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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Jul 15. 2024

데이터가 알려주는 역대 최고의 장군은?

어린 시절 한 번쯤 그런 상상 안 해보는가?


로마의 카이사르와 위나라의 조조가 대결하면 누가 이길지. 몽고의 칭기즈칸과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맞붙으면 누가 승리할지.


시대와 배경이 다른 영웅들의 활약상을 보면, 인간은 자연스레 그들이 동시대에 맞붙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뭐든 서열화를 시키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니 말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가상의 대결이 머릿속에서, 술자리에서 논쟁으로, 인터넷상의 키보드 배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 시대가 무슨 시대인가? 인공지능 시대니 만큼 데이터를 통해 장군들의 능력을 측정하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서양의 글쓰기 플랫폼 중 하나인 미디엄(Medium) 유저이자 데이터 과학자인 에단 아쉬트(Ethan Arsht)는 위키피디어 상에 있는 동서고금의 전쟁 데이터를 수집한 후, 장군들의 능력을 평가하려는 시도를 한다. 목표는 모든 장군들의 순위를 측정하는 시스템 개발! 관련 글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 가능하며(제목과 썸네일이 스포일), 여기에서는 그의 글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정리하고, 사견을 추가해 보았다.






장군들의 전쟁 기여도를 측정하기 위해, 해당 연구에서는 야구의 WAR(Wins Above Replacement) 시스템을 차용하였다. WAR은 특정 선수가 팀에 기여한 승수를 추정하는 데 사용된다. 이는 선수의 기여도를 평균적인 선수와 비교하여 산출한다. 예를 들어, A라는 선수가 한 시즌에 5 WAR을 기록했다면, 그는 평균적인 선수가 출전했을 때보다 팀에 5승을 더 가져다주었다 볼 수 있다.


프로야구단 프런트의 삶을 다룬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WAR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극 중 주인공인 백승수(남궁민 扮)는 투수 강두기와 야수 임동규 트레이드를 추진하며, WAR로 봤을 때, 강두기가 더 우수한 선수임을 어필한다. 투수와 야수라는 서로 다른 포지션의 선수를 비교하는 데 WAR은 직접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프런트뿐만 아니라 야구팬들 까지 선수들 간 비교를 위해 WAR을 매일 찾아본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한 WAR


WAR의 또 다른 장점은 시대가 다른 선수 비교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야구를 다루는 통계 사이트들마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fWAR의 누적을 기준으로 MLB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는 베이브 루스이다. 그 뒤를 배리 본즈, 윌리 메이스가 잇는다. KBO 기준으로 누적 WAR이 가장 높은 선수는 선동열이며, 그 뒤를 최정, 양준혁, 이승엽이 따르고 있다. 누적의 최정이 양준혁과 이승엽보다 앞서 있다는 게 하나 주목해 볼 점이다.


야구의 WAR을 장군의 기여도 측정에 도입하기 위해, 가장 중요시해야 할 점은 평균적인 장군의 성과를 추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 장군이 평균적인 장군보다 얼마나 뛰어난지 평가하게 된다. 이를 통해, 전쟁에서 장군의 WAR 측정도 가능할 수 있다.


이 작업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셋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쉬트는 위키피디아의 전투 목록을 참고하였다. 여기에서 3,580개의 전투와 6,619명의 장군 데이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의 데이터 구축 과정을 보면, 전투원들의 병력을 보병, 기병, 포병, 공군, 해군으로 나누었고, 수적 우위 또는 열세를 가중치로 계산하였다. 또한, 장비 규모의 우세와 열세 역시 지휘관의 역량을 파악하는 데 중요 요소가 된다.


각 전투에서의 성과를 WAR로 측정하는 과정은 간단한 예시로 알아보자.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보로디노 전투에서 승리로 0.49 WAR을 획득한다. 프랑스 군대가 러시아 군대보다 약간 많았기에, 나폴레옹 대신 다른 장군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51%의 승리 확률을 가지게 된다. 나폴레옹의 승전은 1승과 같지만, 평균의 다른 지휘관이 승리할 확률을 차감하게 된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0.49의 승리 대체 점수를 얻게 된다.


(좌) 위키에 있는 전쟁 데이터 중 하나 / (우) 개별 전투에서 WAR을 측정하는 방법




역대 최고의 장군은? 거품이 가득한 장군은?


모든 장군들 중 나폴레옹은 16.679의 WAR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다. 총 43번의 전투에서 38번 승리하고 5번 패배한 나폴레옹. 아래의 장군들 WAR 분포도를 보면 나폴레옹이 얼마나 아웃라이어(outlier)인지 알 수 있다. 나폴레옹이라는 아웃라이어를 제외하면, 장군들의 WAR은 대체로 정규 분포를 따른다. 이는 나폴레옹의 성공이 지휘 능력에 기인한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나폴레옹의 총 WAR은 데이터셋에 포함된 장군들의 WAR 표준편차의 23배 이상 높았다.


