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동네마다 빈 공터가 있었다.
지금이야 빼곡히 집들로 가득 찼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아이들의 사교장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공터는 윗동네, 아랫동네 할 것 없이 하나씩 있어서, 다른 동네에 넘어가서 노는 걸 금기시(?)하는 불문율도 있을 정도였다.
우리 동네 공터 맞은편엔 슈퍼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구멍가게가 있었다.
우리는 곧잘 공터에서 놀고 난 이후나
아니면 편을 나눠 내기를 한 후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는 등 그곳을 자주 이용했다.
그날은 친구, 나, 동생 셋이서 신나게 구슬치기를 하고 있던 때였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 보면 앞에 말한 것처럼 으레 먹을게 생각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집에 부모님은 맞벌이라 먹을 거는 없었고, 주머니 역시 텅텅 빈 게 일상이라 군침만 삼킬 때가 많았다.
이는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배고픈 표정으로 가게를 보고 있자니, 호로를 씌운 1톤 트럭이 도착했다.
지금은 택배차 같은 소위 탑차가 물건을 실어 날랐지만, 내가 어렸을 땐 1톤 트럭에 짙은색의 천막을 씌운 호로 차량이 지금의 택배차량 역할을 했다.
그 트럭 안에는 온갖 과자 박스가 가득했다.
트럭 아저씨는 구멍가게에 과자 몇 박스를 넣어주고 다음 배송지로 출발했다.
다음 배송지가 가까운지 아저씨는 뒤쪽 천막을 여미지 않은 체 그냥 출발했다.
그리고 곧바로 박스 한 개가 떨어졌다.
우리는 후다닥 박스를 향해 뛰었다.
트럭은 떨어진 박스를 못 보고 저 멀리 간 뒤였다.
우리는 그것을 들고 공터 후미진 곳으로 이동했다.
아~~ 어쩌지? 하고 서로 고민했다.
이미 트럭은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고, 이걸 구멍가게에 맡겨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것도 잠시
친구가 박스를 뜯었다.
'나누자'
친구는 그렇게 과자를 3 등분했다.
그렇게 3등분을 하고 난 뒤 하나를 뜯어먹었다.
하지만 그렇게 먹으면서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아마 그런 마음이 드는 건 많은 양의 과자를 집에 놔뒀다간 분명 어머니의 추궁을 당할게 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은 저녁때 현실이 됐다.
저녁때 일을 마치고 오신 어머니는 과자 더미를 보곤 우리 형제를 불러 사실을 추궁했다.
우리는 훔치지 않았다고 오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지만, 어머니는 남의 것을 손댔다는 이유로 회초리를 들으셨고, 결국엔 발가벗겨져 집 밖으로 쫓겨나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
아이의 잘못은 분명했지만 이걸 어디다 변상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과자는 엄밀히 말하자면 구멍가게의 것도 아니었고,
트럭 아저씨 즉 과자회사의 것이었기에 마땅히 변상할 길이 없어 보였다.
어머니는 한참 후 우리 형제를 불러들이셨고,
다음부턴 남의 것은 욕심내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과자는 하루 1 봉지만 먹기로 하고 말이다.
다음날 친구를 만났을 땐 울컥했다.
물론 그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맞지 않아도 될 회초리를 맞고, 발가벗겨져 집 밖에서 오들오들 떨었다고 친구를 질책했다.
그때의 친구는 순수해서 내 얘기를 듣자, 무척 미안해했다.
그리곤 자기 구슬 몇 개를 건네주며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
아마 지금도 x깔콘을 싫어하는 이유는 어릴 적의 이런 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먹으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 건 즐거운 여흥이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회초리는....
행여 그때 꿋꿋이 나 자신을 변호했다면 덜 맞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