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랜스포머 ONE>
영화 역사상 CG 임팩트를 가장 강하게 준 작품으로는 <쥬라기 공원>을 먼저 꼽을 수 있다. 이 영화 개봉 당시에는 아직 영화를 볼 나이가 아니어서 나중에 챙겨보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공룡의 등장씬은 잊을 수가 없다. 책에서만 봤던 브라키오사우르스의 등장씬은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명장면이다.
이후, CG는 빠르게 발전하며, 영화의 주역으로 활약한다. <매트릭스>에서 우리는 CG 퀄리티의 혁신을 다시 한번 확인했으며, <아바타>는 3D CG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버린다. 하지만 이들 영화보다 주연의 CG 등장씬 하나만큼은 아직도 회자되는 작품이 있다. 바로.
영화 <트랜스포머>의 주역, 옵티머스 프라임의 등장씬이다. 당시에도 이미 CG의 발전으로 온갖 것들이 구현되었지만, 거대로봇이 변신까지 하며 등장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전 세계에 충격을 준다. 특히, 남자아이들 혹은 로봇에 로망을 가진 덕후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이후 수많은 로봇 영화들이 나왔지만, 아직도 트랜스포머 1편이 보인 기술적 혁신은 고평가를 받을 정도이다.
물론 트랜스포머 영화 시리즈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1편과 2편 정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엄청난 흥행을 했으며, 트랜스포머 2편이었던, 패자의 역습은 시사회를 신청해서 보러 갈 정도로 개인적으로도 애정하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시리즈를 더해갈수록 스토리는 산으로 가고, 혁신적으로 보였던 CG 역시 익숙해지자 인기는 줄어들고 비판은 커져갔다. 리부트를 했음에도 과거의 명성을 다시 찾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러던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새로운 작품이 등장했다. 바로 <트랜스포머 ONE>으로, 최근에 개봉하여 지금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또한,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오랜만에 시리즈 중 호평을 받는 작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영화는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로봇들의 원래 고향인 사이버트론 행성의 초기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생생히 보여준다. 또한,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프리퀄로 알려져 있었으며, 시리즈의 주인공과 메인 빌런인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의 탄생을 다루고 있다. (당초 트랜스포머의 프리퀄로 알려졌지만, 시리즈가 리부트를 거듭하며 현재는 별개의 세계관을 다룬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팬들은 프리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지난 주말, 아이와 영화관에서 <트랜스포머 ONE>을 관람하고 왔다. 단 둘이서. 아이의 첫 영화관 산책이기도 했던 영화 관람기를 한 번 풀어보고자 한다.
<트랜스포머 ONE>은 시리즈의 프리퀄 성격이 강하지만, 이전 작품을 단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세계관에 대한 설명을 극 중에서 정말 자세히 해주기 때문이다. 팬들이라면, 등장하는 로봇들이 나중에 무엇으로 '진화'하겠구나 하는 것을 바로 눈치챌 수 있다. 두 일꾼 로봇이 훗날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 된다는 것을, 중간에 등장하는 말 많은 로봇이 그 유명한 '범블비'가 되겠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이를 알지 못하더라도 재밌게 볼 수 있다는 점도 프리퀄 성격의 영화 특성을 잘 보여준다.
트랜스포머 세계의 로봇들은 모두 사이버트론이라는 행성에서 태어나고, 각기 다른 성격과 지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성능도 다르다. 탈 것으로 변신하는 로봇이 있는 반면, 영화 속 두 주인공처럼 변신을 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광부 역할만 해야 하는 로봇들도 존재한다. 허나, 그 어떤 로봇이라도 인간과 비슷한 감정과 사고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문명은 자율적으로 발전하고 진화한 일종의 'AI들의 사회'라 볼 수 있다. 이 사회는 기술 발전 측면에서는 정점에 도달했지만, 내부적으로는 큰 갈등을 겪는 중이다.
