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상상하는 스파이는 영화 속 모습처럼 멋있다. <007>이나 <미션임파서블>의 주인공처럼 비밀스럽게 잠입하고, 도청하고, 몰래 기밀을 훔치며, 이중간첩으로 배신을 일삼는 모습이 우리가 아는 스파이다. 그러나 최근 정보전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제 사이버 공간에서 전투가 현실이 되었고, 정보전 역시 이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해 사살한 작전, '넵튠 스피어 작전'은 오바마 정권 시절인 2011년 벌어졌다. 10년 가까이 추적해 온 빈 라덴의 흔적을 발견한 미국은 특수 부대 네이비 실을 투입하여 그의 은신처를 급습한다. 당시 그의 은신처는 파키스탄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빈 라덴 사살 순간에도 파키스탄 군부는 미군이 자국 영토에서 작전을 벌인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근처에 거주하던 IT 전문가 소하이브 아타르는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으며, 후속 상황을 트위터로 생중계한다. 이후, 오바마가 빈라덴 사살을 공식으로 발표하자, 아타르는 "오우, 나는 그것이 빈 라덴에 대한 공격인 줄 모르고 실시간 중계를 하게 됐군요"라고 트윗을 올린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도 있었다. 당시, 러시아 군인이 찍어 인터넷에 올린 사진에 타임스탬프가 남아 있어 그들의 위치가 노출된 바 있다. 이처럼 온라인상에 공개된 접근 가능한 정보는 현대 정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퍼트리는 소셜 미디어의 역할 역시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상 공개 정보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능력은 국가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전에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우리의 사고를 대신한다는 글을 쓴 바 있다. (상세 내용은 아래 링크 참고) 단순 사고만을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판단까지 인공지능이 해주는 세상. 당장 우리의 스마트폰 생활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인공지능 추천 알고리즘이 알려주는 데로 영상을 보고, 쇼츠를 즐기고, 쇼핑을 하는 우리의 생활은 이미 인공지능이 조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인공지능보다 인간이다.
알고리즘 뒤에서 우리를 조종하고자 하는 인간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최근 몇 년간, 가상 세계와 현실에서 미국인들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미국인을 사칭하는 가짜 계정이 생성되고 있다. 이들은 선동적인 견해를 퍼뜨리고, 정치적 불화를 일으키며, 미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현상이 가장 뚜렷하게 벌어진 시기는 2016년 미국 대선이다. 러시아가 만든 혼란을 조장하는 콘텐츠는 약 1억 2,6000만명 이상의 미국인에게 도달했으며, 이는 미국 인구의 무려 3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이 활동의 주 목적은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 정보기관은 푸틴의 목표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트럼프의 승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당시 CIA 차장이었던 데이티드 코언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들은 트럼프가 이기고 힐러리가 지기를 원했지만, 다른 무엇보다 우리를 엿 먹이고 싶어했다"고 언급한다.
미 정보기관들은 러시아의 선거 개입 활동의 많은 부분을 신속하게 감지하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오바마에게 경고했다. 선거 한 달 전, 존슨 국토안보장관과 클래퍼 국가정보장은 러시아의 선거 개입에 대해 드물게 공개 경고에까지 나선다. 하지만, 여태 경험한 적 없던 소셜 미디어를 통한 작전에 미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오바마 대통령은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이지만, 대체적으로 자국민들의 평가가 좋은 대통령에 속한다. 하지만, 재선에 성공하고도, 다음 정권 창출에는 실패하고 만다. 오바마는 인터넷이, 소셜 미디어가 만든 대통령이다. 경선 경쟁 상대였던 힐러리를 이기게 된 데에는 인터넷에 빠삭한 자원봉사자들이 마이스페이스와 밋업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맹활약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소셜 미디어로 인해 트럼프에게 정권을 내주게 된다.
이처럼 알고리즘이라는 탈을 쓴 소셜 미디어 뒤에서 민심을 조종하고자 한 세력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몇 주 동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대한 페이크 영상이 소셜 미디어에 퍼졌다. 크렘린이 출처로 보이는 허위 계정에서는 바이든이 기저귀를 입고 휠체어를 타고 밀려나는 패러디 뮤직 비디오를 마구 올리고 있다. 그리고 이는 알고리즘이라는 날개를 달고 미국 유권자들에게 확산된다.
여기서 한 가지.
과연 이러한 일이 미국을 겨냥해서만 벌어지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온라인 세상 역시 상당히 어지럽다. 우리의 인터넷은 편견과 혐오, 상대 진영에 대한 악의에 찬 비난으로 가득하다. 정치 문제 뿐만 아니라, 세대, 성별, 직업, 지역에 따라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순전히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갈등이 맞는지 한번쯤 의심해볼만 하다. 혹시, 우리의 추천 알고리즘 뒤에서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키기 위해 불에 기름을 끼얹는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