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의 브런치는 구독자분들도 많지 않고(but,탁월한 안목을 가지신 분들 ^^) 그렇다고 그 규모가 조촐하다고 하여 평소 소통을 오밀조밀하게 한 것도 아니어서 다소 쑥스러운 소식입니다만 제가 퐈이널리~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편의점 에세이 <어쩌다 편의점 / 유철현 지음, 돌베개>입니다.
다른브런치 작가님들께서는 출간기를마음먹기 전부터 시작해서 집필, 퇴고, 투고, 계약, 교정, 출간까지의 이야기를 수타면처럼 윤기 있고 읽음직스럽게 뽑아내시던데 저는 대뜸 두괄식으로 출간 소식부터 때립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솔직히 제가 실력이 미천하고 게을러서인데 '조금 참신해 보이고 싶어서'라고 뻔뻔하게 포장하면 경찰에 신고하실 건가요?ㅠㅠ
아무튼 누군가는 보겠지라는 심정으로-먼 길 다녀온 연어 맹키로-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주행 출간기를 앞으로 사부작사부작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명 브런치 작가는 어떻게 출간을 하게 되었나? 많관부. 아래는 편집 과정에서 책에 들어가지 못한 '프롤로그'입니다.
프롤로그
편의점 회사에서 홍보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된다. 휴대폰을 확인해 봤더니 연락처 앱에 등록된 명함만 대략 1,400장, 저장된 전화번호는 4,500개 정도다. 평소 느꼈던 묵직한 그립감은 이 숫자들의 무게였나.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가끔 그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것은 그들의 연봉, 외모, 직업, 사회적 지위 이런 것들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만의 또렷한 취향과 관심사, 그것으로부터 공고히 구축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예컨대, 술을 좋아하는 어떤 이는 집에 홈바까지 차려놓고 하우스 파티를 즐기고, 중학교 때부터 베이스를 쳤던 어떤 이는 분기마다 밴드 공연을 하고, 캠핑을 좋아하는 어떤 이는 최근에 RV로 차를 바꿔 매달 가족들과 여행을 떠난단다. 가까운 친구 P는 소고기를 사다가 직접 가내수공업으로 육포를 만들어 먹었다. 자신의 최애 술안주이기도 하고 퇴사 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업 아이템이었다. 솔직히 이건 좀.. 음.. 뭐랄까.. 소고기를 말리는 그의 비전을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소심한 나로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그 발상과 용기에 탄복한 면도 없지 않아 그에게 ‘드라이 박(P는 박씨다)’이라는 별명까지 지어주며 박수쳐 주었다.
그 대상이 어떤 것이든 간에 무언가를 각별히 좋아하고, 마음을 쏟고 몰입하며, 조금이라도 잘하거나 잘 아는 분야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그건 한 사람의 시그니처이자 삶의 기록이고 인생의 지표였다. 맛집마다 유명한 메뉴가 있듯이 누군가를 떠올렸을 때 그를 대표하는 테마가 있다는 것은 훌륭한 브랜딩이 되어 그 사람의 가치를 만드는 거니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안타깝게도 나란 사람은 마땅히 내세울 만한 취미나 취향, 특기나 기술, 지식과 정보 그 비슷한 것이 육포도, 쥐포도 없었다.
그렇다고 기호가 없는 건 아니다. 나도 좋아하는 건 많다. 유독 좋아하는 게 없을 뿐. 무기력한 것도 아니다. 뭐든 평균 이상은 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잘하는 게 없을 뿐. 아~ 정녕 나에겐 얕은 조예라도 보여 줄 생률 같은 알맹이 하나 없단 말인가? 미욱한 나는 '유철현'이라는 상자에 손을 넣어 사소한 소재라도 건져내고 싶었다. ‘아내는 나한테 라면을 잘 끓인다고 했는데? 맞아. 짜파게티는 내가 요리산데! 아냐. 일요일엔 나보다 고수들이 너무 많아. 설거지는 내가 최고야! 하지만 얼마 전 AI 식기세척기가 나왔어. 기계를 이길 순 없다고.’ 이런 상념 중에 두둥실 떠오른 것이 바로 ‘편의점’이었다.
있네. 있어! 자아 성찰의 드론을 띄워 내가 걸어온 인생의 평면도를 내려다보니 하루의 2분의 1, 인생의 3분의 1을 편의점이라는 세계에서 살아왔다. 더욱이 그동안 내가 듣고 보고 배우고 경험한 편의점에 대해 얘기하자면 책 한 권도 모자란다고 평소에 얘기했더랬다. 그래서 진짜 책 한 권이 넘으려나 싶어 편의점과 관련된 글을 하나씩 쓰기 시작했다. 편의점 홍보맨으로서 평소 보도자료에 채 담지 못한 편의점의 뒷얘기, 옛얘기, 속얘기들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비유를 하자면, 편의점은 평소에 별 호감도 없는데 자꾸 생각나는 여(남)사친 같은 곳이다. 특별히 매력적이진 않는데 아무 생각 없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찾게 되니 말이다. 너무 친근한 곳이다 보니 관심이 많은 곳이기도 하고 또, 별로 관심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반짝이는 재미와 감동, 공감과 위로, 지혜와 통찰이 맛있게 버무려진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편의점은 우리가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들을 담아내는 시대적 초상이자 일상 유적지 같은 곳이라 하겠다. 그동안 '편의점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믿으며 편의점 홍보를 해왔기에 그의 숨과 맥박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느끼고 나누고 싶었다. 평소 몰라봤던 그 흔하고 뻔한 편의점에 누구나 슬며시 반할 수 있도록.(그러다 보면 나처럼 여사친과 돌연 부부가 되기도 한다)
비록 그냥 좋아서 하는 크로플 가게처럼 시작한 사적 동기의 작문이지만 그 채움의 과정엔 나의 모든 진심과 노력을 꾹꾹 눌러 담았기에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쯤엔 더 이상 나의 편의점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편의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복잡한 세상 편의롭게 살자!
끝으로 이 지면을 빌려 오늘도 변함없이 편의점이라는 세계를 지키는 모든 분들과 정갈한 시대정신으로 늘 희망을 노래하는 돌베개 출판사에게도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