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보내는 신호는 대부분 소실된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중간에 장애물에 부딪혀서,
혹은 상대방의 수신기가 꺼져 있어서.
교실이라는 우주도 비슷하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해 발신한 주파수가 아이들에게 닿지 않고 허공으로 흩어지는 날이 더 많다.
그래서 교사는 늘 고독한 발신자다.
“내 목소리 들리니?”라고 묻지만, 돌아오는 건 정적일 때가 많다.
그날 수업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활동을 마치고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썰물처럼 매점과 복도로 흩어졌다.
나는 칠판을 닦으며 다음 차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평소 말수가 적던 한 아이가 교탁 앞으로 다가왔다.
질문이 있나 싶어 고개를 돌렸는데, 아이가 툭, 하고 말했다.
“선생님, 오늘 수업 좋았어요.”
딱 그 한마디였다.
더 보태지도 덜하지도 않은, 아주 담백한 문장.
그 말은 과장된 칭찬이 아니었지만,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건너온 작은 신호 같았다.
아이의 뒷모습이 문 밖으로 사라지고,
교탁 위에 묻어 있던 분필 가루가 가볍게 날아올랐다.
그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마치 우주를 떠돌던 작은 소행성 하나가
나의 궤도에 충돌 없이, 아주 부드럽게 착륙한 것 같았다.
속에서 알 수 없는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외쳤다.
“이제 우리 같이 가는 거야, 마이 프렌드? 오, 아멘.”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마도 나는 그동안 그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신호가 닿기를.
언젠가 너희의 신호가 되돌아오기를.
그 한마디는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교신 성공(Docking)’의 신호였다.
“당신의 주파수를 수신했습니다. 당신의 궤도에 진입합니다.”
그날 내가 수업을 특별히 더 잘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무뚝뚝한 표정 뒤에 숨어 있던 마음이
아주 조금, 나를 향해 열렸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가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래, 우리는 연결되어 있어.
너의 중력이 나를 당기고, 나의 중력이 너를 잡고 있단다.’
지칠 때면 그날의 “좋았어요”를 다시 꺼내 읽는다.
그 하나의 마음이 연료가 되어,
오늘도 나는 멈추지 않고 명왕성의 느린 궤도를 돈다.
내 옆에 있거나 혹은 천천히 다가올
나의 작은 프렌드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