나폴레옹의 뒤에는 한참 떨어진 곳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있다. 로마 제국의 기틀을 다진 그는 나폴레옹만 없었다면 전 세계 최고의 장군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위에는 나폴레옹이 있어, 아쉽게도 2위에 그치게 된다. 


장군들의 WAR 누적 분포를 통해 알 수 있는 보나의 위엄


그렇다면 명장으로 알려진 장군 중, WAR이 낮은 장군은 누가 있을까?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군의 지휘관인 로버트 E. 리는 -1.89라는 WAR을 기록하며, 당당히 하위권에 자리 잡고 있다. 아직도 많은 이의 존경을 받는 리 장군의 명성과 마이너스라는 WAR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서사라는 부분을 빼고, 데이터만 보자면 평균적인 장군이 리 대신 남부 연합군을 이끌었다면 더 많은 승리를 거두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제로 리 장군의 전술적 역량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다. 게티즈버그 전투 마지막날의 '피켓의 돌격"과 같은 그의 실수는 아직도 비판을 받고 있다. 반대로, 그와 상대했던 북부의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은 한니발의 뒤를 이어 누적 WAR 기준 7위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의 WAR은 무려 5가 넘는다. 이런 활약을 대중들에게 인정받아 그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랜트(좌)와 리(우)가 악수하는 모습





WAR로 측정한 장군들 순위의 문제점


앞서 살펴본 것처럼 WAR을 기준으로 장군들의 전술적 역량을 평가했을 때, 1위는 나폴레옹, 2위는 카이사르이다. 3위는 영국의 육군 원수이자 나폴레옹 전쟁을 끝낸 그의 최대의 호적수 아서 웰즐리이다. 그렇다면 4위는 누구일까? 한니발? 앞서 언급한 것처럼 6위이다. 알렉산더? 누적이 부족해서 10위이다. 4위는 바로 일본 전국시대의 명장 다케다 신겐이다. 


카이의 호랑이라고도 불리는 다케다 신겐은 일본 전국시대를 주름잡은 명장이다. 우에스기 겐신과의 라이벌로도 유명하며, 풍림화산으로도 상징되는 그의 무용으로 많은 인기를 누리는 무장이다. 훗날 일본을 '사실상' 제패하는 오다 노부나가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놓기도 하였지만, 마지막 일격을 앞두고 갑작스레 병사하며 천하통일의 꿈은 무너진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었으면, 일본을 통일한 자는 다케다 신겐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순위가 4위인 건 이상하지 않은가? 이는 WAR 방식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라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WAR은 누적 방식이다. 일본 전국시대는 전투가 일상다반사였다. 매일 전장에 나선 전국시대 무장들은 매 전투마다 WAR을 누적하게 된다. 많은 전투를 승리를 이끈 다케다 신겐의 WAR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오다 노부나가의 WAR 순위이다. 오다 노부나가 역시 전국시대 무장이기에, 많은 전투에서 WAR을 축적했고 알렉산더 다음인 11위에 위치하게 된다. 


이렇듯 누적의 힘이 강한 WAR 방식의 장군들 줄 세우기는 현대전의 장군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역사학자 테리 브라이튼이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위대한 장군 중 한 명"이라고 묘사한 미국의 장군 조지 S. 패튼은 겨우 0.9 WAR을 기록한다. 현대 장군들이 WAR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개별 장군들이 많은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전쟁 방식의 변화 때문일 수 있다. 


그럼에도 현대전 장수들 중 높은 순위를 기록한 장군들이 있다. 바로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이다. 이스라엘의 군 지도자인 모세 다얀은 2.1 WAR을 기록하며 전체 60위에 오른다. 20세기 이전 장군들에 비교하면 소박하지만, 현대전 장군들 중에는 압도적이다. 이는 6일 전쟁으로도 불리는 3차 중동전쟁에서의 맹활약이 있어 가능했다. 전격전과 기동전의 대가인 패튼과 다얀. 패튼은 미군 내 많은 장성들이 있어 일부 전투에만 참여했지만, 다얀은 4차례의 중동전쟁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녔기에 WAR 측면에서는 순위가 엇갈리게 된다.


패튼(좌)과 다얀(우)


조금의 찝찝함은 있지만 많은 이들의 로망이었던 장군들 간 줄 세우기 작업을 살펴봤다. WAR 방식을 전쟁터의 장수에게 적용해 보는 것은 시도만으로도 흥미롭기 그지없었고, 많은 토론과 비판이 이어졌다. 누적 방식이기에, 알렉산더 대왕의 순위가 처지게 되었고, 일부 전장에서 다수 전투에 참여한 장군들의 순위가 올라가는 문제도 발생하게 되었다. 위키에 정리가 잘 안 되어 있다는 이유로 몽골군 장수들도 대거 누락되고 만다.


데이터로 줄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 세계 네티즌들은 무슨 장군이 더 뛰어난지 싸우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일단 나폴레옹은 예외로 제쳐두고 논해야 한다는 것을. 




본 글의 기반이 된 연구는 인공지능이라기보다는 통계 및 데이터 분석에 가깝습니다. 다만, 글의 분류상 인공지능 매거진에 포스팅되었다는 점 말씀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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