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 술의 눈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오빠다.
지금 Y 앞에 오빠는 이상한 모자와 옷을 입고 입관 준비를 하고 있다.
" 우리 아들이 왜 여기 누워있어요 일어나. 어서 일어나" 엄마는 통곡을 하다 쓰러진다.
오빠가 들어있다고 믿어야만 하는 관은 새벽 버스에 실려 화장터로 향한다.
화장터의 한 숫자 앞에 문이 열리고 오빠가 들어있다는 관이 들어간다.
문이 닫히고 온도를 높이는 웅웅웅 기계 소리가 들려온다.
붉은 불길이 보인다.
얼마나 지났을까. 들어갔던 관은 사라지고, 뼛조각들이 나온다.
뜨거운 뼈가루를 긁어 하얀 천에 담는다.
표정 변함없던 아버지, 그제야 입을 뗀다.
" 한 숟가락만 주시면 안 될까요? 한 숟가락만 먹게 해 주세요 "
참고 참았던 아버지, 울음을 터트린다.
2008년, 오빠 나이 38살 되던 해 일이다.
사과, 배, 귤, 바나나, 미니수박 5가지 과일과 약과, 껍질 깐 밤, 말린 대추를 3개의 마트 가방에 나누어 담았다. 술도 3병 준비했다. 오늘은 가는 길에 호두과자 한 박스도 샀다.
아침 일찍 도착하여서 00 추모공원은 조용하다. 과일과 다식을 올리고, 호두과자도 올린다.
향 연기 주위로 술잔을 두어 바퀴 돌리고 상위에 올려 둔다.
"아빠는 와 있으려나. 영화에 보니깐 음식과 사진을 두고 이렇게 해야 죽음의 다리를 건너올 수 있다던데.
이번엔 좀 늦어서 못 넘어왔으면 어떡하지" 나는 분위기 전환용 말을 던져 본다.
비스듬히 담긴 사과를 보면서 엄마가 내 말은 듣지 못하고 말한다.
"죽어서 이런 건 하나도 소용없어. 다음 해부턴 오지 말자"
나는 갑자기 화가 났다. 앙칼진 목소리로 한마디 바로 던진다.
"엄마, 그 말 10년 내내 듣는다. 그냥 산사람 좋으라고 하는 거야.
안 하면 내가 섭섭하니깐, 나 좋으라고 오는 거야. 그러니깐 이젠 그런 말 하지 마 "
10분 정도 지났을까.
아빠가 와서 음식들을 먹고 엄마, 나 그리고 사위를 보고 안부를 물을 시간치곤 너무 짧다.
우리는 다시 절을 하고 향을 끈다. 일회용 접시에 담아졌던 과일과 다과들을 엄마는 다시 마트 가방에 차곡차곡 넣는다. 아무도 과일이나 다과를 먹지 않는다.
나는 상위에 올려졌던 술잔과 병에 남아있는 술과 은사발 한 개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은사발을 땅에 두고 가져온 술잔을 붓고, 병에 남은 술을 모두 붓는다.
어느새 눈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떨어진다. 엄마가 알지 못하도록, 얼른 소매로 눈을 닦아낸다.
술과 눈물이 떨어져 섞인 은사발의 술을 땅에 휙 뿌려 버린다.
남편은 시동을 걸어 내비게이션으로 다음 장소를 찾는다. 다음은 000 수목장으로 오빠와 이모를 만나러 간다.
2살 터울 오빠가 A형 간염으로 3일 만에 하늘로 가고, 그 충격에 함께 살던 이모가 1주일 만에 오빠를 따라 하늘로 갔다. 이모는 우리 남매를 어릴 적부터 키워주셨다. 엄마보다도 목욕도 더 많이 시켜주시고, 맛있는 음식도 더 많이 해주셨다. 주위에서 이모가 혼자 오빠를 보내는 것이 안쓰러워서 함께 따라갔다고 했다.
3년 후, 아빠도 오빠가 있는 곳으로 가셨다.
어느 순간, 매일매일 보던 가족들의 얼굴도, 매일매일 듣던 그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진심으로 신기한 것은, 그것만 제외하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아무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 생활만큼은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의심해보았지만, 없다. 아무것도! NOTHING!
변화 없이 흘러가는 세월들과 함께, 이 세상에 있는 우리들은 그들의 기일과 생일날에 맞추어 매해 한 번에 만나러 간다. <추모공원 투어>라는 표현이 이럴 때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오빠가 있는 소나무는 거의 정상에 있다. 바로 그 옆에 이모도 있다.
차에서 내려 마트 가방 2개를 꺼낸다. 작년까지는 오빠가 좋아하던 향이 부드러운 산사춘을 가지고 왔다. 올해는 요즘 핫하다는 새로 나온 두꺼비 소주를 데려왔다. 술과 안주를 일회용 접시에 담아, 각각 나무 앞에 내려놓는다. 각각 2번씩 나와 남편은 절을 하고, 엄마는 이모에게만 한다.
오빠의 생일이 있는 11월 정상 바람은 날카롭다. 이곳에서도 늘 20분도 채 있지 않는다.
자판기 커피 한잔 마실 정도 머무른다. 우리는 다시 일회용 접시 위에 있는 과일들을 다시 마트 가방에 담는다.
술병에 남은 술은 나무 주위에 뿌려준다.
" 많이 마셔라. 좋아하던 술이나 많이 마시고 왕창 취해버려라. 마셔. 마셔. " 나는 오빠 나무에 괜스레 화풀이를 해버린다.
우리는 한잔도 안 마셨건만, 가져간 술 3병은 언제나 모두 빈 술병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언제부터였을까. 습관적으로 집에 돌아오면 빈 술병 3병부터 꺼내서, 바로 공병 박스에 담아 버린다.
어느 것이 그 세상 사람들이 마신 술병인지, 어느 것이 이 세상 사람들이 마신 술병인지 알 수 없도록, 아무 이유 없이 섞는다. 쨍그랑 쨍그랑 빈 술병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아프다.
[술의 독백]
나는 2병의 친구와 함께 마트 가방에 담겨 추모공원으로 갔다.
올해도 변함이 없다.
처음엔 Y의 아빠를 만나고, 다음은 그녀의 오빠와 이모를 만나러 간다.
Y의 엄마가 오빠 나무 앞에 술 한잔을 놓아둔다.
늘 Y 가 따라 주었는데, 주위를 보니 그녀와 남편은 이모에게 갔는지 안 보인다.
Y의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 엄마는 한 살 한 살 나이가 먹는 것이 하나도 슬프지 않아.
우리 아들 곁으로 갈 날이 하루하루 가까워지고 있다는 거니깐.
엄마가 너 보러 갈 때까지 좀만 기다리고 있어 "
나무 앞 술잔 속 술이 빙그르르 돈다.
Y가 들었다면 또 한 번 엄청 화를 낼 내용이다.
다행히도 그녀가 듣지 못했다.
그날 밤 Y 가 술 한잔을 앞에 놔두고 중얼거린다.
" 엄마도 언젠가는 어차피 오빠 보러 갈 거야.
그러니깐 너무 조급하게 빨리 엄마 부르지 마. 부탁해 "
Y의 술잔 속 술이 빙그르르 돈다.
바람도 없는데,
술잔 속의 술이 빙그르르 돌고 있다면,
그건
내 눈물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