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용은 얼마나 되셨나요?"
뭐든지 전문가 시대라, 이사를 하면서 정리정돈 업체에 의뢰를 했다. 짐의 규모를 따져 필요한 인원과 견적이 나왔고, 이사 다음 날 우리 집엔 여덟 명의 정리수납 전문가들이 들이닥치(?)셨다.
가구와 살림살이, 잡다한 잡동사니는 물론 모든 옷들과 하물며 속옷들까지. 거실과 집 안의 모든 바닥 공간에는 물건들이 쏟아져 나와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내 모든 것이 들통이 난 것 같은 그 광경에 머리가 아찔해져 슬그머니 도망을 치고 싶었는데, 의뢰 당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항으로 물건의 주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으니, 나는 오늘 이곳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각 영역별 전문가 분들이 부엌, 거실, 안방, 옷방, 서재 등에 자리를 잡으시곤 연신 나를 불러 대신다.
"이건 사용하시는 건가요?"
"사용빈도는 얼마나 되죠?"
"최근 사용은 얼마나 되셨나요?"
이 질문들에 내 대답이 시원찮았는지, 다시금 칼날 같은 질문이 돌아왔다."구체적으로 물어볼게요. 지난 1년 간 사용한 적 있으세요?"
내 대답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요...’라 답을 했지만 이내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사용하진 않았지만 의미가 있고 언젠가는 사용할 일이 있어요 꼭!"
집착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집착의 유사어 즈음은 애착이 될 것 같은데, 물건이 주는 애착의 의미는 그 상징성이 본질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상징성에 관한 집착을 붙들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분은 시간이 없다며 잠시 고민할 시간을 주겠다 했다. 빈도가 높지 않은 물건들은 결국 창고 수납 형태로 보이지 않는 곳에 배치가 될 텐데 그러고 나면 이 존재 자체가 잊혀질 뿐이란 일침에 가까운 조언과 함께.
이 날 내가 받은 보관과 폐기의 결정 독촉은 족히 백 건이 넘어갔다. 결국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들여 대부분의 의견 수렴과 타협 끝에 많은 물건들을 비워낸 지 6개월이 지났다. 지금 내 머릿속엔, 무엇을 버렸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그 물건들이 없어서 겪는 일상의 불편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그 물건들은 내가 부여한 집착으로 내 공간 어딘가에 그저 '놓여'있었던 것일까. 버림에도 용기가 필요했나 보다. 그것도 아주 상당히 많은 용기가.
나의 집착으로 떠나보내지 못한 마음의 저장고가 얼마나 빼곡하던가. 서른여덟 해를 살아가니 어쩌면 살아갈 날이 더 많을지 모르는데, 내 마음은 너무 많은 것들을 붙들고 매어두려 한 탓에 늘 부대끼고야 만다. 비워내지 못한 내 기억들로 빼곡한 마음 밭에는 꽃이 피지 못한다는 것을 결혼 2년 차에 깨달아가고 있다. 싱글 시절 지니고 있던 여러 추억이 담긴 물건들도 정리를 했는데, 쉬이 떠나보내기가 뭇내 아쉬워 폐기물 통에 분류된 물건을 연신 만지작 거리다 사진을 남겨두었다. 그 만으로도 이별 앞에 꽤나 위로가 되었다. 그래. 그쯤이면 되는 것 아닌가. 사진 한 장 즈음으로 위로하고 그곳에 애착을 둔 채 간직하면 되는 일.
그 모든 것들은 지나간 시간 앞에 소모된 감정이라는 것. 그것들을 거슬러 꺼내어 생생한 감정으로 느끼지 않아도 되는, 이미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결말을 본 영화라는 것. 모든 결말이 해피엔딩이지 않은 것은 인생이기에 당연한 것이라는 것. 그것들이 그리운 어떤 날엔 그저 기억을 잠시 거닐어보는 걸로 오늘과 내일의 새로움이 채워질 문을 열어 대신하는 것.
정리의 수용 끝에 알게 된 '어른이 되는 법'인지, 정리정돈을 마친 다음 날 나는 몸살이 났다. 무언가 내 몸에서 많은 것들이 떨어져 나간 상실감과 새로움이 채워지길 기대하는 가벼움 같은 감정들이 뒤섞인 반응이었을까.
용기가 필요하던 일을 해내며, 나는 오늘도 내일을 기다리는 어른이로 살아가는 중이다.
2021.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