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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요일 Jan 09. 2021

05. 일인칭 단수

◎ 일인칭 단수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45


<크림>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 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냐?"

모른다고 나는 말했다. 프랑스어 같은 것은 전혀 모른다. 


"크림 중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 - 그게 '크렘 드 라 크렘'이야. 알겠나?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때의 나는 잘 알 수 없었다. 크렘 드 라 크렘?


"자. 생각해보게나." 노인이 말했다. "다시 한번 눈을 감고. 열심히 생각하는 거야. 중심이 여러개 있고, 둘레를 갖지 않는 원을. 자네 머리는 말일세, 어려운 걸 생각하라고 있는거야. 모르는 걸 어떻게든 알아내라고 있는거라고. 비슬비슬 늘어져 있으면 못써. 지금이 중요한 시기거든. 머리와 마음이 다져지고 빚어져가는 시기니."


◎ 일인칭 단수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23-224


<일인칭 단수>


지금까지 내 인생에는 - 아마 대개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 중요한 분깃점이 몇 곳 있었다.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오른쪽을 선택하거나 왼쪽을 선택했다(한쪽을 택하는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 적도 있지만.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경우가 오히려 많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항상 스스로 선택해온 것도 아니다. 저쪽에서 나를 선택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 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울에 비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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