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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뉘일 곳

by 이하늘

오일장이나 재래시장이 있는 곳이면 좋겠다.

5분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널찍한 공원이 있거나

비슷한 거리에 산이 있어서 가볍게 등산로를 걸을 수 있는 곳.

또, 친구들이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

작든 크든 서점이 있는 곳, 도서관도 있으면 더 좋구.

풀과 나무와 꽃으로 계절이 바뀌는 걸 알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여자가 혼자 살아도 안전한 곳, 널찍하고 잘 닦인 인도로 휠체어가 편하게 돌아다니는 곳.

사람들이 너무 분주하지는 않은 곳.

볕이 잘 드는 거실 창문으로 구름을 구경할 수 있고, 방은 두세 개 정도,

크기는 약 15에서 18평. 구축 아파트가 좋다.

LED 스마트 전구를 설치해서 기분 따라 스마트폰으로 불빛을 조절하고

거실에는 책장을 두고 싶다.

식물은 물을 줘야 하는 타이밍을 모르니, 파스타 소스 병에 수경재배를 해야지.

언제는 종이책을 읽고, 또 언제는 전자책을 읽어야지.

어떤 책에는 코바늘로 뜬 책갈피를 끼우고, 어떤 책에는 영수증을 끼워 넣구.

커버가 멋있어서 사둔 빈티지 LP를 드디어 돌려보면서

와, 내가 이런 노래를 샀구나, 하고 오묘한 표정을 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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