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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이 건네준 따뜻한 여운

- 아무 일도 없어서 더 다정한 영화

by 수요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 그런데 하루 종일 계속 생각난다
– 영화 카모메 식당, かもめ食堂 (2006)을 보고


"핀란드에 있으면, 자주 커피를 마시게 된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대단한 사건도, 눈을 사로잡는 반전도 없다.
그 흔한 배경 음악조차 조심스럽게, 간헐적으로 흐를 뿐이다.


대신 이 영화에는 공기가 있다.
침묵이 있고, 적당한 거리감이 있다.
그리고 말없이 건네는 따뜻함이 있다.


도쿄도, 오사카도 아닌 핀란드 헬싱키.
말도 통하지 않는 북유럽 도시 한복판에서 일본 여자 한 명 (사치에)는 작은 식당을 연다.

손님은 없고, 대화는 짧고, 하루는 길다.

그녀는 묵묵히 주먹밥을 쥐고, 식탁을 닦고, 시간을 견딘다.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날들이 흐른다.


어느 순간, 조금씩 사람들이 모인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 같은, 엉성하지만 정직한 만남들.

누구 하나 튀지 않고, 누구 하나 밀어붙이지 않는다.
서로를 바꾸려 하지도, 끌어안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심심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

평범한 하루가 반복되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지키고, 회복하고, 말없이 연결되는 순간들을 알아가는 것.

거대한 서사가 아닌, 그저 살아가는(=살아내는) 하루하루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잃지 않는 일.
그 소소한 용기가 이 영화 안에 조용히 녹아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웃음소리로 가득한 식당.

감정은 절제되었고, 여운은 길다.


카모메 식당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다.

하지만 나는 그 조용한 틈 사이에서 ‘아무 일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깨닫는다.


평범한 식탁 위에 놓인 따뜻한 주먹밥 한 개,
낯선 도시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인연들,
쓸쓸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은 하루.


삶은 늘 무언가를 성취해야만 의미 있는 걸까.
어쩌면,

조용하게, 묵묵하게, 때로는 아무 일도 없이

흘러가는 나날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고, 아름다운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무심히 흘려보낸 줄 알았던 하루들이

사실은 나를 조용히 지켜내고 있었다는 걸 늦게서야 깨닫게 된다.

그때 비로소, 마음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이런 말을 꺼낼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그리고 곧 덧붙인다.
“이 정도면, 참 괜찮은 인생이야.”


<귀에 맴도는 명대사 모음>

"커피는 다른 사람이 내린 게 더 맛있는 법이죠"
"좋아 보여요.
하고 싶은 일 하고 사는 게"
"단지,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뿐이에요"
"만약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마지막으로 뭘 할 거예요?"
"엄청 맛있는 걸 먹고 죽을 거예요.
좋은 재료를 써서 잔뜩 만들고,
좋은 사람만 초대해서 술도 한잔 하며,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거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 멋진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