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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to owl Oct 30. 2021

에세이) 난 다시 커피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2021년도 저물어가고 있다.

새해가 되었을 때 내가 했던 다짐들은 모래알처럼 산산이 흩어졌고,

나의 무기력은 몸안의 피를 다 빨아들이다시피 나를 나약하게 만들었다.


글은 안 써지고, 그림은 발전이 없고, 커피는 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방구석에서 썩은 고치처럼 웅크리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나에겐 모두 예정된 일이었을까?


최근의 난 커피점을 할 자리를 다시 찾아보고 있다.

광안리 커피점을 정리할 때만 해도 다시는 커피도 사람도 상대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혼자 얼마나 많은 욕설을 뱉어냈는지…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 난 또다시 이 레드오션에 뛰어들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알바부터 사장까지 약 10년 정도 커피를 했지만, 금전적 이득보다 손해가 컸으며, 이는 어머니의 희생을 강요하는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차라리 봉급생활이 낫겠다 싶어 친구의 소개로 들어간 회사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뛰쳐나오기 일쑤였고, 몸을 쓰는 육체적 노동은 그냥 퍼지는 게 당연하다시피 고꾸라졌다.

난 나의 게으름과 무능력을 탓하며 항상 잠자리에 누웠다.

가끔 감정이 격해지면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왜 난 이따위밖에 못되는가 하면서 욕하다 잠든 날이 참 많았던 듯싶다.


한때 나의 사주를 봐주셨던 카페 단골 사모님은 나에게 비견 겁재가 많아서 항상 싸워서 쟁취해야 하며, 개인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내 거라곤 1도 쥐어본 적 없는 내가 항상 누군가와 싸우고 경쟁해야 하다니 나에게 너무나 가혹한 운명이 아닌가 하며 신세한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살아있으면, 입에 풀칠을 해야 하고, 내일의 해를 봐야 하거늘…


친구들은 코로나 때문에 가게를 열어놨어도 큰 이득은 못 봤을 거라 얘기한다.

이렇게 까먹으나, 저렇게 까먹으나 샘샘이라면 놀면서 까먹는 게 더 나은 게 아니냐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항상 패배에 절어 털레털레 걸어야 했던 나의 속마음을…


무슨 생각이 들어 난 커피점 할 자리를 찾고 있을까?

그건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가게를 좀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작정 시작된 가게 찾아다니기…


그리고 가게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여기서 장사할 생각을 하다니... 저들도 그만큼 절박했던 걸까?, 아님 그냥 누군가에게 낚여 호구가 된 걸까?’하고 머릿속엔 온갖 나의 의견이 십 수개씩 나오고 있었다.

만나본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게를 내놨다고 말한다.

지난주 봤던 가게는 창업한 지 한 달도 안된 가게였다.

아직 새 거 같은 티를 내는 에스프레소 머신과 그라인더가 왠지 더 안쓰럽게 보였다.

자칫하면 한 달 만에 중고가로 떨이가 되는 신세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돌아다니며 놀란 건 임대료였다.

부산대 정문 근처에 임대가 붙은 가게가 제법 있었는데, 대부분 테이크아웃 커피점이었다.

근처 음식점은 사람이 대기까지 하고 있었는데, 커피점은 부동산의 연락처가 적힌 임대 카드가 창가에 붙여진 체 조용히 있었다.

활기찬 대학생, 줄 서 있는 음식점, 그리고 조용한 테이크아웃 커피점…

뭔가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곧 임대 카드에 적힌 연락처에 전화를 걸어 월세를 물어봤다.

5평짜리 보증금 2500에 월세 85에 부가세 별도였다. (부가세까지 포함하면 93만 5천 원이었다.물론 권리금도 존재한다.) 그 근처에 있던 비슷한 크기의 매장은 전전세 매장이었는데 월세가 110이었다.


사실 내가 생각한 임대료의 기준을 초과해서 내심 놀랬다.

물론 그들 앞에선 ‘아 그렇군요’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듯한 반응을 보여줬지만…(물론 내 생각이다.)

대학생들의 유동 흐름도 좋고, 분명 부산대 정문의 흐름은 다른 구역에 비해도 나쁘지 않은 상태니까 그러려니 하고 얘기를 마무리하고   근처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최근에 이렇게 몇 시간씩 걷는 게 무리가 됐는지, 왼쪽 무릎에 이상이 생겼다.

예전부터 무릎이 좋진 않았으나, 요즘 가게를 찾아본다며 오래 걸어서 그런지 다시 재발한 모양새였다.

탄자니아 커피를 꺼내 드립을 내렸다.

아… 어떻게 해야 할까?

커피를 홀짝거리며 이런저런 궁리를 해본다.

로또라도 되면 참 좋겠는데라는 되지도 않는 상상을 하며 소파에 앉아 임대 나온 가게를 살펴본다.

하지만 딱히 맘에 들지도 않고, 늘 봐온 가게만 올라와 있을 뿐이었다.

몇 달 사이 세상과 난 말할수 없는 골이 깊어진 듯싶었다.

가끔 이곳이 내가 숨쉬는 그 공간이 맞는가?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은 코로나와 상관없이 돌아가고 있는데, 난 코로나 핑계로 이렇게 편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덕분에 예전 가게 권리금은 야금야금 잘 까먹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이번엔 한 번에 톡 털어먹을지도 모르겠다.


난 다시 커피를 해야 하나?

왜 해야 하는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서?

지갑이 점점 얇아져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아마 이게 정답일 듯싶다.

내 주제에 글로, 그림으로는 수입을 낼 수 없으니까, 내 주변에서 늘 말하는 그냥 취미로 남겨둬라… 라는…

젊었을 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화를 내며 언젠가 그렇게 입을 놀린 걸 후회하게 해 주겠다며 눈에 불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았으나, 지금은 그냥 ‘그래. 그래. 그렇겠지…’ 하는 자조감 섞인 미소를 띠는 내가 되었다.

어쩌면 나도 이젠 알고 있으리라…

다만 어쩔 줄 몰라 그 자리에 딱 서있는 어린아이 같은 내가 가끔 안쓰럽게 보일 때가 있다.

아직 난 지지 않았다고 고함치고는 있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 양손을 잡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란 존재가…


결국 커피는 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야 한다.

이 순간 난 항상 스스로에게 말한다.

난 아직 세상에 무릎 꿇지 않았다고, 난 지지 않았다고…


오늘 내린 탄자니아 드립 커피는 평상시보다 맛이 없다.

항상 내리는 커피인데도 이렇게 맛이 천차만별인데

인생이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난 그렇게 인생을 내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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