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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to owl Nov 11. 2021

에세이) 친구의 딸은 세 살이 되었다...

내 주의의 친구들은 대부분 늦게 결혼했다.

물론 나처럼 아직까지 짝을 찾지 못해 홀로 지내는 친구도 몇몇 있긴 하다.

딱히 결혼 이야기를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다만 불현듯 나도 늙었구나를 인식했을 때 내 주변의 친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남자들의 의리가 그러하듯 우리 역시 호기로운 다짐을 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의 우정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누가 결혼을 한다면 설령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날아와 축하해 줄 것이며

모두가 결혼하면 다 같이 휴가를 내서 어딘가에서 바비큐도 해 먹고

늙으면 다 같이 크루즈 여행을 다니자는 그런 선언(?)들…

말 그대로 꿈같은 이야기를 곁들여 밤새워 술을 마시며 서로의 미래를 그리던 그런 때 말이다.

물론 이런 레퍼토리는 술을 마실 때마다 반복되는 하나의 의례와도 같았다.


그때의 우리는 다짐했던 그 모든 약속들이 이뤄질 꺼라 믿었다.

예전 어느 CF에서 나왔던 것처럼 ‘사랑은 다이아몬드처럼’이 아닌 ‘우정은 다이아몬드’처럼 굳건할 거라 믿었던 시절…


하지만...

삶이 어디 그리 쉽던가

깨지지 않을 거라 믿었던 우정은 나이가 들수록 사소한 것에 쉽게 금이 가고 부서졌다.


그 당시 내가 만났던 고교 동창은 나를 포함 다섯이었지만, 이젠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로는 그 당시 우리 무리의 구심점이었던 친구 A의 결혼식이었다.

절친이라 믿었던 그는 우리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았다.

그때의 서운함이 결국 분노가 되었달까?

친구 A는 그 이후 완도의 어느 초등학교로 부임이 되어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

결국 그는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또 하나의 불행한 점은 나는 그의 아이가 딸이란 것도 카톡 프로필 사진을 통해서 알게 됐다.

그의 딸이 언제 태어났는지 몇 살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마 초등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친구 A의 부재로 나머지 친구들은 그냥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자연스레 멀어져 갔다.

하지만 그중 친구 B는 종종 우리 가게에 들러 음료를 마시곤 했다.


훗날 친구 B는 결혼한다며 나에게 모바일 청첩장을 보냈다.

그런데 신부가 나와 내 여자 친구에게 상담했던 나이차가 많이 나는 여성이 아니었다.

신부는 3살 연하였고, 유치원 선생님이었으며, 약 1년간 교제를 했다고 한다.

아니 그럼 우리가 상담해 줬던 여성은 어디의 누구였단 말이가?


뭐랄까 나는 몇 안 되는 지인들에게 내 여자 친구라고 소개한 적은 있어도, 지인의 여자 친구를 소개받은 적은 없었다.(여자 친구가 없다고 소개해 달라고 우는 이가 다수였다…)

이때 나는 나만 그들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아닌가? 하고 심각한 고민을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신뢰하는 이에게 모든   보여줬는데, 정작 그들은 어느 정도 나에게 거리를 두고 있었던  아닐까?라는 의심을 품었다.

예전 친구 A의 결혼식에 서운함을 내비친 덕인지 친구 B는 그렇게 청첩장을 보냈다.

하지만 불행히도 친구의 결혼식 때쯤에 난 여자 친구와의 갈등으로 이별을 해야 할 처지였다.

비록 여자 친구와 사이는 틀어졌어도 친구의 호의는 거절할 수 없어서 혼자 결혼식장에 다녀왔다.

친구와 악수를 나누며 축하의 말과 여자 친구는 전날 과음으로 어쩔 수 없이 혼자 왔다는 어설픈 거짓말을 늘어놨다.

혼자 와서 자리에 앉기 눈치 보여 식장 뒤쪽 구석에 서 있었다.

그때 버진로드에 아버지와 서있는 친구의 신부를 처음 봤다.

친구에게 소개를 받은 적도 없고, 인사를 나눠본 적 없는 친구의 신부를 보고 있자니 나 자신이 뭔가 초라해 보였다.

결국 식을 보다 말고 집으로 향했다.


그다음 주엔 2년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친구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고, 난 이별 후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친구는 카톡으로 딸을 출산했다고 전했다.

사진으로 친구의 딸을 봤을 때 묘하게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제수씨 얼굴을 닮아야 하는데…’ 하면서 우스갯소리를 몇 마디 늘어놨다.

축하한단 말은 빼먹지 않고 전했다.

이렇게 나눈 몇 마디가 마지막 카톡이었다.


친구 B가 떠오른 건 이 글을 쓰기 얼마 전 지인이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서일까?

불현듯 떠오른 친구 B와 그의 딸…


친구의 딸은 아마 세 살일 것이다.(한국식으로 하면 그럴 것이다.)

사실 이십몇 개월 이런 식으로 더 많이 불릴 듯싶다.

친구의 딸이 세 살이 될 동안 난 그대로였다.


이렇게 산들

저렇게 산들 어떠하리 하면서 나 자신을 달래도…

늙은 노모 앞에선 그러할 수가 없더라…

손자 손녀 재롱을 봐도 무리가 없는 연세신데…

8살 고양이 재롱을 보고 계시니…

하루하루 다르게 늙어가는 어머니에겐 늘 죄송한 마음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과연 내가 결혼에 어울릴만한 남성인가를 생각해봤다.

이제 나이가 들어 만남의 기회는 거의 없다… 아니 없다..

그렇다고 모아둔 돈이라도 있는가?

내 머릿속 망상은 가득해서 수십 명의 피터팬이 머릿속에서 날아다니고 있다.

나는 현실에 적응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이런 나를 이해하는 여성을 만나면 된다지만, 지금 내가 혼자인 이유는 다 이유가 있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만나 함께 늙는다면 그건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나는 친구 B의 가정이 부럽다.

무럭무럭 자라는 친구의 딸이 부럽다.

그 이면엔 친구 B의 가장으로서 헌신이 담보된 것이긴 하지만 겉만 보는 나로선 친구 B가 멋지게 삶을 사는 듯해서 부럽다.


이제 난 그들과 이별을 해야 한다.

사는 동안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끽해야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연락을 하면 반갑게 맞이해줄 그겠지만.

그건 내 성격상 맞지 않다.

난 그렇게 잊히기로 결심했다.


친구의 딸은 세 살이다.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 나중에 나만큼 나이를 먹을 것이다.

친구 B는 그런 딸을 통해 삶의 영원함을 느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세상 모든 게 부럽게 보인다.

이것은 결코 비관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그냥 한 발 떨어져서 보는 관망이랄까?


친구의 삶

친구 딸아이의 성장…


난 나를 성장시켜야겠다.

그때 친구의 딸은 몇 살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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