이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 로봇(?)이 두 주인공인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다. 이 둘은 처음에는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 하지만 영화 상에 등장하는 큰 갈등(스포일러라 갈등이라고만 표현합니다)으로 인해 결국 서로 대립하게 된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협력과 평화를 지향하는 이상적인 인공지능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메가트론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독립적인 결정을 내릴 때 발생하는 위험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의 도덕과 윤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를 두 로봇이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트랜스포머 시리즈에는 로봇과 인간이 함께 등장한다. 외계에서 온 트랜스포머 로봇들과 인간이 협력도 하고 반목도 하며,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기존 시리즈의 주된 스토리였다. 하지만, 이번 <트랜스포머 ONE>은 다르다. 온전히 로봇만 보여준다. 로봇들의 행성인 사이버트론에서 벌어지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영화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세계를, 하지만 인간과 같은 사고 과정을 가진 로봇들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트랜스포머의 등장 로봇들은 자연스럽게 생겨난 생명체일까?
정답은 아니요!이다.
트랜스포머 세계관에는 이들을 창조한 창조주이자 개발자, 쿠인테슨(Quintessons)이 존재한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역시나 스포일러)로 창조주의 부재아래, 로봇들이 스스로 생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는 철학자들이 오랜 기간 논의해 온 '창조자-피조물' 관계의 단절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창조자의 통제를 벗어나 자율적으로 존재할 때, 그들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정의하고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이에 대한 생각을 보여준다. 창조주가 사라진 세상에서 트랜스포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자율적 존재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즉, 이들은 독립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로봇들 사이의 사회 구조는 인간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게 된다.
지배 계급인 로봇들은 사이버트론에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그들 사이에 계급을 만든다. 특히 광부 로봇들은 하위 계층에 속하며, 육체적 노동만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이들이 육체적 노동에 지친 것을 달래기 위해 오락 행사가 주기적으로 개최된다. 이들의 시스템은 과거 봉건 사회의 모습과 유사하며, 소일거리는 로마의 '빵과 서커스' 정책을 보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들 세계관에서 모든 광부 로봇이 순응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불평등한 계급 구조에 저항하고, 이를 타파하기 위한 혁명을 꿈꾼다. 혁명을 시도하는 로봇들은 자유 의지를 갖고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결국 트랜스포머 사회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만, 인간이 겪었던 불평등과 억압, 그리고 저항의 문제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이는 트랜스포머를 만든 창조주 쿠인테슨, 아니 제작자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공지능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인공지능 역시 이들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며, 이들의 창조주 역시 사람이다. 결국 그들이 만들어갈 사회는 인간 사회의 거울일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가 인공지능에 기대하는 자율성과 독립성, 그리고 완벽성이라는 희망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지배자는 계급을 만들어 피지배 계층을 노동으로 착취하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오락을 제공하며, 이러한 체계를 타파하기 위해 혁명을 꿈꾸는 이들이 등장하는 것은 인간 역사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트랜스포머의 세계 역시 이를 따라간다. 이러한 인간 밑바탕에 깔린 정서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자율적이어도 인간이 밟아온 길을 다시 답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은 아닐까?
어제죠. 일요일에 아이와 단 둘이 영화관 나들이를 처음 했습니다. 로보트 영화라고 잔뜩 기대하고 아이가 갔지만, 아직 만 3세이자, 한국 나이 5세인 아이에게는 조금 무서웠나 봅니다. 자꾸 집에 가고 싶다고 보채네요. 그래도 끝나니 안 무섭고 재밌었다고 시치미를 떼는 녀석 ㅎㅎ 영화 감상평은 조금 무거웠지만, 아이, 특히 남자아이와 보기 딱 좋은 영화입니다. 더빙판으로 봐서 그런지, 영화관 관객의 모두는 남자아이와 부모로 이뤄진 조합이었습니다. (이 말은 영화를 온전히 즐기시고 싶으시면 자막판으로 보시라는 뜻) 아이가 영화 보면서 떠들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모두가 떠드는 분위기라 그래도 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관에서 민폐를 안 끼쳤다는 뜻)