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년기: 개미를 관찰하던 아이, 안테나를 세우다

by 플루토쌤

내가 지금 이 궤도에 서 있는 이유를 찾으려면, 시계를 꽤 많이 되돌려야 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관찰'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친구들이 공을 차러 운동장으로 뛰어갈 때, 나는 운동장 구석 쭈그려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어느 비 오는 날에는 마당에 있는 오리들이 비를 맞는 모습이 신기해 우산도 쓰지 않고 옆에 같이 앉아 있기도 했고, 온 학교가 떠들썩한 체육대회 날에는 내 달리기 순서가 된 줄도 모르고 땅바닥을 기어가는 개미 행렬을 따라가다 선생님께 혼이 난 적도 있다. 보도블록 사이 틈을 비집고 올라온 민들레가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해, 그걸 뿌리째 뽑아 옮겨 심으려다 손톱 밑에서 피가 났던 기억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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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나에게 자연은 끊임없이 어떤 신호를 보내오는 '가까운 우주'였고, 나는 그 미세한 신호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작은 안테나였다. 세상은 온통 질문투성이였다. 왜 비가 오면 지렁이가 밖으로 나올까? 민들레는 왜 하필 딱딱한 보도블록 틈을 골랐을까? 개미들은 어떻게 길을 잃지 않을까?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 시절 내 꿈은 막연하게나마 '과학자'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을 해석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곤충학자든, 천문학자든, 자연의 암호를 해독해 나만의 언어로 번역해 내는 사람.


솔직히 말하자면, 그 명단에 '교사'는 없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보다는, 내 안에 질문을 품고 끙끙거리며 오래 붙들고 있는 편이 더 좋았다. 정제되지 않은 생각을 바로 뱉어내기보다, 내면의 실험실에서 수없이 다듬고 여과한 뒤에야 겨우 입 밖으로 한 마디를 꺼내는 성격이었다. 그러니 말재주가 좋아야 하고 아이들을 휘어잡아야 하는 활달한 성격의 선생님은 나와는 거리가 먼 직업이라 생각했다. 그런 내가 사범대에 진학한 건, 어쩌면 학창 시절 만난 좋은 선생님들의 중력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도 물음표는 계속되었다.


'내가 과연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군대에 다녀온 뒤에도 진로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았다. 전공인 화학이나 교육학 서적을 파고드는 것보다 카메라를 들고 캠퍼스를 누비는 사진 동아리 활동이 더 재미있었다. 뷰파인더 속 세상은 내가 조절하는 대로 초점이 맞았지만, 내 미래는 도무지 초점이 잡히지 않고 흐릿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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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동아리 선배의 권유로 우연히 교육 봉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봉사경험, 시간당 알바비 등 가벼운 이유였다. 아이들을 엄청 예뻐하거나, 가르치는 게 더 좋아서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낮에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낸 장면들이 자꾸만 필름처럼 돌아갔다. 서툰 내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던 표정들, 쉬는 시간에 내 팔을 잡아끌며 묻던 엉뚱한 질문들. 그리고 나를 향해 "선생님!" 하고 부르던 목소리. 그 호칭은 낯설고 어색했지만, 동시에 가슴 한구석을 찌릿하게 만드는 설명하기 힘든 온기가 있었다. 내가 관찰만 하던 수신자에서,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는 송신자가 된 첫 순간이었다.


물론, 그 따뜻함만으로 모든 불안이 해소된 건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진짜 교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머리에 이고 다녔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이 있는 그곳에도,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우주'가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 작은 중력들이 모여 나를 결국 이 궤도 위에 올려놓게 될 줄은.




개미를 따라가던 아이가, 이제는 아이들의 마음을 따라가는 여정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