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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to owl Mar 19. 2020

essay) 나의 이모티콘 도전기 02

1편은 여기클릭


나는 모르겠다.

시간, 돈 모든 게 엉망이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삶이라지만, 그 당시 나의 흐름은 점점 더 나쁨일 따름이었다.

그렇게 두 번 떨어지고 난 뒤 내 머릿속엔 캐릭터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조류니까 다른 포유류(?)처럼 입이 아닌 부리로 표현하려니 한계가 있다 생각했고, 이는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는 중압감과도 연결되었다.


그래서 고르고 고른 게 개?

어떤 동물을 할까?

이미 이모티콘엔 여러 동물이 있었고, 난 개 그중에 시바견을 택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바견은 사람들에게 귀엽다고 칭송(?) 받는 존재였으니,

'시바견으로 하자'라고 결정했지만, 문제는 내가 그린 시바견은 귀엽지도 이쁘지도 않았다. ㅠㅠㅠ


그냥 아재 같은 개가 되어버리다니...

그래도 일단 캐릭터는 만들었으니, 다시 이모티콘 작업을 준비했다.


작업이 진행될 때마다 느낀 건, 개는 너무 흔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맴돌았다.

흔한 건 둘째 치고, 그때 어떤 동물을 택했든, 내가 그리면 다 아재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캐릭터보다 심각한 건 트렌드가 지난 '~~ 하개’라는 철 지난 유행어였다.

옥션의 CF처럼 사자가 사고, 판다가 파는 그런 언어적 유희는 유행을 지나 시들해졌는데, 난 왜 그런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


그런 잘못된 선택의 연속은 다 내 마음의 조급함 때문일 것이다.

시간적 여유도 없고, 금전적 여유는 더더욱 없었다.

마치 영업실적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는 보험회사 영맨(?) 같은 심정이었달까?

하루하루가 너무나 썼다.


코워킹 스페이스에 입주했다.

시바견으로 작업하는 중에 코워킹 스페이스에 입주했다.

이유인즉 너무 안일한 나의 작업방식 때문이었다.

캐릭터를 2시간 정도 그리면, 그다음엔 쉰다는 명목 하에 게임이나 TV 시청에 몰두하고, 그리고는 하루가 끝나버렸다.

또 불규칙한 수면 및 기상시간도 한몫했다.


모든 핑계를 나의 외부환경 탓으로 돌렸다.

나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반성 없는 행동으로 인해 결국엔 오후 3시에 들어와서 저녁 7시에 퇴근(?)하는 내가 되었다.

집에서나 이곳에서나 바뀐 게 하나 없는 삶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한 달 입주비는 부가세 포함 16만 5천 원이었고, 이는 나의 통장잔고를 더 격하게 떨구는 요소였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난 나를 너무나 신뢰(?)하고 있었다.


3번째 이모티콘 제출을 완료했다.

약 3주에 걸쳐서 작업을 완성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캐릭터의 피드백을 받은 것도 있지만, 앞에 말한 것처럼 너무 짧은 작업시간도 한몫 거들었다.

이번엔 좀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모티콘 같다', '많이 발전했다'

그와 반대로 '개는 흔하게 아닌가?', '그다지...'라는 혹평도 주변 지인에게 들었다.

하지만 이미 제출은 했고,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확연히 차이나는 나의 의지는 그런 조언을 귀에 담아두지 않았다.

기말시험을 치르고 방학을 맞이한 학생처럼 마음만 홀가분했다.

그리고 '이번엔 붙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희망...


그렇게 3번째 미승인을 통보받다.

이때는 추석의 영향 때문인지 발표가 조금 늦었다.

난 이렇게 발표가 늦은 게, 혹시 이번엔 승인 때문은 아닐까 라는 기대를 살짝 품었다.

하지만 여지없이 미승인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내가 있던 코워킹 스페이스엔 이미 카카오 이모티콘 작가가 있었다.

그는 이미 자기만의 캐릭터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고, 그런 그가 빛나 보였다.

그때 불현듯 엘리 코헨의 말이 떠올랐다.


지속적인 자기 계발이 없으면

현재의 당신이 앞으로의 당신이 될 것이고

당신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과

당신 자신이 비교될 때 고통은 시작된다.


그렇다. 내가 되고 싶고, 갈망했던 이가 바로 눈앞에 있다.

