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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름 Dec 29. 2016

팝아티스트 or 성공한 오타쿠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

@Mori art museum, Tokyo

@Roppongi hills, Tokyo

맑은 날의 롯폰기, 역시 평일이라 한적하다. 무라카미 타카시라는 이름도 입에 잘 붙지 않고 그의 얼굴도 몰랐지만, 낯익은 그의 작품들이 있기에 모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무라카미 타카시 : 오백나한도전

'오백나한도'가 뭐지 싶어서 네이버 검색창에 쳐보니, '부처의 제자 중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500명의 나한을 그린 그림'이라고 나왔다. 그럼 '나한'이 뭐지 싶어서 또 검색창에 쳐보니, '일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한 자격을 지닌 불교의 성자'라고 나왔다. 100m가 넘는 작품을 4,000여 장의 실크스크린 작업을 통해 제작했다고 하니 실제로 보기 전에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 스케일.


무라카미 타카시(村上隆)

예전에 모리미술관에 갔을 때 보았던 환하게 웃고 있는 꽃 캐릭터,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お花' 시리즈가 떠올랐다. 작품도 본 적 있고 얼굴도 낯이 익으나 쉽게 연결되지 않던 이미지의 그 아티스트. 일본을 대표하는 팝 아티스트인 그는 스스로에게 성공한 오타쿠-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나의 취향은 아니기에 피규어의 형태를 띤 작품 사진은 함께 올리지 않으나, 그에게 오타쿠 성향이 있음은 분명하다. 귀여움과 기괴함을 넘나드는 캐릭터들, 루이뷔통과 슈에무라 등 대형 브랜드와의 수많은 콜라보레이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의 전시와 같이 다양한 장르와 산업을 넘나 든다.


그리고 산적 같은 외모.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충격적인 작품이 전시장 입구에 있었고, 나는 조금 놀란 채로 전시를 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오백나한도'가 펼쳐지기 전, 시원시원한 전시 공간에 다양한 그의 작품들이 그룹핑되어 있다. 눈에 익은 캐릭터도 보이고, 거대한 사이즈의 금색 조형물도 보이고, 원과 스컬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 꽤나 강렬하다.


그리고, 예상한 시간보다 두 배나 더 전시장에 머물게끔 한 오백나한도.


자세한 설명을 찾아서 적을 수는 있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가 않다. 단 하나도 같은 얼굴이 없는 수많은 성자들과 도깨비, 호랑이, 사자, 산양 등 다양한 동물들이 일본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또는 실태를 보여주기 위한 조연으로 등장한다. 크게 4개의 섹션으로 나뉘는데 이는 동서남북을 지키는 사신 청룡, 백호, 주작, 현무로 대표된다. 이 사신이 혼란스러운 일본을 지켜준다는 의미가 있다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근래 일본은 자기 위안이 절실한 상황.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도 만만치 않다. 자연재해보다는 인재가 참 심하디 심하다. 다시 전시회장으로 돌아가서.


신기할 정도로 보는 각도마다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한 장의 사진에 다 담을 수 없기에 많은 사람들이 파노라마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정말 다양한 표정들. 그림도 아니고 실크스크린 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것이 경이롭다. 질투가 날 정도로 완벽하달까.


열심히 정독하려고 애를 썼으나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서 설명이 곁들여져 있는 미니 파노라마 북을 구입했다.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는, 작업의 모든 과정을 '나 이렇게 작업했다'며 전부 보여준다는 것이었는데 얼마나 자신 있으면 이럴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크스크린 작업에 앞선 스케치는 물론이고 각 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과 신발, 들고 있는 소품들이 허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있는 것들을 끌어온 것이라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1부터 100까지 적당히 만들어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불현듯 질투심까지 느껴졌다.


14년 만의 도쿄에서의 전시였다는데, 이 전시를 마침 보게 된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전시를 볼 때는 최대한 꼼꼼히 보려고 하는데, 웬일인지 다시 거슬러 올라가서 좀 전에 본 그림을 또 봐야 할 정도로 볼 게 많았고, 볼 수록 더 자세히 보고 싶어 졌다. 멋지단 말보다 대단하단 말이 어울렸던 전시.



엽서로는 부족해서 미니 파노라마 북을 구입했다.
오랜 시간 머물다가 돌아가는 길.
공기가 꽤 쌀쌀해졌다.
해 지는 시간의 롯폰기의 랜드마크.



프랭크 게리와 무라카미 타카시 전시를 보고 나니 뿌듯함이 밀려왔다. 도쿄에 온 타이밍이 정말 끝내줬다는 생각에, 진작 자랑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거의 일 년이란 시간이 흘러 지나갔다. 그래도 사진을 보니 그때의 생각과 감정들이 떠올라 다행이다 싶다. 지난겨울의 도쿄 이야기는 몇 손바닥 풀어냈으니, 이제 늦여름 9월의 도쿄 이야기가 하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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