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있으면 11월이다.
그리고 겨울이다.
11월이 오기 전 10월 31일이면 라디오에선 ‘잊혀진 계절’이 가을의 끝을 알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내 찾아오는 겨울은 우리에게 따뜻한 무언가를 강요했다.
따뜻한 음식, 따뜻한 온기, 그리고 따뜻한 집...
물론 집이란 존재가 가족의 온기로 채워진다라는 말이 가장 멋지긴 하지만,
현실적으론 그 집의 보일러가 그 역할을 하기에 조금 씁쓸하긴 하다.
겨울이 되면 귀찮은 숙제 같은 존재…
연탄…
겨울이 되어 방의 구들장이 차갑다고 느껴질 때쯤 연탄보일러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가족을 대신해서 연탄불을 본 게…
구들장에 연탄 불이 잘 붙어있나 틈틈이 확인하고,
어머니가 부탁한 시간에 불을 가는…
가끔 아이들과 놀다가 불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아궁이의 불이 꺼져서 구멍가게에서 번개탄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선다.
그리고는 신문지에 불에 붙여 번개탄을 피우고 그 뒤 연탄구멍을 잘 맞춰 연탄을 올려놓고 마지막으로 불구멍을 가득 열어 놓고 기다리는…
이글이글 거리는 불꽃을 멍하게 보고 있으면, 나를 끌어당기는 묘한 느낌이 생생하다.
난 그렇게 13살 때까지 우리 집 불 당번이었다…
언제부터 내가 우리 집 불 당번이었을까?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적어도 8살 때부턴 확실한 불 당번이었다.
내가 어렸을 땐 지금 같은 가스나 기름 같은 보일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땐 연탄보일러뿐이었다.
우리 집은 단칸방이라서, 바깥쪽에 불 아궁이가 있었는데, 그게 참 곤욕스러웠다.
8살 꼬맹이가 불쏘시개를 들고, 내복 차림으로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뒤쪽 아궁이로 향한다.
그리고는 불쏘시개로 연탄을 들어 올리는데, 간혹 밑에 연탄이 붙어 2장이 같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럼 그걸 반으로 잘 잘라내서는 불이 살아있는 위쪽 연탄을 밑에 넣고, 새 연탄을 구멍에 맞춰 올려놓는다.
불 상태가 좋을 땐 구멍이 안 맞아도 큰 상관이 없지만, 아슬아슬 때 그냥 넣으면 꺼지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이쁘게(?)하려고, 사용하지 않는 낡은 식칼을 옆에 둬서 반토막(?) 낼 때 쓰곤 했지만, 난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불쏘시개로 그냥 내리쳐 대충 처리하곤 했다.
그러면 다음날 어머니께서 연탄재를 치우시며 나보고 잘 자르라고 핀잔을 주시곤 하셨다.
그녀와 나만이 우리 집 온기를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불과 더불어 물 관리도 해야 했다.
연탄보일러는 옛날 아궁이의 현대 버전이었고, 물을 끓이는 기능은 없었다.
그래서 아궁이 뚜껑에 열이 잘 전달되도록 전도체 같은 선을 연결시킨 갈색의 큰 고무 바스켓이 있었는데, 거기다 찬물을 부어두면 서서히 물이 끓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끓여진 물로 세수를 하거나, 설거지하는 데 사용되었다.
뒤쪽 아궁이에 노란색 양철 바스켓을 들고 가 물을 떠 오면 다시 찬물을 보충해 데워놔야 했다.
그것 역시 나의 역할이었다.
동생은 뭐랄까? 약삭빠른 구석이 있어 그런 노동(?)엔 좀처럼 참여하지 않았다.
귀찮긴 했지만 내가 안 하면 어머니가 해야 했고, 가뜩이나 고된 노동을 하신 분께 그런 시시한 거 마저 떠맡기긴 싫었다.
그래서 결국 집안의 소소한 설거지부터 공과금 납부, 불을 갈고, 물을 보충하는 일은 자연스레 나의 몫이 된다.
그렇게 쓰인 연탄재는 갈색 통에 쌓아둔다.
쌓인 연탄재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비웠던 듯싶다.
지금처럼 종량제 봉투에 담아 문 앞에 두는 게 아니었다.
이른 아침에 큰 녹색 트럭이 연탄재만 수거했는데, 시간을 놓치면 다음에 내놓을 때까지 고스란히 쌓아둬야 했다.
