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재운 Jul 04. 2024

초고를 넘겼습니다

지난해 말, 브런치를 통해 한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의를 받고, 올 초 계약을 맺은 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청소년 대상 학술·교양서적이라 내가 쓰는 게 맞는 건가 고민을 했지만, 모든 틀이 다 갖춰져 있는 기획 출판이라 글만 쓰면 된다는 장점이 나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논문은 여러 편 써봤지만, 책은 써본 적이 없는 초보 작가를 배려해 주시는 출판사에 끌린 것도 컸다.


그렇게 올 2월부터 시작한 원고 작업이 어제 마무리되어, 드디어 초고를 넘겼다!




# 쓰면서 더 배우다


인공지능을 전공했다고는 하지만, 엄밀한 전공 분야는 머신러닝이다. 분류나 탐지 쪽에 집중해서 연구를 수행 중이기에 인공지능의 다른 분야들, 딥러닝이나 이미지 인식, 자연어 처리 등에 있어서는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번에 쓰게 된 책은 인공지능의 모든 것을 쉽고 재밌게 요약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려운 주제, 가령 예를 들어 딥러닝 최신 알고리즘인 '트랜스포머'에 대해, 배경지식이 없는 청소년이 쉽고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글을 써야 했다. 게다가 한 주제 당 두 페이지의 분량 밖에 쓸 수가 없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내용을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한 후, 쉽게 풀어쓰는 작업이 요구되었다.


이렇게 100가지 주제에 대해 정리를 하다 보니, 나도 몰랐던 인공지능 분야의 여러 면을 살펴볼 수 있었고, 자세히 공부하지 않았던 여러 알고리즘들도 물고 뜯고 맛볼 수 있었다. 


남들에게 지식을 알려주기 위한 책을 쓰며, 내가 더 배우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 중간중간 찾아오는 슬럼프


너무 글 쓰는 걸 쉽게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나의 문장력에 몇 번이나 좌절했으며, 내가 쓴 글을 다시 보며 쥐구멍에 숨고 싶은 마음이 든 적도 여러 번이다. 어쩔 때는 내가 쓴 글에 감탄도 했다가, 다시 돌아와서 글을 보고 이게 뭐야라는 심정이 들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내 글 구려병'에 걸려 여러 번 원고를 갈아엎기도 하다가, 이렇게 해서는 답이 없겠다 싶어 그냥 쭉 쓰기로 했다. 그렇게 휙휙 글을 쓰다 찾아온 또 하나의 문제점.


갈 길이 너무 멀다는 것!


총 100가지 주제에 대해 짤막하게 글을 써야 해서 처음에는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00이라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열심히 썼는데도 아직 20~30번째 토픽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며, 언제 100개 다 쓰냐는 생각에 눈앞이 막막해지기도 여러 번. 결국 앞에 붙은 넘버링을 다 떼고 차근차근 써나가자 마음먹고 달리기 시작했다.



# 바빠진 본업


교수란 직업은 직장인 대비 시간을 내기 좋다. 일반적으로는. 그래서 글쓰기라는 부캐를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업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교수는 자영업자와 같아서 한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도 있지만, 24시간 일할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교수님들은 24/7 연구만 하신다.


24년 상반기에 SCIE 저널에 1 저자로 논문을 한 편 출간했다. 이를 위해 수많은 리비전 작업을 해야만 했다. 학기 내내 수업을 하고 채점을 한 것은 당연한 업무이고. 새로운 학과 신설을 위한 회의에도 여러 번 불려 다녔다. 행정업무는 덤. 그리고 연구실 운영을 위한 과제 계획서를 여러 편 썼고, 그 결과 한국연구재단(NRF) 연구 과제에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어디까지나 기본으로 여겨지던 연구재단 과제 선정이 이제 '영예' 수준으로 올라갔다. 선정률이 10%대라는 말도 안 되는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그러던 사이, 출간 계약서 상 명기된 데드라인인 6월 말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필 6월은 기말고사 기간이고 학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라 가장 바쁜 시기이다. 어쩌겠는가. 계약은 지켜야지. 주경야독, 아니 낮에는 채점과 성적처리를, 밤에는 글을 쓰며 데드라인에 맞춰 겨우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초고를 넘겼다.




이제 책을 완성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초고를 넘겼다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하다. 지난 4개월 매일 들여다보던 원고가 내 품을 떠나 시원섭섭하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위의 일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정리해 보니 다시 해볼 만하다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새로운 책 구상에 들어갔다.


우선, 청소년 대상으로 정리한 인공지능 내용을 성인 대상 교양서적으로 옮겨볼까 생각 중이다. 이건 현재 출판사와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나,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롤모델은 @배대웅 작가님의 베스트셀러 <최소한의 과학공부>이다.


그리고 이번 원고를 작성하며, 인공지능과 철학, 인공지능과 역사, 인공지능과 대중문화 등 뻗어나갈 소재 거리를 많이 발굴했다. 기존에 브런치에 썼던 글들과 엮으면 여러 편의 책이 나오지 않을까 혼자 김칫국을 먹고 있다. 이건 차근차근 정리해서 투고를 해봐야겠다.


주변 지인들은 이야기한다. 돈도 안 되고, 시간 잡아먹는 글 쓰기 왜 하냐고. 그 시간에 연구나 하라는 게 그들 생각이다. 하지만 글쓰기라는 중독에 빠져버렸기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잠시 숨 돌리고 다시 시작해 보자!

작가의 이전글 추리물에 빠지면 섭섭할 사이비 종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