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day] 콘라트 로렌츠 (1903–1989)
태어나서 처음 본 것을 엄마로 믿는 ‘각인’의 발견
[Today's Scientist] 콘라트 로렌츠는 오스트리아의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병원 대신 숲 속에서 동물들과 뒹구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는 집 전체를 동물원으로 만들고 야생 동물과 함께 살며 그들의 행동을 연구했습니다. 특히 갓 태어난 새끼 거위가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고 따라다니는 ‘각인(Imprinting)’ 현상을 발견해, 비교동물행동학의 창시자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교과과정 연계]
중학교 1학년 [생물의 다양성] 동물의 본능과 학습
고등학교 생명과학 [동물의 행동] 선천적 행동(본능)과 후천적 행동(각인)
어느 날 로렌츠의 실험실에서 회색기러기 알이 부화했습니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 기러기 ‘마르티나’가 처음 본 것은 엄마 기러기가 아니라, 로렌츠 박사님이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르티나는 로렌츠를 엄마라고 철석같이 믿고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진짜 엄마 기러기를 데려다줘도 본척만척하고, 로렌츠가 화장실에 가면 문 앞에서 꽥꽥거리며 기다렸죠. 그는 이 현상을 ‘각인(Imprinting)’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음속에 깊이 도장을 찍는다”는 뜻입니다.
그는 단순히 관찰만 한 게 아니라, 진짜 엄마가 되어주기로 했습니다. 새끼 오리들이 물에 들어가는 걸 무서워하자, 로렌츠 박사는 옷을 입은 채로 차가운 호수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리 말을 흉내 내며 "꽉! 꽉! (이리 와!)"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제야 안심한 오리 떼가 그를 따라 물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지나가던 이웃 사람들은 물속에서 오리 흉내를 내며 헤엄치는 수염 난 교수를 보고 미친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전설 속 솔로몬 왕은 반지를 끼고 동물과 대화했다고 합니다. 로렌츠는 "마법 반지는 필요 없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관찰력만 있으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동물들이 기계처럼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감정을 가지고 소통한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책 《솔로몬의 반지》에는 까마귀가 남편의 귀에 귓속말을 하고, 개가 질투를 하는 등 동물들의 생생한 사생활이 유쾌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는 동물을 '실험 도구'가 아니라 '함께 사는 동거인'으로 대우한 진정한 동물 애호가였습니다.
결정적 시기: 때를 놓치면 배울 수 없다
각인은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태어난 직후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고 부르는 아주 짧은 시간(보통 13~16시간) 안에만 일어납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새끼는 어미를 봐도 따르지 않고, 오히려 도망치게 됩니다. 이 개념은 나중에 인간의 언어 교육이나 정서 발달에도 "배워야 할 결정적인 때가 있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주었습니다.
[그림 1: 로렌츠와 오리들] 로렌츠 박사가 뒷짐을 지고 걸어가자, 십여 마리의 새끼 오리들이 한 줄로 맞춰 그를 뒤따라가는 유명한 흑백 사진.
[그림 2: 각인 실험] 부화기에서 갓 태어난 병아리 앞에 장난감 기차를 움직여주면, 병아리가 기차를 엄마로 알고 따라가는 실험 모식도.
노벨상의 기적: 1973년, 그는 꿀벌 박사 카를 폰 프리슈(내일 나옵니다!), 친구 틴버겐과 함께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보통 노벨 생리의학상은 의사나 실험실 과학자가 받는데, 장화 신고 들판을 뛰어다니는 동물행동학자가 받은 건 이례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악당 기러기: 그는 동물을 무조건 착하게만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기러기 사회에도 왕따, 불륜, 패싸움이 있다는 것을 가감 없이 기록하며 "동물 사회도 인간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껄껄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