그런 날은 아침이 부산스러웠다.
아버지가 거들어줄 때도 있지만, 보통은 숙취에 시달리셔서, 나랑 어머니가 끙끙거리며 큰 골목으로 들고나갔다.
그렇게 들고나가면 어느새 연탄재 수거는 시작되었다.
골목엔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가 길게 줄을 늘어서고 있다.
큰 녹색 트럭의 짐칸에 아저씨 두 명이서 부지런히 연탄재를 받아 붓고, 그들의 통을 돌려준다.
대부분은 갈색의 원형 고무 쓰레기통이었다.
우리 집도 그러했다.
그렇게 연탄재를 처리하면, 그날 아침은 조금 급하게 먹곤 했다.
어머니는 직장에, 나와 동생은 학교로 향했다.
초등학교 매 겨울마다 연탄 가는 일은 반복되었다.
그러던 중, 13살 이사를 했다.
멀리 이사 간 건 아니었고, 바로 위의 집이었다.
하나, 둘, 셋 하면 도착해서, 사실 이사한다라는 느낌조차 없었다.
그곳은 단칸방은 아니고 2칸짜리 집이었지만, 마루는 없었다.
그 집은 보일러가 2개였다.
방마다 하나씩 연결되어 있던 것이었다.
나의 일이 두배로 늘었다.
그땐 가끔 동생에게도 이일(?)에 동참하라고 짜증을 내곤 했다.
하지만 안 하겠다는 애를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걸로 싸움이라도 했다가는 어머니께서 신경질을 내시며, 자신이 하겠다고 하셨고,
나는 그런 어머니를 말리며, 결국 내가 하곤 했다.
너무나 추울 땐 보일러가 2 개인 게 너무나 싫었다.
한 개로 방 두 칸을 따뜻하게 할 순 없었나 하고 누군가에게 투덜거리곤 했다.
그런데 늘 기억에 남는 건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내복 하나만 걸치고 그 일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점퍼든, 바지든 뭐라도 하나 더 걸치지도 않고, 오로지 살색 또는 회색의 내복을 상하로 입곤 불 당번을 수행하니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아마도 불티라도 날려 옷이 상할까 싶어서 그랬던 걸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번의 겨울을 보내면서, 연탄보일러는 어느 순간 기름보일러로 바뀌었다.
기름보일러라니...
너무나 편한 일상이었다.
더 이상 그 추운 밤에 연탄을 갈 일이 없어진 거다.
방 안에서 버튼을 누르면 알아서 작동하고, 심지어 뜨거운 물도 나온다...
나의 그런 고생도 끝이 난 셈이다.
기름이 떨어질 때쯤에 동네 석유 집에 전화를 걸면 집 앞까지 와서 기름을 채워주고 갔다.
보통 10만~15만 정도 채워야 했는데, 이는 한겨울 한 달 정도 버텼던 듯싶다.
그렇게 기름보일러에서 지금은 가스보일러로 바뀌었다.
처음 가스관을 설치, 매립할 때 비용이 제법 발생하지만, 그 이후 사용할 때의 요금은 훨씬 저렴한 듯싶다.
기름보일러일 땐 준비단계 또는 기름이 거의 다 떨어질 때쯤엔 기름 냄새가 나서 불쾌했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다.
그렇게 세상은 점점 편리함을 향해 가는 듯싶다.
나는 그 편리함 속에서 나의 유년시절을 점점 잊는 듯싶어 약간 안타까웠다.
추운 날 시장을 가면 연탄을 사용하여 몸을 녹이는 상인을 종종 본다.
이글거리는 불꽃은 여전히 나를 끌어당겨, 나의 유년시절을 상기시킨다.
연탄불 위에서 나와 내 친구들은 달고나를 만들다가 국자를 다 태워먹기로 하고, 쫄쫄이라는 불량 식품을 구워 먹기도 하고, 불위에서 구워 먹을 수 있는 건 다 구워 먹었던 듯싶다.
그 연탄불을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다.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이유도 있지만, 굳이 연탄불이 아니어도 난방기기의 발전으로 따뜻하니까 그런 듯싶다.
하지만 지금도 그 연탄 불꽃이 그리운 건,
그 불꽃 안에선 난 여전히 어린 불 당번이니까…
내복 차림에 부지런히 연탄불을 옮기는 나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