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사고: “이 수업은 실패작입니다”

by 플루토쌤

불안은 예고 없이 현실이 되곤 한다. 교사가 된 첫해, 2012년 여름에서 가을로 나아가는 계절이었다. 아주 거대하고 날카로운 불안이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학교에는 ‘수업 공개의 날'이 있다. 외부 손님들이나 학부모님이 오시는 대표적인 외부 공개 행사이다. 수업 공개에 맞추어 컨설팅을 신청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저경력이었기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학교 관리자들의 요청? 압박? 요구? 등등 흐름에 밀려... 컨설팅 장학을 진행하기로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교사 개인 동의가 필요함, 요즘에는 많이 없어진 관습, ※대신 수업 나눔이 있다.) 신규 교사에게 수업 공개란 일종의 데뷔 무대이자, 심판대에 오르는 날이기도 했다. 나는 이날을 위해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융합과학’은 화학 전공자들에게 무척 까다로운 과목이었다. 화학 관련 단원은 고작 5% 남짓. 그래서 나만의 학습지를 만들고 화학 교과를 단계적으로 재구성하여 수업을 하곤 했다. 이 재구성의 근거를 만들고 컨설팅받고자 고심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는 아이들이 과학을 단순한 ‘공식’이 아니라 ‘삶’으로 느끼길 바랐다. 고민 끝에 화학의 꽃이라 불리는 ‘중화반응’을 주제로 잡았다. 단순히 산과 염기가 만나 물이 된다는 화학식을 넘어, 중화반응을 이용해 미리 염색된 종이에 꽃을 피우는 융합형 프로젝트 수업을 설계했다. 제목도 근사하게 붙였다.


‘가을날, 지시약 만들기’


그날부터 밤샘 작업이 시작됐다. 거름종이에 지시약을 바르고 말리고, 도면을 만들어 오리는 과정은 생각보다 고됐다. 오죽하면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동아리 아이들이 붙어 준비물을 도와줄 정도였다. 머릿속으로 실험 동선을 체크하고 아이들의 질문을 시뮬레이션하며 보낸 주말. 준비가 완벽해질수록 확신도 커졌다. 아니, 완벽해야만 했다. 나는 이 수업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꽤 괜찮은 교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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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종이 울렸다. 긴장된 마음으로 교탁에 섰다. 과학실 뒤편에는 ‘수업 전문가’라 불리는 장학사와 베테랑 선생님들이 팔짱을 낀 채 앉아 계셨다. 하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내 진심을 알아주었다. 평소보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참여했고, 용액이 닿을 때마다 색이 변하며 이 피어나자 여기저기서 “우와!”, “선생님, 진짜 예뻐요!”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떠난 뒤, 등줄기는 땀으로 흥건했지만 나는 속으로 외쳤다. ‘해냈다. 아이들이 즐거워했어. 그거면 된 거야.’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수업 후 협의회. 칭찬까진 아니더라도 따뜻한 격려 한마디는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돌아온 첫 문장은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선생님, 이건 교과서에 없는 내용이잖아요. 굳이 왜 이런 걸 했죠?”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이들이 과학 원리를 실제 생활과 연결해 보길 바랐고, 융합적 사고를…” 더듬거리며 꺼낸 말은 끝내 닿지 못하고 공중에서 흩어졌다. 피드백은 냉정했다. “수업 목표가 명확하지 않아요.” “입시와 수능을 생각하셔야죠.” “너무 산만합니다. 이벤트성 수업 같아요.”


그들의 기준에서 내 수업은 ‘교육과정을 벗어난 겉멋 든 시도’ 일뿐이었다. 밤새 고민했던 의도도, 아이들의 반짝이던 눈빛도, 그 모든 진심은 몇 마디 말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모두가 떠난 텅 빈 과학실에 혼자 한참을 서 있었다. 수업이 기술적으로 실패해서가 아니었다. 나의 진심이, 나의 언어가 누구에게도 가닿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였다. 마치 말이 통하지 않는 외계 행성에 홀로 불시착한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교탁 앞에 서는 일이 무서워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뒤로 “너는 틀렸어”, “왜 그렇게 해?”라는 환청이 따라다녔다. 나는 교실 우주의 중심이 되고 싶어 안간힘을 썼지만, 그날 내가 확인한 건 처참한 충돌 사고의 잔해뿐이었다. 태양은커녕, 궤도를 잃고 튕겨 나가는 이름 없는 파편 조각처럼, 나의 첫 번째 비행은 완벽한 추락으로 끝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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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안다. 그날 내 수업을 ‘실패작’이라 명명했던 이들은 뒤에 앉아있던 관찰자들이었지만, 그 수업을 ‘기억’으로 간직한 이들은 앞에 앉아있던 아이들이었다는 것을. 훗날 길에서 만난 제자가 “선생님, 그때 과학실에서 꽃 피웠던 거 아직도 기억나요”라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날의 파편들을 모아 다시 궤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쩌면 모든 위대한 비행은 추락의 공포를 견디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날의 충돌 사고는 나를 부순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궤도를 만들어가는 시작점이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