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울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일기장을 꺼내 읽었다. 피로한 글씨체로 나는 주로 즐겁거나 덥거나 이따금 한국을 생각하며 답답하고 막막해했다. 단순한 감상의 나열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그 기록들이 내 여행의 순간들을 증명하고 있었다. 2019년 7월 인도차이나 반도 어딘가에서 숨쉬며, 걷거나 보거나 어쨌든 살고 있었다는 증거 말이었다.
그런데 그 섬에서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 눈을 감자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회백색의 촘촘한 정어리 떼들이 아른거렸다. 비가 오는 날 다이빙을 하면 빗방울이 유성우처럼 수면을 향해 날아들어 부서졌다. 야간 다이빙 중에 손으로 바닷물을 흔들면 야광의 플랑크톤이 점점이 보였다 사라졌다. 일기장을 펼치면 번번히 비현실적인 원시자연 앞에 현실적인 표현의 무력함이 몰려 들어 이내 포기했다.
그래서인지, 붙들 수 없는 순간을 바닷속에 두고 온 느낌이다. 불과 며칠 전의 기억인데 오래되고 흐릿한 영상이 느리게 재생된다. 기록하지 못한 기억의 대부분은 해파리의 유영처럼 유유히 흘러가 종국에는 닿을 수 없는 저편으로 사라진다. 빈 일기장을 보며 상실감이 찾아왔다. 바다의 첫 인상을 나는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집에 도착했다. 한달 만에 내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처녀 잠수 중인 나를 가만히 불러온다. 우리 생에서 같은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니까, 온 몸으로 회상해보기로 했다.
들숨에서 짠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