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개 수업의 실패는 내게 깊은 내상을 남겼다. 궤도를 이탈한 위성처럼 마음이 붕 떠 있었다.
교실 문을 여는 일이 버거웠고, 아이들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마다 마음이 한 박자씩 늦게 따라왔다.
내가 정말 교사 자격이 있는 걸까?
끝도 없는 자책이 꼬리를 물던 어느 날, 무심코 서랍을 뒤적이다가 낡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독서실 책상 앞에 붙여두었던 쪽지를 떼어 옮겨 적은 수첩이었다. ‘아이들의 눈빛을 잊지 말자. 열심히 하자. 나는 붙을 거니까.’ 투박한 글씨를 보는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명치끝을 찔렀다.
스물일곱의 나는 불안했지만 간절했다. 화려한 수업 기술보다 아이들과 눈 맞추는 순간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내가 교사가 되려 했던 건 멋진 PPT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작은 의미로 남고 싶어서였다. 낡은 종이에서 오래된 잉크 냄새가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냄새가 그날의 나를 다시 숨 쉬게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실패한 건 능력이 아니라 방향이었다는 것을.
나는 아이들을 보지 않고, 교실 뒤편의 심사위원들을 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빛 대신, 평가표의 칸들을 채우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궤도를 바꾸자.’ 나는 욕심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교실의 중심에 서서 모든 것을 비추는 태양이 되려던 마음을 내려놓았다. 대신, 아이들의 곁을 천천히 함께 도는 작은 별이 되기로 했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으니, 아이들이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주는 존재가 되자고.
그때부터 나의 수업은 교실 안에서 교과서를 넘기는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문제집을 덮고, 아이들의 삶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기 시작했다.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가 있으면 가정방문을 갔다.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초인종을 누르던 그 순간의 심장 박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집 나간 동생 때문에 밤마다 잠을 설친다는 아이가 있으면, 퇴근길에 동네 PC방을 함께 뒤지고 다니기도 했다. “선생님, 진짜 오셨어요?” PC방 구석 자리에서 컵라면을 먹다 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던 녀석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컴퓨터 본체 팬 돌아가는 소음 속에서 컵라면을 나눠 먹으며, 게임 이야기와 집안 이야기를 뒤섞어 두서없이 풀어놓았다. 그날 나는 그 아이의 성적표 대신, 그 아이의 하루를 들여다보았다.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다 아이들과 마주치면, 주저앉아 어묵 꼬치를 함께 먹었다. “야, 국물 좀 더 마셔.”
“선생님이 사주시는 거예요?” 선생님과 학생이라기보다, 동네 형과 동생처럼 킬킬거리며 웃다가 헤어졌다. 붕어빵도 호떡도 참 많이 먹었다. 그때에는.
비슷한 시기에 아이들 곁으로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교실 바깥에서도 함께 뛰기 시작했다. 5월에서 9월, 저녁 바람이 남아 있던 날이면 야간자율학습 1교시 전 운동장에 나가 아이들과 축구를 했다. “선생님도 하세요?”
“야, 패스!” 공을 차는 동안만큼은 성적도 생활기록부도 잠시 잊고, 우리는 같은 팀의 동료였다. 숨이 가빠오를 때쯤, 아이들의 얼굴에 번지던 웃음과 땀 냄새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위로를 받았다. 그 경쾌한 발걸음과 심장 박동이, 무너져 가던 나의 리듬을 조금씩 되살려 주고 있었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이 시간들이 조금씩 쌓이자, 신기하게도 교실 공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늘 엎드려 있던 아이가 더 이상 내 눈을 피하지 않았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는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내가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만큼, 그들도 나를 자신의 궤도 안으로 받아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야 알았다. 나에게 맞는 옷은 따로 있었다는 걸. 나는 태양처럼 모두를 강렬한 빛으로 비추는 사람은 아닐지 모른다. 대신, 명왕성처럼 조금 멀리, 조금 느리게 돌면서도 자신만의 궤도를 지킬 수 있는 사람에 가깝다는 것을. 친밀감이 만들어낸 그 궤도는 점점 나의 것이 되어 갔다.
나만의 속도, 나만의 거리, 나만의 방법으로. 화려한 공개 수업에서는 낙제점을 받았을지 몰라도, 아이들과 어묵 국물을 나눠 마시는 이 궤도 위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돌아보면, 나를 다시 이 자리에 붙들어둔 건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었다. PC방 컵라면 냄새, 마트 앞에서 스며들던 찬 바람, 그리고 나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흔들리는 눈빛. 그런 작은 중력들이었다.
나는 그 작은 중력들에 이끌려, 비로소 진짜 나의 궤도에 진입했다.
조금 느리지만, 절대 멈추지 않는 '명왕성의 공전'이 그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