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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to owl Jan 31. 2024

에세이) 일을 의뢰받다...

일 의뢰를 받은 건 2주 전 월요일이었다.

한가로이 오후를 보내고 저녁을 준비하려는 순간 메일 한통이 왔다…


그들의 글에 어울리는 6컷의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였다.

고료는 30만…

의뢰한 회사는 놀랍게도 2년 전 처음으로 나에게 글과 그림을 부탁한 그 회사였다.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었지만 안타깝게도 난 나의 글에 자신이 없었다.

오죽하면 나의 글은 나만 심금을 울리고, 나에게만 감동을 선사하는 그런 글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런 와중에 처음으로 글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내가 쓴 글이, 내가 그린 그림이 종이에 인쇄되어 매거진이 되어 다수에 읽히는 그런 영광이 온 것이다.


난 내가 짜낼 수 있는 어휘와 느낌을 담아 글을 적었고 그렇게 나온 매거진은 그들의 배려로 나도 한 부 갖게 되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미약한 한 걸음이 나의 전부가 되리라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렇게 해가 넘어가도 어느 누구도 날 찾지 않았다.

마치 1집만 대박 터진 신인 가수 같았달까…

어차피 수입은 없고, 그렇게 인천에 올라가 막노동을 하고 그것도 힘들어 다시 양산으로 돌아와 현재까지 커피 노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약 2년이 지나고 나니

뭐랄까 이따위로 글을 쓰면 평생 사람들에겐 읽히지는 않겠구나 생각이 들더라..

그럼에도 딱히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으니…

마치 노트에 휘갈기듯 낙서하는 그런 모양새가 된 것이다.

혼자 푸념하고, 혼자 즐거워하고, 혼자 감동하는…



그렇게 약간은 포기한 나에게 다시 그림 의뢰가 들어왔을 때 이건 기회라기 보단 가혹행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운(?) 좋게 출판사 한 곳이 나를 찾아준 게 다였고 여기가 아니면 불러 줄 곳도 딱히 없었기에…


출판사는 독립운동, 임시정부와 관계된 6컷의 그림을 부탁했다.

기한은 1주일… 다음 주 화요일…

백수처럼 놀고먹는다면 6컷이야 여유롭게 2,3일이면 끝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하루평균 오고 가고 14시간을 매장에 털어 넣으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0시간, 

잠자는 수면까지 고려하면 평균 4시간, 많게는 5시간의 작업 시간이 있는 셈이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이상론…


난 그리겠다고 말했다.

말함과 동시에 마감타이머는 작동했다.

월요일 밤 그리고 다음날 대충 종이에 러프로 그려 이런 의도로 그리겠다 승낙을 받고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집에 오면 밤 11시.

간단히 라면을 끓여 먹곤 그림에만 집중했다.

피곤하다…

하지만 그 피곤함 속에 절박함과 즐거움이 교차되는 건 어떤 이유일까?

하지만 이런 즐거움과 반대로 진행은 상당히 더뎠다.

결국 6시간 잘 꺼라는 수면 계획은 4시간으로 조정해야만 했다.


4시간 취침 후 다시 매장에 나가 10시간 근무 …

귀가 후 라면 한 그릇과 그림…

하루가 지날수록 피로의 중첩은 상당했다..

내가 20대도 아니고 그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안구는 터질 듯했고 

어깨는 라인 하나를 그을 때마다 쑤셔댔다…


그렇게 해도 토요일까지 3컷밖에 못 그렸다.

결국 일요일은 가게 직원분께 양해를 구하고 2시간 일찍 퇴근했다.

그날은 제대로 먹고 새벽까지 하리라 맘먹었다.

다행히 월요일은 휴무라서 일요일 저녁부터 시작한 철야는 월요일 오후에 끝낼 수 있었다.


그렇게 6컷을 다 그리고 보니 뭔가 뿌듯했다.

하지만 그 뿌듯함의 뒤엔 또 이번이 마지막이겠지라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마구 뒤엉켰다…

그림을 그린다는 즐거움과 그 즐거움은 나 혼자만의 것이라는 것…

누구 하나 봐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죽 이어질 거라는 불안감…



하지만 이 순간만은 나를 인정하자.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즐겁게 그린 이 일주일이 너무나 흥이 났다.. 

물론 몸뚱이는 비명을 질러댔지만 말이다…


난 여전히 나의 글과 그림을 좋아한다…

그것이 비록 어둠의 한가운데서 행하는 의식 같은 것일지라도…


난 그렇게 조금씩 

또 조금씩 나를 만들어야겠다…



에필로그...

열심히 그린 건 좋았지만, 다음날 화요일 아침...

배경을 삭제해서 보내달라는 메일을 받았다.

분주한 화요일의 시작...

매장은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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