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각’은 프로토 타입일 뿐이다
글을 쓰다 보면 종종 ‘공감한다’는 말을 듣는 때가 있다.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삶이 달라야 뭐 얼마나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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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딱히 환영하지 않는 공감이 있다. 내가 깊은 수준의 사유와 오랜 시간의 고민을 거쳐 내어놓은 글에 ‘내얘기다’ ‘공감한다’는 글을 적어 주시면, 나는 속으로 반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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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런 생각을 하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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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비슷한 생각을 하셨을 수는 있겠지. 그러나 이를 정돈하여 밖으로 꺼내어 놓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내 글을 마주하기 전에 생각을 글로 정제해 본 적이 있는가? 만약 그리했다면 그제서야 ‘공감한다’는 말을 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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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단하고 단편적인 경험에 대해 공감할 수는 있다. 그러나 타인이 고뇌해서 내어놓은 결과물에 던지는 ‘공감한다’ 한 마디는 글 쓴이의 힘을 빼놓는다. 나는 차라리 이 말을 더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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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속에서만 맴돌던 생각을 글로 정리해 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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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 말이 정확한 표현이다. 공감이 아니라 머리속에 떠돌던 생각을 누군가가 완성품으로 만든 걸 본 느낌을 정확히 표현하면 윗 문장과 같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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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꿀 어떨 것’ 이라고만 머리에서 맴돌던 사람이 처음 나온 아이폰을 보며 ‘나도 이 생각했어’ 라고 하지는 않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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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마주한 글과 유사한 글이나 말을 먼저 세상에 내어놓지 않은 이상, 혹은 공감한다는 말 뒤에 언제 그 일과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경험을 기술할 수 없는 이상, 당신의 공감은 오히려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당신은 그런 비스무리한 생각을 아주 희미하고 뿌옇게 가진 적이 있었을 뿐이다. 그건 생각도 아니고, 그건 공감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생각이 더더욱 아니다. 프로토 타입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한 사람이 완제품을 보고 ‘나도 이런거 생각했어’ 라고 말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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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르지 못한 생각을 보고 공감한다는 무책임한 표현을 쓰기 전, 자신의 생각을 미숙하더라도 표현해보는 연습을 하길 바란다. 그 연습이 반복되지 않으면 당신은 결코 지금 수준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발전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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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내용은 2022년 출간 예정(하겠다고 마음 먹은) 나의 새 책 어딘가에 수록할 내용이라 미리 남겨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