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라는 위성: 갈등 없는 협업은 없다

by 플루토쌤

한때는 교사가 '우리 반'이라는 교실만 잘 지키면 되는 존재인 줄 알았다.




내 수업, 내 아이들, 내 왕국.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이 학교라는 우주는 나 혼자 돌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교사는 절대 혼자서 공전하지 못한다.

내 곁에는 동료 교사들이라는 수많은 행성과 위성들이 존재했다.

우리는 서로의 중력권 안에 묶여 때로는 나란히, 때로는 위태롭게 돌고 있었다.

그 관계가 항상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건 아니었다.




특히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혼란스러웠던 시기, 우리의 궤도는 자주 엉켰다.

학년별 등교 일정을 짜는 회의실은 흡사 전쟁터 같았다.

각자의 학년 사정, 우선순위, 철학이 다르다 보니,

아이들을 위한다는 같은 목표를 두고도 격렬하게 부딪쳤다.


"우리 학년은 그게 힘들어요."

"왜 우리만 양보해야 합니까?"


말이 길어질수록 마음의 거리는 멀어졌고,

회의실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가장 아팠던 기억은 내가 준비한 방과 후 수업 활동을 두고

한 동료 선생님과 크게 충돌했던 날이다.


나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준비한 활동이었는데,

그 선생님은 내 면전에서 차갑게 쏘아붙였다.


"선생님, 그건 쓸데없는 시간 낭비 아닌가요?"

그 말 한마디가 날카로운 유성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나름의 교육적 소신으로 준비한 일이 ‘시간 낭비’로 불리는 순간,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었지만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따로 찾아가 조심스럽게 내 의도를 설명했지만, 한번 세워진 마음의 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다.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텅 빈 회의실 화이트보드에 혼자 메모를 남겨두고 나오던 날의 쓸쓸함을 기억한다. 하지만,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 아픈 충돌의 시간들이 나를 깎아내리기만 한 건 아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 자유학년제 업무를 맡고, 과학 업무도 하고

STEAM 융합형 자료를 개발하고, 공주대학교 정책 연구에 참여하면서 점차 나름의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그 일들은 나를 단순히 바쁘게 만든 게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의 좌표를 바꾸어 놓았다.


그 과정에서 정책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현장의 언어로 번역되어

교실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조율과 타협이 필요한지 몸소 체험했다.


여러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배운 진리가 하나 있다.


갈등 없는 협업은 없다.


우리는 모두 다른 속도, 다른 주기로 공전하는 별들이다.

서로의 궤도가 다르니 부딪치는 건 당연하다.

중요한 건 충돌 그 자체가 아니라, 충돌 이후의 자세였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 선생님에게는 효율성이 중요했고, 나에게는 과정이 중요했을 뿐이다.


서로가 같은 속도로 돌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공전 주기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먼저였다. 그때부터 나는 말하기보다 듣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내 궤도만 고집하기보다, 옆에 있는 동료의 궤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와 함께 돌고 있다.

여전히 말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고,

속도가 맞지 않아 삐거덕거릴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불편한 중력을 견디며 맞춰가는 과정 자체가

'교육'이라는 거대한 우주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을.

나와 이어진 모든 위성들에게, 때로는 멀어지고

때로는 가까워지며 함께 돌아주어 고맙다는 신호를 보낸다.


우리는 부딪치며 더 단단해지고 있으니까.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