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museo @Helsinki, Finland
디자인은 예술인가
대학시절 리포트 주제였다. 디자인은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 리포트를 제출한 후 친구들과 꽤 오랜 시간 이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내용으로 리포트를 작성했었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물론 '디자인도 일종의 예술'이라는 의견도 있었는데, 절대 아니라는 생각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산업 디자이너가 어떠한 기능이 있지 않은 오브제를 만들어, '이것은 예술'이라고 한다면 '그건 아니야'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보름에 가까운 북유럽 여행 중 8개의 미술관과 3개의 박물관을 갔는데, 탈린에서 갔던 박물관 외에는 전부 미리 일정과 내용을 알아보고 갔다. 두 개의 디자인 뮤지엄 중 하나가 바로 헬싱키에 위치한 디자인 뮤지엄(Design Museum Helsinki)이다.
원래 헬싱키 예술대학 학교 건물이었다가 1978년부터 디자인 뮤지엄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핀란드 디자인의 과거와 현재를 대표하는 제품들로 가득 차 있다. 1층은 핀란드의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상설전시장이고, 2층은 기획전시장이다.
알바 알토(Alvar Aalto)의 사보이(Savoy) 화병이나 올리베티(Olivetti)의 타자기처럼 눈에 익은 제품들, 그리고 세월이 켜켜이 쌓인 가구나 전자제품들. 하나하나 훑어보는 재미가 너무 좋았다. 주변에 디자인을 전공하거나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누군가가 헬싱키에 간다고 하면 꼭 들려보라고 얘기한다.
컬러, 소재, 그리고 마감
1층 전시실을 다 둘러보고 2층 기획전시장을 둘러볼 때는 '지금 내가 CMF 스터디를 하러 왔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무 만져보고 싶고 이리저리 뜯어보고 싶은 욕구가 한가득. 유명한 디자이너의 유명한 디자인 제품을 볼 때와는 다른 설렘이 있는 곳이다.
*CMF : Color, Material and Finishing
평일 오전임에도 꽤 많은 관람객들이 있었다. 모든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쓸모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쓸모가 없고, 누군가에게는 아름답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듯이. 누군가는 몇 분을 머무르며 유심히 뜯어보는 것을, 누군가는 보는 둥 마는 둥 흘끗 눈을 흘기며 지나가는 풍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앉아서 머무르는 공간. 정확히 알겠는 건 알바 알토의 스툴뿐이었지만, 전부 눈에 익은 디자인들이었다. 눌러붙은 껌 또는 흘러내린 밀가루반죽같이 생긴 방석에는 잠시 앉아봤다. 침대도 있었는데 어떤 의도로 있었는지 제대로 살펴보지를 못했다.
레스토랑이 있는 건가? 싶었는데 사람들 행동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뭐가 그리 급했는지 이 공간은 제대로 살펴보질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혹시 살만한 게 있을까 싶어서 디자인 샵으로 급히 갔던 걸까.
미술관을 기념하는 법
열심히 뒤져보고 고르고 골라, 에코백, 책 한 권, 엽서 두 장을 샀다. 에코백은 한참 잘 들고 다녔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꼭 뭐라도 하나 사서 나오는 편인데, 엽서나 자석이 제일 만만하고 구입 후 만족도가 제일 높은 것은 에코백이다.
헬싱키 디자인 뮤지엄은 전시 콘텐츠도 괜찮았지만 '전시 디자인'이 인상 깊었다. 너무 비비드를 넘어 네온에 가까운 쨍한 주조색이 낯선 감이 있긴 했지만, 블랙 앤 화이트와 너무 잘 어울려서 좋았다. 몇 년 후에 가면 1층에도 2층에도 새로운 볼거리가 꽤 생겨나지 않을까. 수년 내로 꼭 가야겠다.
Design Museum Helsinki
Korkeavuorenkatu 23, 00130 Helsinki, Finland
https://www.designmuseum.fi/f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