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별이분법에 저항했던 활동가 김기홍님을 보내고 마음을 추스리기도 전에 다시 변희수 하사님을 보내야 합니다.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과 육군 하사, 그들은 그 호칭 이전에 우리의 동료였습니다. 뭣 모르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괴물이 아니라 옆에서 살아숨쉬며, 같이 일상을 살아가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저는 군 입대 전에 두 분을 실제로 만났습니다. 두 분 다 저와 지나가면서 만났기에 저를 기억하실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들을 기억합니다. 동료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두 분의 웃는 얼굴과, 미묘한 표정들과, 시끄럽게 떠들던 목소리와, 움직이던 몸짓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이런데 생전에 두 분과 가까웠던 분들의 심정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그저 스스로이고 싶어서 분투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스스로이고 싶었기에 성별이분법적이고 차별적인 세상과 싸웠던 사람들입니다. 그 용기와 도전에 세상은 외면과 조롱, 모욕으로 답을 했습니다. 이 유구한 사회적 타살에 대한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성애자를 반대하고, 평등을 나중에라 미루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군 통수권자가 되었을 때, 여당과 정부가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꺼려할 때, 다시 말해 누구는 차별해도 된다는 메세지를 국가가 나서서 승인해주었을 때, 수많은 혐오와 차별이 국가의 승인을 등에 업고 휘둘러질 때, 사회적 타살의 조건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그 무게가 그들을 죽인 것입니다. 그들과 같이 계속해서 줄지 않고 쌓이는 무게를 견디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군대에서 두 분의 소식을 들었을 때, 한 사람을 죽인 집단에서 복종하고 있고, 무엇인가 하고 싶지만 할 방법도 막막하고, 그 결과를 두려워하는 제 자신이 비참하고 무기력해졌습니다. 무서워서 “죽이지 말라, 살고 싶다”라는 말을 마음 속으로 외칩니다. 그러나 밖에서 조직하고 행동하는 분들이 저와 달리 소리높여 외친다고 해도 이 비참함과 무기력함이 저만의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죽이지 말라, 살고 싶다”는 외침을 계속해서 되풀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모였습니다. 추모하고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말로, 그리고 말이 아니더라도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서로가 곁에 있음을, 그리고 이 사실을 부디 잊어버리지 말자고 당부했다고 저는 짐작합니다. 참석하지 못한 저에게도 많은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더 나은 상황이 주어져 있었더라면’ 이라는 상상을 합니다. 우리 사회가 차별과 혐오에 단호하게 대응했더라면, 그가 어떤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평등하게 대우받는 세상이었다면, 우리는 그들을 더욱 오래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가고 없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공고한 차별에 일으킨 균열 속에서 여전히 그들을 기억해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바라던 세상이, 우리가 바라던 세상이 바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잔인한 세월을 견디어 살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균열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부디 그곳은 자기 자신으로서 자유로운 곳이길 바라며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