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초등학교 3학년...
아마 그 나이 때쯤이면 아이들끼리의 의사소통이 촘촘히 얽히는 시기라 생각한다.
그런 의사소통은 집단행동 또는 놀이로 이어지기도 하고, 이는 강한 결속력을 만들기도 한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무리 지어 노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었고, 그 놀이에 '오락실'이 자리 잡았다.
오락실...
지금 초등학생에겐 생소할지 모르겠으나, 우리 때(?)만 하더라도 최고의 유흥장소가 아닐까 싶다.
흔한 말로 아이들 코 묻은 돈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그런 곳 말이다.
고작 1,2살 나이를 먹었을 뿐인데 놀이장소는 동네 공터에서 오락실, 야구 같은 스포츠로 나날이 확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나 역시 또래 남자애들이랑 오락실을 들락거리게 된다.
지하의 눅눅한 공기를 마시며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CRT 모니터에서 나오는 화려한 영상과 전자 비프음이 현실과는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는 듯했다.
50원을 지불하면 나는 비행기 파일럿이 되기도 하고, 용을 잡는 기사가 되기도 했다.
용돈 100원으로 두 번의 판타지를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인기 있는 게임은 아이들이 동전을 쌓아놓고 플레이하기에 좀처럼 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은 굳이 하지 않고 보기만 해도 즐거운 곳 아닌가?
돈이 있든 없든 그곳은 아이들의 향락이 뭔지 알게 되는 어둠의 장소.
어쩌면 제일 처음 접하는 향락은 오락실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런 향락을 저지하기 위해
어머니들은 동분서주 동네 오락실을 찾아 자신의 아이를 회수(?)하시곤 하셨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아이들이 우리 어머니가 아닌가 하고 움츠려 들기도 하지만 이내 잠시뿐
다시 전자오락에 열중한다.
점점 오락의 유흥이 깊어질 때쯤 난 어머니께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용돈으로 게임을 하기엔 금액이 적으니까 일부러 준비물 가격을 올려 말했다.
너무 티 나게 오르면 안 되니까 100원 정도 더 불렀던 듯싶다.
나중엔 점점 심해져
준비물이 없음에도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 어머니의 얇은 지갑을 더 빈곤하게 했다.
10살...
세상의 나쁜 짓을 나 스스로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나쁜 짓은 벌을 받게 마련이다.
그날은 어머니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집에서 쉬고 계셨다.
하지만 난 그 사실을 몰랐다.
알았다면 어쩜 일찍 들어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어머니는 학교가 마쳐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 걱정됐다.
하지만 '형 아마 오락실에 있을 텐데'하고 말하는 동생의 한마디는 걱정에서 분노로 바뀌었다.
어머니는 동생을 시켜 나를 데려오라 하셨고,
난 동생에 대한 원망과 앞으로의 벌어질 체벌에 두려움을 느꼈다.
방에 회초리가 놓여있고, 이내 어머니의 체벌이 시작되었다.
언제부터 오락실을 다녔는지,
오락은 어떤 돈으로 했는지...
회초리 앞에선 장사가 없다.
그렇게 종아리를 맞고, 울면서 이실직고를 하고 나니 부엌으로 가셨다.
그리곤 칼과 도마를 갖고 오시는 게 아닌가?
어머니께선 공부도 하지 않고, 오락만 하는 손이 무슨 필요가 있냐고 자르자고 하셨다.
종이리만 맞아봤지, 그렇게 칼을 갖고 오신 건 처음이라 정말 손을 자르실 것 같았다.
어머니라면 충분히 자르고도 남으실 분이라 생각했다.
울면서 바둥거리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는 손목을 도마 위에 올렸다.
나는 정말 잘릴 것 같아 어머니랑 힘겨루기를 하며 간신히 손을 뺐다.
눈물 콧물 범벅이 돼서는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어머니께 싹싹 빌었다.
어머니는 그제야 내가 다시 오락실에 가면 그땐 정말 손을 자르겠다고 경고를 하시고는 이내 자리를 정리하셨다.
손을 자르려고 한 어머니의 연극(?)은 10살인 내게 제대로 적중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동네 오락실마다 나의 사진을 전달했으니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라고 엄하게 말씀하셨다.
물론 이 협박(?) 역시 난 믿었다.
혼나고 나니 어머니 말씀은 모든 게 사실이고 진실이었다.
이렇게 혼난 후 친구들이 오락실을 가자고 해도 거절을 했다.
남자애들이 모두 오락실을 가는 건 아녔기에, 난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다시 오락실을 가게 된 건 초등 고학년 때이긴 하지만 10살 때처럼 열성적(?)인 출입은 자제했다.
그날의 기분전환 정도?
행여 어머니께 들키면 혼날까 봐 집에서 정말 먼 곳의 오락실을 갔다.
차츰 오락실은 나의 흥미를 돋우는 장소가 아니게 되고, 놀거리는 점점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오락실 역시 조금씩 나의 행동반경에서 멀어져 잊히고, 기억에서 놓아버린 장소가 된다.
이제 오락실은 동네에서 자취를 감춘 듯하다.
지금은 번화가에서나 볼 수 있는 오락실...
오락실을 대신해 pc방이 있긴 하지만,
조이스틱을 붙잡고, 온몸으로 플레이하는 10살 나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아 조금은 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