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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to owl Nov 18. 2021

에세이) 그날 어머니는 길을 잃었다...

그날은 보통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평소대로 간단한 저녁을 챙겨 먹고, 때에 맞게 늘 걷는 코스로 가벼운 걷기를 했다.

그렇게 하루가 순조로웠다.

모든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딴지일보에서 게시글을 읽고 있는 도중 어머니께 전화가 걸려왔다.

시간은 밤 10시 40분이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당신의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 당신의 목소리는 어린아이처럼 울먹이고 있었다.


순간 겁이 났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설마 아버지가 또 쓰러지기라도 한 건가?

울먹이며 부르는 나의 이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누가 내 목을 죄어오는 듯한 답답함과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울먹이는 어머니 목소리를 이명처럼 남겨둔 체 가볍게 숨을 내 쉬었다.

그리곤 어머니께 진정하라고 했다.

나의 목소리를 듣고 조금은 진정되었는지 곧이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르겠어…”

그 짧은 한마디가 나를 그 어느 때 보다 긴장하게 만들었다.

나의 두려움과 상관없이 어머니는 말을 이어가셨다.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나는 어머니께 내리신 역이 우리 동네 역인지 재차 확인했다.

어머니의 확답을 들은 후, 난 지도 맵을 열어 어머니께서 서 계신 주변에 보이는 건물을 말해보라 했다.

건물을 확인 후 그렇게 길 안내를 해 드렸다.

정도 걸어가자, 눈에 익은 건물이 눈에 들어오신 듯했다.

“여기서부터는 알겠다.”라고 말씀하시며 집으로 갈 수 있다고 전화를 끊자 하신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 적잖이 놀란 나 자신을 봤다.

뭔가 거짓말 한 아이처럼 심장이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소파에 등을 기댔다.

건조한 내 방인데도 손에 땀이 맺혀있더라…

파자마에 손바닥을 닦으며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어머니께 치매가 오신 걸까?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통화는 내 마음속에 짙은 불안감을 싹 틔게 했다.

또다시 답답함이 밀려 올라왔다.

난 냉장고에 생수를 꺼내곤 바로 입에 가져다 벌컥벌컥 마셨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몇 번의 수신음이 건너 간 후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보다는 훨씬 편안한 목소리였다.

이제야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평소 어머니는 3번 출구를 통해 집으로 오셨단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4번 출구로 나온 게 아닌가?

그렇게 올라온 4번 출구는 당연히 이질적으로 보였으리라.

더군다나 칠순의 노모에겐 우리처럼 순간적인 판단이 서지 않았을 테니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4번 출구에서 집 반대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쪽 방향은 주로 공업사 같은 작은 공장이 위치해있다.

영업을 끝낸 공업사의 거리는 비록 차도라 해도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

그런  주변 경치는 확신 없는 어머니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결국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잡아, 왔다 갔다 했던 터라 몸은 지치고 변별력은 더 떨어졌을 것이다.

거기다 지나가는 행인조차 없었으니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그렇게 지하철 출구를 사이에 두고 몇 번을 오락가락하다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달래며 “오늘 귀신이 어무이께 장난 좀 심하게 친 듯하네”하며 우스갯소리를 몇 마디 늘어놨다.

어머니는 “나 치매면 어떻게 해?”하고 불안감을 내 비치셨으나, 괜찮다고, 가끔 그렇게 정신없는 날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위로했다.


그렇게 이십여분을 통화하고 소파에서 내 몸을 끄집어 내 잠시 서 있었다.

마음 한구석이 안절부절못한 나머지 튕겨져 나온 듯했다.

어릴 때 봐 왔던 총기 있고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 없다.

당신의 몸은 앙상한 가지처럼 말라비틀어졌고,

총기 가득한 눈은 작은 소리 하나에도 흔들리는 눈이 되고 말았다.

우리 어머니는 괜찮을 거야 라고 생각했던 막연한 기대감이 이젠 나도 어떻게든 이런 노인성 질환에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처럼 말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직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젠 가족이란 공동체를 생각해야 할 시간이 왔다.

이루고 싶은 것도 많지만, 해야 할 껀 더 많다.

어머니의 희생만 강요한 나쁜 아들이 되어버렸다.


내 마음속 찌꺼기 같은 답답함은 밤만 불러들이는 듯싶다.

오늘 새벽도 무척이나 짙게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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