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마시고 싶었을까?
언제부터 진짜 마신 걸까?

01 - [술]이라 부르는 놈에 대한 생각

by 수요일

이 음악 저 음악 가사 이름과 생각나는 제목들을 검색한다. [술]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임창정의 [ 소주 한 잔]을 클릭한다. 고음으로 올라가는 부분에서 한 몸이 되는 것 같다.


언제부터 술을 마시게 되었을까?

처음 술잔을 마시고 '카아~좋다 ' 했던 건 언제부터였을까? 곰곰이 기억을 되뇌어본다.


[술]이라는 놈을 만난 첫날은 언제였나? 얼마나 나의 속마음을 보여주었을까? 그놈은 내가 기억 못 하는 것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을까? 숱하게 그놈과 함께 할 이유를 만들었던 술자리들이 머릿속에 자리 잡은 좌뇌에서 우뇌로 필름처럼 펼쳐진다. 대학 친구들과의 정말 자유분방한 자리, 슬프고 괴로워서 땅 꺼지게 내쉬었던 한숨의 자리, 회사 생활 속 형식적인 자리, 말말말 너무 많거나 너무 없던 자리 그래서 시끄럽거나 조용한 자리 그리고 [술]과 나의 혼술 자리!


흔히 과거를 돌이키며 처음 시작하는 <라떼에는> 이라는 말을 사용할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다.

<라떼에는> 술이라는 것은 대학을 가서 마실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고등학교 때부터 마셨다고 자랑하듯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평범한 모범생인 내 주위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교 MT가 술과의 첫 만남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학 동기들과 선배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름 예의를 지키며 마셨던 첫 술자리가 흐릿하게 떠오른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취하지 않았던 DNA를 직접 경험하면서 부모님을 자랑스러워했던 기억에 미소 짓는다. 맥주 한 잔에 얼굴이 뻘게져서 더 이상 못 마시던 친구, 마시면 마실수록 목소리 톤이 MT 장소를 벗어나 대성리 전체에 퍼지던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저 술 못 마셔요" 또는 "안 마셔요" 하면서 빼던 친구는 없었던 것 같다. 마시라고 아무도 권하지 않았고, 반드시 마셔야 한다고 강압하지 않아도 새내기 동기 친구들은 홀짝홀짝 소주잔과 맥주잔에 입을 대고 마신다.


왜 마실까? 왜 마시고 싶었을까? 궁금했다. 첫 술과의 나의 만남은 [호기심]이었다.


강하게만 보이고 말도 없던 아버지가 얼큰하게 술에 취해 들어오시던 날, 나는 부드럽고 다정한 아버지를 만났다. [다중인격]이라는 단어는 성인이 돼서 알게 된 단어이지만, 그 단어가 바로 딱 이였다. 아버지 당신은 술을 마시면 또 다른 아버지가 나왔다.

"아껴 써야 한다" 10번도 더 말하면 주시던 용돈을, "사고 싶은 거 다 사도 되" 하며 주시고, 10마디 이상 안 하시던 아버지의 입에선, 현관문을 들어와 안방으로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100마디도 넘는 - 아버지에겐 재미있었던 일들을 - 마구마구 두서없이 "허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옆의 엄마는 웬 술을 또 이렇게 많이 마시고 왔냐며 투정을 부리지만, 어린 나이의 오빠와 나는 아빠의 그 모습이 참 좋았다.

아버지가 안방으로 가서 옷을 벗고 누울 때까지 우린 따라다녔다. 그다음 날,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강하게만 보이고 말없는 그 아버지로 돌아와서 새벽 출근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나가신다. 어제의 아버지는 이미 사라졌다.

궁금했다. [술]이라는 것이 어떻게 아버지를 저렇게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건지. 그러나 그때는 직접 술을 마시고 경험해볼 만큼 용기는 없었다.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절대 안 했던 시절이었다.


대학교 MT를 시작으로, 술에 대한 나의 강한 DNA를 확인하고 나서도 " 와우! 술 마시는 기분 이런 거구나" 하는 건 없었다. 아니 몰랐다. 그저 그때는 모든 만남의 자리엔 술이 빠지지 않았다. 대학 내내 강의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술집에 몇 명 동기들이 모였다. 가끔 캠퍼스 잔디밭에서도 만났다. 이때도 언제나 술은 함께였다. 그때는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가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언제부터 술을 진짜로 마셨을까? 진짜로 마신다는 건 어떤 것을 의미할까?


담배는 진짜 담배 피우는 것과 가짜 담배 피우는 것이 있단다.

몸속의 허파까지 담배연기가 들어갔다 나오면 진짜로 담배를 피우는 것이고, 입에서만 연기가 돌다 나오는 건 가짜로 담배를 피우는 입담배라고 알려주는 친구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웠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는 겉으로 뿜어져 나오는 연기 냄새와 색깔로 확인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지만, 경험 없는 시각과 후각으로만은 알 수 없었다. 동시에 "진짜로 술을 마시는 것과 가짜로 술을 마시는 것도 있을까?" 하고 물었다. 동기는 술이 달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다. 목을 넘어가는 술 한잔에 그 날의 힘든 숙제 스트레스가 날아간다고 했다. 다른 동기는 아깝지만 술을 버린다고 했다. " 나는 취하면 안 되기 때문에, 마시는 척만 하고 바닥에 부어버려".

정말 진심으로 술만 마시는 척을 한다는 것이 바로 이거구나 깨닫는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한계를 넘어선 나의 위가 감당하지 못하고, 입구멍으로 넘쳐 나온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는 단 한 번도 술을 버린 적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나 진짜로 술을 마신 걸까?


대학 입학부터 지금까지 -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았던 - 기쁠 때, 슬플 때, 힘들 때 늘 함께 한 [술]이라 부르는 놈에 대한 기억을 모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쓰고 싶은 아름답고 슬프고 귀한 많은 글감들이 있지만, 상상만으로 쓰기에 늘 부족함을 느끼고 도중에 포기한다.

[술]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경험은 너무나도 평범한 경험일지 모른다. 그래도 상상 100%의 소재가 아니기에 기록해 보고 싶어 졌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는 동안 함께 하며 진심으로 고마운 사람들, 다시 볼 수 없어 너무너무 보고 싶은 사람들을 기록하기 전에, 나는 [술]이라 부르는 놈에 대한 시간 추억으로 머리를 채우기 시작해 본다.


[ 술의 독백 ]

처음 본 날, 나는 너를 정말 쪼끄만 여자아이라고 생각했어.
오늘도 진정 술을 마실 만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반전이었어.
7잔을 이어서 마신 너는 배도 안 부른가 봐. 물론 취기도 전혀 없었어.
그때부터 나는 너를 조심스럽게 관심 갖고 쳐다보기 시작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