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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 Jan 03. 2018

스물아홉 우리의 페이지들

인생책 낭독회, 아주 사적인 동기의 기록

내가 30대가 되었다.


며칠 전까지 20대였는데.


지난 1년, 나이를 생각할 때마다 아득해졌던 건 내가 꿈꾸었던 서른과 맞이할 서른의 격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훌륭한 인간이 되지도 못했으며, 능력있는 사회인이 되지도 못했고, 부모님 용돈을 꼬박꼬박 챙겨 드리는 경제력을 갖추지도 못했고, 여전히 사소한 것에 분노하며, 동경하던 말 잘 하고 글 잘 쓰는 사람들의 티끌도 따라가지 못했다. 29년을 살아온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불완전한지, 그 사실 때문에 화가 났다.


지난 한 해는 너무나도 빨리 지나갔다. 어떻게 갔는지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바쁜 1년이었다. 나는 '사업가'가 되려 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렇게 저렇게 실현해 보려고 했을 뿐인데, 그 과정에서 나와 나의 일을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설명해야 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따라왔다. 나는 발표 공포증이 있었다. 내가 발표 못 한다는 것을 공언하며 살아왔고, 말 잘하고 이야기 잘하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 살겠거니 하고 살았다. 거기에는 아마 나의 지식과 세계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아직 너무 불완전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불완전한 나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보이고 표현하며, 사람은 대부분 언제나 무언가가 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완벽하게 생각했던 사람들도 과정의 존재라는 것을. 나는 당연히 완성된 존재가 아니고, 완성된 존재가 될 수도 없으며, 서른이 된다고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사람은 숫자만으로 어른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개념 자체가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배워 왔던 것들이, 조금이 아니라 모조리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미래 어느 시점의 나는 완성된 존재가 될 것처럼 배웠다. 나이가 들어도 실수를 할 수 있고, 언제든 좌절하고 방황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주 어릴 때는 커서 무엇이 될까를 생각하게 하고, 커 갈수록 그것조차 줄어들었으며, 조금 자라서는 어떤 대학에 갈까를 생각하게 했다. 애초에 '커서 무엇이 될까'라는 질문이 틀렸다고, 무엇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어른은 왜 없었을까?


나의 많은 또래 친구들도 나처럼 자라 왔고, 그러나 대부분은 나보다 더 어른들의 말을 잘 들었다. 세상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 보이는 친구들은 오히려 더 부적응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을 맞이하며 많은 친구들이 나처럼, 나보다 아플 것 같았다.



모르는 친구들이라도 좋을 것 같았다. 모르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기도 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성장기를 가진 친구들에게서 나와의 어떤 접점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냥 '그래, 너는 그렇게 살았구나.' 할 수도 있으니까. 타인의 삶에 대한 그런 발견의 순간이 서로에게 위로를 줄 것 같았다. '내가 그보다 낫다'라는 위로가 아닌, 각자 이렇게 부단히 살아왔구나 하는, 사람의 삶 이야기가 주는 위로. 그것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시대와 공간적 배경을 가진 사람의 다른 이야기가 주는 위로. 그리고 한번쯤 '나는 이렇게 살았어' 하고 이야기해 볼 자리가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통해서라면 자연스럽게 되지 않을까 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대로,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사람대로.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대로,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대로. 모임을 열었고 다섯 명이 신청했으며 네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이것저것 아기자기하게 열심히 준비하면서 왠지 긴장이 됐는데, 막상 하나둘 나타나고 나니 동갑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오히려 편해졌다. 내가 '어색하게' 준비한 자기소개 질문지를 어색한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아해 줬다. 동갑이라는 사실에 와인이 더해지니 이야기는 한결 편해졌다.


지난 12월 29일 금요일, 네 명의 처음 보는 친구를 만났다. 어떤 계기로 만나는가에 따라 우리의 인연은 달라진다. 서로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채로 만났기 때문일까.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이지만 서로가 가져온 책으로,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로 서로의 삶 아주 조금을 들여다보았다. 두세 시간을 예상했던 모임은 다섯 시간 동안 이어졌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헤어졌다. 후속 모임도 약속했다. 서른이 된 서로의 안부가 궁금하다면서.


서른이 되었어도 나는 거의 변하지 않으나 나를 보는 세상의 시선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까 나로 사는 것이 더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그것에 맞서서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말해야 한다. 여전히 자주 우울해져도 괜찮고, 여전히 불안해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어도 괜찮다고. 그러면서 혼자 때로는 같이 토닥이면서 잘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고른 스물아홉의 인생책들과 책 속의 한 줄.


<지지 않는 청춘> 이케다 다이사쿠

"누구보다 괴로워한 사람이 누구보다 남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된다."


<센서티브> 일자 샌드

"자기 자신과 화해한다는 것은 때때로 내가 남들에게 성가신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일생 동안 자기자신과 화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망설일 것 없어요! 젊은이들이야 까짓 말썽 같은 걸 겁낼 필요 없지!"


<지금은 없는 이야기> 최규석


<소금꽃나무> 김진숙

"아침 조회 시간에 사람들이 '나래비'를 죽 서 있으면 그들의 등짝엔 허연 소금꽃이 만개하곤 했다. … 이른 봄 피어나기 시작해서 늦가을이 되어서야 서러이 지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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