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로, '울림'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길 소망하며.
열 셋.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 그저 '모범생'으로만 학교를 다니며, 운동도 못하고 할 줄 아는건 공부 뿐이던 어린 시절의 나는, 2차 성징을 5-6학년 사이에 겪으며 급격하게 달라졌다. 신체도 커지고, 늘 꼴지만 하던 달리기에서도 1~2등을 하게 되고, 5급만 나오던 체력장에서 처음으로 2급을 맞는 등 많은 변화를 겪었다.
신체 활동에 자신감이 생기니 공부는 자연스레 멀어지고, 아이들과 흔히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각종 운동을 하고, 또 그러다 시비가 붙으면 싸우는 것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 모범적으로만 살아오던 나의 삶을 바꾸고 싶었던 일종의 몸부림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학급 문집을 만들던 시기였다.
자작시를 한 편씩 지어오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한참을 몸을 배배 꼬며 어려워 하던 나는, 당시 다니던 컴퓨터 학원의 워드프로세서 교재에서 나와 있는 시를 거의 배끼다 시피 하여 제출한다.
담임 선생님께서 나중에 나를 따로 불러,
"재성아, 이 시는 선생님이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혹시 어디서 본 걸 적은건 아니니?"
괜시리 반항하고 싶었다. 사실 양심에 찔리는 일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소리를 쳤던 것 같다.
"아 싫으시면 문집에서 빼시면 되잖아요!"
내가 당시의 담임 선생님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아마도 매를 들거나 벌을 주었을 것 같다.
그러나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재성아, 나는 네가 말을 예쁘게 하고 예의 바른 모습이 좋았어. 그런데 요즘들어 부쩍 반항끼 있는 모습을 보니 그 시절의 재성이가 참 그립고 또 선생님은 가슴이 아프네."
마음 속 유리가 와장창 깨지는 느낌이었다.
머리를 뒷통수로 세게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돌아갔다.
이내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화장실 칸을 걸어 잠그고 한참 동안을 울었다. 정말 한참 동안을.
그 이후로 험한 말을 쓰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지금도 '욕'이나 '험한말'을 못 쓰는 것은 아니지만 되도록 '안' 쓰려 노력한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절대적으로 선생님의 따뜻한 한 마디 였다.
수십번 매를 들었던 선생님보다 더 큰 울림을 주셨던 선생님의 진심어린 안타까움. 그것이 나를 크게 변화시켰다. 무려 2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생님의 소식을 듣기 위해, 중학생 이후 꽤 여러번 노력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선생님들께서 워낙 자주 전출을 다니시는 특성상..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은사님을 잊을 수가 없다. 앞으로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정말 작은 기억이 평생을 지배하는 순간이 분명 있다.
누군가는 잊고 지냈을 그 한마디가 평생의 기억으로 작용하는 순간이 반드시 있다.
이것은 긍정적일 때도, 부정적일 때도 있다.
수십년 전 은사님께서 내게 이러한 말씀을 하셨던 것이 엄청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셨을 것과 같이, 나도 지금껏 살아가며 수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누군가에게는 잊지못할 감동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말은 순간의 '발화' 이지만 때론 그 말이 '평생을 지배하는 기억'이 될 수 있음을 실감한다.
일상이 소중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모든 큰 꿈과 도전과 열정. 그리고 아픔과 고통. 감동은 결국 그 순간에 발화 된 일들로 인하여 피어나기 때문이다.
지금껏 제대로 해 오지 못했던 일이 있다면 더 바로 잡기 위해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는, 나도 누군가에게 꼭 '평생을 지배할 수 있는 좋은 기억'이 될 만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여전히 완전하지 못하고, 평생을 간다 해도 완전과 거리가 먼 사람으로 살 테지만. 적어도 노력하는 사람으로 꾸준히 살아가고 싶다.
내게 감명을 주신 그 모든 분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존재가 되고싶다.
따뜻한 말로, '울림'을 줄 수 있는 그런 존재.
필자 김재성
어릴 적부터 프로그래머를 꿈꾼 끝에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부를 간신히 진학했으나, 천재적인 주변 개발자들을 보며 씁쓸함을 삼키며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이후 프리젠테이션에 큰 관심을 보여 CISL을 만들며 활동을 계속 하더니, 경영 컨설턴트의 길을 7년간 걷다 현재는 미디어 전략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가끔씩 취미 삼아 프리젠테이션 강의를 하고 있으며, 이런 좌충우돌 지식들을 차곡차곡 정리하여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시즌 2'를 출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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