난 이제껏 내가 저질러온 게으름, 나태함, 자기 연민 따윈 다 묻어버리고, 그저 보통사람처럼 저 사람의 결과만을 보고, 부러워하고 괴로워하는 한심한 인간이었다.

그 뒤...

부산대 중앙도서관에서 멍 때리는 시간이 늘었다.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했다.

머릿속엔 내가 날려버린 시간, 돈 생각뿐이었다.


만회해야 한다.

하지만 만회할 아이템이 없다.

다 접어야 하나? 아니 그러기엔 너무 아깝다.


내 마음속엔 수많은 선문답이 오고 갔다.

일하면서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구직사이트를 들어가 봐도 늙은 몸뚱이를 원하는 곳은 없었다.

12시간 2교대, 조선소, 그냥 다 묻고 돈만 벌 수 있는 곳은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모티콘을 꼭 해야 했다. 그리고 나의 작품을 승인받고 싶었다.

그렇게 선문답을 주고받고 들어오면...

그곳엔 진짜 이모티콘 작가가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된다.

그 사람에게 노하우라든가 어떤 적절한 조언을 들었으면 나의 이 이야기는 어쩌면 성공담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왜인지 그 사람에게 묻는다는 건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했다.

내 능력 하나로 승인받겠다는 욕심이 컸다.

왠지 모를 질투심과 동경심, 경쟁심이 일었지만 그건 오롯이 나만의 감정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바깥바람도 쐬고 나면 작업에 다시 임할 수 있을 거란 기대완 달리 매일매일 자기혐오의 생산뿐이었다.

일할 의욕도 없고, 하루를 무의미하게 소비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네이버엔 나처럼 카카오 이모티콘에 떨어진 사람들의 경험담(?)이 담긴 블로그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 분들 중엔 나보다 더 많이 떨어졌지만 부지런히 활동하는 분들도 있었다.

떨어지면, 분석하고, 도전하고...

그리고 글 중에 유독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는데 OGQ였다.

네이버 그라폴리오와 더불어 OGQ는 작가들에게 수익을 만들어주려는 공간이었다.

주로 블로그용 스티커를 올리는 곳인데, 이 스티커를 이용해 자신의 블로그나 리뷰를 꾸미는 데 사용되었다.

하지만 블로그용 사이즈는 카카오랑은 달라서 수정이 불가피했다.


다행히 OGQ는 카카오와는 달리 제출만 하면 거의 다 통과였다.

나 역시 이모티콘을 수정해 OGQ에 제출, 판매를 시도했지만, 판매는 1건.

수수료를 제하고 약 680원을 받았다.


판매 1건은 나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과연 나는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있는가?

나의 캐릭터가 상품성을 갖추려면 무엇을 수정해야 할까?

이모티콘에는 적합한 캐릭터인가 등등

 

하지만 뚜렷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피드백을 나눌 멘토도 없었고, 주위엔 이런 나의 상황을 봐주는 이도 없었기에...

한마디로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결국 수입 없이 많은 돈을 지출했다.

사실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큰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입 없이 나가는 돈은 심리적으로 부담이었다.

그러한 부담감은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인간인가?라는 불안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모든 것이 어느 순간 다 터질 것이다.

그 순간을 막기 위해서라도 꼭 수익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나 자신을 닦달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내몰며 캐릭터를 만들고 카카오, 네이버 밴드, OGQ에 제출해도 그 어느 곳 하나 받아주지 않았다.

카카오랑 밴드는 제출 후 늘 미승인이었고, OGQ는 판매 0건이었다.


결국 난 그렇게 파산했다.

파산이란 말이 좀 우습지만, 나의 6개월 플랜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마무리하며

그렇게 카카오 이모티콘에 약 12건을 제출했지만, 모두 미승인이었다.

네이버 밴드와 OGQ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작년 봄까지 한 이모티콘 도전은 그렇게 끝났다.

지금도 구성은 어느 정도 해놨지만 이걸 실행에 옮길지는 미지수다.


수많은 실패는 스스로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그것이 좌절이든, 내일을 향한 새로운 도전이든 결국엔 다 자기 것이 된다.

나처럼 카카오 이모티콘 도전을 하고 떨어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세상의 싸움은 한 번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그러한 패배 속에서도 버티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해내었다는 성취감을 얻기 위해 수많은 패배를 겪는다.

쉬어는 가되, 멈추지는 마라.

우리가 가는 길은 그런 것이다.


미래의 이모티콘 작가들에게 건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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