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9살 도둑...

by 헤엄치는 새

그날은 어머니께서 함께 저녁을 하자고 부른 날이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양산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일반버스를 탔을 텐데,

그날은 일반버스가 아닌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거의 2년 만에 탄 마을버스의 코스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 풍경은 조금 바뀌어있었다.

그리고 바뀐 풍경만큼이나 주변은 색이 바랜 인상을 풍겼다.

마치 십 수년 된 사진 같은 느낌이랄까?

그 고유의 색은 빠지고 기억으로 보정하는 그런 사진처럼 뭔가 뿌옇게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초등학교 문방구를 지났다.

나의 모교는 아니었지만, 그 앞에 위치한 문방구는 어릴 적 종종 물건을 사던 곳이었다.


9살...

난 그때 그 문방구에서 도둑질을 했다...

어릴 적 난 군것질보단 프라모델 만드는걸 더 좋아했다.


예나 지금이나 상상력은 풍부했고,

그런 상상력을 채워주는 건 군것질이 아니라 프라모델이었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9살이면 장난감에 관심을 보일 나이다.


불행히도 나의 이런 충족은 아버지의 주머니가 아닌 나의 용돈으로 충당해야 하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9살 아이가 받은 용돈은 고작 100원이 전부였고,

내가 원하는 프라모델을 사려면 적어도 1주일 길게는 약 보름을 모아야 가능했다.


그렇게 용돈을 모아서 프라모델을 사러 문방구에 가면

맘에 드는 프라모델이 몇 개 더 생겨 항상 고르는데 애를 먹었다.

그날...

문방구에서 본 프라모델은 1~4호까지 있는 시리즈였다.

나에겐 하나밖에 살 돈이 없었다.


우선 1호를 구매하고, 집에서 조립을 했지만 평소 같은 흥이 안 났다.

머릿속엔 나머지 2,3,4호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돈 나올 구멍이 안 보였다.


외할머니는 어머니랑 함께 계시니 무리였고,

막내 외삼촌은 늦게까지 학교에 있고...


그냥 구경이나 하자라는 생각에 문방구로 향했다.

문방구에서 오랫동안 2,3,4호를 번갈아 구경했다.

그리고 집으로 향했을 땐 나도 모르게 상자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도둑질!!!

그렇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내 손에는 제값을 지불하지 않은 프라모델 박스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난 집으로 막 뛰어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들고 온 프라모델을 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걸 다시 돌려놔야 하나? 아님 그냥 뜯어서 조립할까?

결국 뜯어서 조립하게 됐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어려도 죄책감은 들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그런 죄책감을 덜고자 난 동생에게 말했다.

하지만 외할머니댁에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동생은 어머니께 나의 도둑질을 고자질(?)했다.


어머니의 반응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에게 따라오지 말고 홀로 집에 있으라고 명령하셨다.

혼자 집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는 시간이 이렇게 길었나 싶었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나를 집어삼킬 거 같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께선 마당에서 나뭇가지를 꺾고 들어오셨고,

난 어머니께 회초리를 맞는다...

어머니는 나의 도둑질한 행동을 단번에 뿌리 뽑을 생각으로 모질게 종아리를 치셨다.


아파서 바닥에 울면서 널브러진 나를 화를 내시며 일으켜 세우고는 계속 매질을 하셨다.

그렇게 매질하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면,

마당으로 나가셔서 생생한(?) 녀석을 꺾어 들어오셔서 앞의 행동을 이어하셨다.


그렇게 울다 끼 억 끼 억 소리가 날 때쯤

어머니께선 왜 내가 맞아야 하는지 충분한 설명을 하셨고,

난 어머니의 그런 설명보다

이제야 매질이 끝난 건가 하고 마음속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훈계를 듣고

욕실에서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나를 씻기고는 문방구로 가자고 하셨다.

매를 맞아서 아픈 것도 아픈 것지만

문방구로 향하는 내 맘은 회초리로 맞은 종아리보다 더 아픈 뭔가가 꿈틀 했다.

문방구로 갔을 때의 시간은 늦은 밤이었다.


문방구도 그날 영업이 끝났는지 아주머니께서 정리를 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는 오늘 있었던 사정을 설명하셨다.

문방구 아주머니는 웃으시면서 아이들이 크면서 그럴 수도 있다며 흔쾌히 넘어가 주셨다.

그리고는 다음부턴 그러면 안된다는 약속을 나에게 받았다.


어머니는 내가 훔친 프라모델 값을 지불하시고

나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집으로 돌아오신 어머니는 나의 종아리에 연고를 발라주셨다.


그날 난 종아리에 상처가

어머니는 마음에 상처가 난 날이었다.



그 문방구를 막 스쳤다.

하지만 밖은 간판만 있을 뿐, 장사는 접은 지 오래된 듯하다.

전에 우연히 봤을 때 우리 어머니만큼 나이를 드신 문방구 아주머니...

이제 초등학교는 문방구가 필요 없는 걸까?라는 생각을 잠시 한다.


집에 도착한 후 어머니와 저녁을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난 나의 집으로 향했다.


문방구...

유년시절의 시끌벅적함과 함께 사라져 버린 안타까움...

그것은 아마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그리워하는 나의 작은 아쉬움 인지도 모르겠다...

이전 05화essay) 8살, 나는 우리 집 불 당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