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Virginia Woolf
나는 여러분이 여유롭게 여행하며 시간을 보내고 미래에 대해서나 세계의 어떤 지역에 대해서 사유하며 책 속에서 몽상하고 길가의 모퉁이에서 서성거리며 생각의 줄을 이어 강물 깊이 푹 담글 수 있도록 충분한 자금을 소유하기를 바랍니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중에서.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언제였을까. 맨 처음에는 그냥 지루하게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생각했고, 유난히도 맑고 예쁜 목소리를 가진 교수님의 낭독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교수님이 번역한 "등대로"도 사 보았지만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나의 생각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영어로 된 문학에서 멀리 걸어 나온 지 몇 년이 지나버렸다. 강산이 바뀔 정도의 시간이었다. 나는 항상 마음속에 갈증이나 갈망 같은 것을 품고 살았다. 열심히 하루를 살아도, 큰 일 없이 안정적으로 살아도, 내가 원하던 어느 정도의 조건을 갖춘 일상을 살아도 늘 내 마음속에서는 무엇인가가 부족했다. 그러다가 영화 "The Hours"를 보게 되었다. 역시나 영화가 개봉된 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곳의 여성들은 내가 느꼈던 갈증과 공허함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세계만을 끊임없이 채워가던 20대의 나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도 아무런 공감이 되지 않았다. 아마 이 영화도 그때 보았으면 별로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권태로운 삶,
그것이 영화 속 여성들과 나의 목을 옥죄고 있었다. 권태라고 하면 부부 사이의 권태기 정도를 떠올리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이해가지 않을 종류의 권태였다. 지루함, 따분함, 그런 것과도 다른 상태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아마 '복에 겹고 걱정거리가 없으니 누릴 수 있는 사치'정도로 치부하며 우리들을 비웃고 손가락질하며 집에서 걸레질이나 더 하던가, 라는 코웃음으로 넘겨버릴 만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들과 나에게서 발견한 권태와 그에 붙어 있는, 정확한 단어를 찾을 수 없는 답답함 같은 상태는 사람을 질식시킬 수도 있고 숨이 막혀서 강물로, 호텔로, 약병 속으로 들어가게도 할 수 있는 거대한 존재였다.
중산층 가정의 주부인 로라는 "댈러웨이 부인"의 책을 가지고 호텔에서 객실에 짐을 넣어주며 떠나는 벨보이가 더 해드릴 것은 없는지 물어보자 이렇게 답한다.
"Not to be bothered."
(방해받지 않고 싶어요.)
내가 정확히 원하던 것이 이것이었다고 깨달았던 장면이었다.
극 중의 버지니아 울프도 주변의 시선과 판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녀를 방해 또는 침범했다. 하인들은 그녀에게 살림을 안 한다고 뒤에서 비웃으며 글 쓰는 여자의 삶과 부인의 삶, 두 가지 삶을 살아서 좋겠다고 비꼬면서 말을 했다. 그녀가 외출을 할 때는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고 그녀의 심리상태는 병리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주변 사람들의 기준과 그들이 생각하는 '보통사람'의 경계 안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라고 강요를 당한다. 사람들은 그 경계 밖에 있는 것은 무엇이라도 잘라낼 준비를 하고 있다. 당하는 사람에게, 보통사람이 아닌 사람에게 큰 고통이 따를지라도 그것은 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긍정적인 고통이라고 포장하면서.
지금 나에게는 나만의 방이 없다. 집안의 이구석 저구석을 떠돌아다니며 열심히 나의 안전지대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나의 구역은 언제나 집안 식구들이 가장 쉽게 침범할 수 있는 연약한 울타리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나의 시간도, 공간도, 심지어는 내 몸과 마음까지도 온전히 나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내가 주인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의 생각의 꼬리를 물고 물어 깊은 강을 이룰 때까지, 그래서 그 안에 나의 생각의 줄을 드리우고 무엇인가 입질을 해올 때까지 기다려보고 싶다. 그 속에서 아주 작은 물고기 하나라도 건져낼 수 있다면, 아니 건져낸 찌에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을지라도 작은 입질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대로 이 숨 막히고 알 수도 없는 답답함과 공허함이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