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마실 수 있어

02 - 대학생활과 술

by 수요일

2020년을 시작하던 1월, 시청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던 유명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OST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을 클릭한다. 허스키한 목소리, 쇳소리가 들리는 듯한 음 그리고 맘의 정곡을 콕콕 찌르는 가사가 들린다. 어느샌가 귀에 들리던 음악이 대학시절 인기 [B612]의 [나만의 그대 모습] 음악으로 변한다.


어언 30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 타임캡슐을 열어 본다.

마시면 취하는 [술]이라는 것을 내일 걱정 없이 마실 수 있던 최고의 시기는 바로 자유로운 영혼이 커가던 대학시절이 아니였을까?

대학시절 마셨던 술맛은 약수 온도의 차가움이 있다. 냉장고의 냉수와는 다른 온도의 차가움이다.

마시고 마셔도 시원하지 않았다. 그저 칼칼한 목구멍만 찔끔찔끔 적시고 몸속으로 흘러가 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 잔, 또 한 잔, 또 한 잔 계속 마셨다. 그렇게 마셨지만 나는 늘 마지막까지 멀쩡했다.


개인적으로 그 시절, 나는 알코올 분해 DNA가 탁월한 체력임이 분명했다.

술을 마시고 자정을 넘은 12시 20분 막차 전철을 타고 가도, 다음날 수업을 지각할까? 등의 고민을 한 기억이 1도 없다. 다음날 아침에 멀쩡하게 일어나, 1호선 전철에서 내 집처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1시간 자고 일어나면, 1교시는 산뜻하게 시작된다. 어제 마신 술은 그저 어제의 술일뿐이다. 오늘은 또 누구랑 술을 마실까 하고 약속을 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약한 DNA의 소유자다. 술을 마시면서 내일 출근을 걱정하고, 10시 귀가를 하여도 다음날 힘들게 9시 출근을 한다. 12시 넘어 점심시간 해장라면을 한 그릇 먹은 후에야 비로소 머리와 몸속을 헤매고 다니던 그놈과 작별을 할 수 있다.

다시 생각해도 대학시절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마실수 있었던 그 체력이 정말 자랑스럽다.


기억을 시작하고 추억을 소환한 김에, 희미해진 대학시절 그림들을 조금씩 조금씩 더듬어본다.

강의가 끝나면 언제나 술자리에 있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나의 대학시절, 대학가 앞 자주 가던 술집은 간단한 주점 같은 곳이 대부분이다. 병맥주, 세계맥주.... 그런 거 없다. 거품 반 물 반(아마도) 500cc 호프와 과일 시럽을 탄 소주가 인기였다. 많이 마시고 싶은 날은 소주로, 조금만 마시고 싶은 날은 호프를 선택한다. 그러나, 술과 함께 하는 맘은 늘 변한다. 한두 잔의 호프로 끝내고자 하던 날도 늘 마무리는 소주였던 기억뿐이다.


술, 그놈은 탁월한 능력이 참 많다.

좀처럼 크게 말하지 않던 친구의 목소리를 화통을 삶아먹은 듯 크게 만들기도 하고, 강의 내내 싸워서 대화 한마디 하지 않던 두 친구를 서로 잘못했다며 부둥켜안고 세상 가장 친한 친구로 만들기도 한다.

이 능력으로 술이 나에게 준 매직들을 나는 대부분 기억한다.

좀처럼 걷기 싫어하는 나를, 버스로만 오가던 학교 정문과 전철역까지의 거리를, 걸어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도록 조정한다. 어떤 날은 나를 달리기 선수가 된 것 마냥 마구 뛰어다니도록 한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잘 웃지 않던 나를 집에 가는 내내 전철 안에서 하하호호 웃게 만들기도 했다.

이뿐이였겠는가.

"나 간다", "응 그래 가" 하는 말을 1시간 내내 반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90도 인사하고 손을 흔드는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게도 한다. 이 웃긴 행동을 끝까지 받아준 대학 동기들이 생각해보니, 참 고마운 친구들이다.


그 시절 나는 술, 그놈에겐 취하지 않았다. 다만 술, 그놈의 능력에 취하여, 보통 때와는 다른 내가 되곤 했다.

내가 아는 술에 취한 나와, 술이 아는 술에 취한 내가 같았던 그 시절, 그래서일까!

대학시절 만났던 술, 술자리, 그리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나에게 지금도 가장 소중한 추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 술의 독백 ]
너는 늘 같은 장소, 같은 테이블 그리고 같은 술을 마셨어.
술을 마시다, 화장실에서 동기 등을 두들겨 주거나, 부축해서 먼저 집에 보내기도 하더라.
정작 끝까지 남아서 마신 너는 너무 멀쩡해 보였어.
그래서 내가 아주 소심한 심술 마술을 부렸어.
역까지 이어진 기찻길을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도록!
그 날 함께 마시던 동기들이 다 같이 너와 함께 그 좁은 레일 위를 걸어가고 있는 걸 봤어.
나는 다른 이들이 너의 고집에 짜증 내도록 심술 마술을 부렸는데,
모두가 너와 함께 행복한 표정으로 기찻길을 걷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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