 한와담의 육회는 담백하고 깔끔하나 조금 심심한 느낌이다. 이 곳의 육회는 첫맛은 짭조름하고 씹을수록 담백하다. 구워 먹은 다른 부위들과 마찬가지로 식감이 정말 끝내준다. 이 집은 시부야에 갈 때마다 무조건 가는 걸로.


@Unagitoku, Shibuya Hikarie

요즘 후쿠오카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근 몇 년간 오사카-교토로 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는데 최근 후쿠오카가 치고 올라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전히 도쿄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후쿠오카에 대체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맛집이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후쿠오카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장어집의 분점이 시부야 히카리에에 하나 있다. 장어 도시락이 도쿄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다.


보기만 해도 든든한 한 상 차림.
일단 한 점 집어먹고,
밥 위에 징어 한 점, 파 조금, 녹차를 부어 먹는다.

큼지막한 나무 도시락에 밥과 장어가 가득 차 있고, 뜨거운 녹차와 미소국이 나온다. 밥 한 숟가락과 장어 한 점을 입에 넣어도 되지만, 이 곳의 진짜 맛은 작은 공기를 뒤집어 밥과 장어를 적당히 담아 녹차를 붓고 얇게 썰린 파를 띄워 이를 한 입 가득 우물우물거리며 먹는 것이다. 아, 군침 돈다. 봄에 오사카, 교토에 갈 예정인데 그다음은 후쿠오카가 될지도 모르겠다.


일본여행에 편의점 쇼핑과 야식은 빠질 수 없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장 재미있는 것은 마트 쇼핑이다. 각 나라의 유제품 보는 재미도 있고, 유명하다는 쿠키나 초콜릿 같은 것들은 안 사 오면 꼭 후회한다. 일본은 큰 마트보다 편의점 쇼핑을 선호하는데, 간편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컵라면이나 주먹밥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 우유푸딩이나 초코우유, 밀크티 같은 것들도 많고 아기자기한 초콜릿이나 젤리는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새해 첫 월요일 아침부터 여행병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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