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9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는 습관처럼 출석부를 펼친다.
“1번, 2번….” 이름을 부르는 일은 단순히 누가 왔는지를 확인하는 행정 절차가 아니다.
나에게 그것은 매일 같은 시각에 시작되는 천체 관측 의식에 가깝다.
이름은 어제와 똑같은데, 대답하는 목소리와 나를 바라보는 표정은 매일 다르다.
어떤 날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팽창해 있는 붉은 거성 같은 눈,
어떤 날은 우주 먼지를 뒤집어쓴 채 희미하게 흐려진 눈,
어떤 날은 막 태어난 별처럼 생기가 번쩍이는 눈.
그날의 수업은 이런 눈빛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이들의 상태에 따라 나의 궤도 역시 미세하게 수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운이 꺾여 있는 날에는 농담을 섞어 공기를 띄우고, 지나치게 들뜬 날에는 낮은 목소리로 중력을 살짝 더한다.
교실이라는 우주는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똑같은 단원, 똑같은 내용을 가르쳐도 어제의 1반과 오늘의 3반은 전혀 다른 별자리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교사는 매일 같은 교과서를 들고 교실에 들어가면서도, 늘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이는 탐험가가 된다.
물론, 나의 관측과 예측이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교실은 변수가 춤추는 카오스의 공간이니까.
야심 차게 준비한 빛의 굴절 실험이 뜻대로 되지 않아 아이들의 실망 섞인 “에이~”가 교실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평소에 잘 일어나던 과산화수소 반응이 그날따라 고집스럽게 침묵할 때도 있다. 어느 날은 내가 던진 회심의 질문이 공중에서 힘없이 툭, 바닥으로 떨어질 때도 있다. 아이들의 무반응이라는 블랙홀에 조용히 빨려 들어가는 기분. 그럴 때면 나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오늘 수업은 힘들겠구나…”
그러면서도, 그리고 다음 날에도
나는 다시 칠판 앞에 선다.
실패한 실험은 원인을 찾아 다시 세팅하고, 빗나간 질문은 더 쉬운 언어로 다듬는다. 어제 어긋난 관계가 있다면 오늘은 눈빛으로 천천히 다시 이어 본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옛날 장영실이 하늘의 움직임을 끝없이 관측하고 기록하며 세종에게 달력을 바쳤듯이, 나 역시 아이들이라는 별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보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루, 이틀, 한 달, 그리고 한 학기. 겉으로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꾸준히 관측하다 보면 어느 순간 보인다.
무뚝뚝하던 행성이 아주 조금, 아주 느리게 궤도를 틀어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흐릿하던 별이 어느새 스스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하루가 또 지난다.
나는 오늘도 출석을 부른다.
이름 하나, 하나를 부르며
오늘 교실에는 어떤 새로운 별자리가 떴는지 확인한다.
나는 이 우주의 중심은 아니지만,
그 곁을 돌며 매일의 변화를 기록하는
충실한 관측자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